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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연 May 15. 2020

좋은 사람말고 내가 되자

연남동에서 파나마로

채리에게


 파나마에서 보낸 가정의 달 소식은 잘 받았어. 어버이날을 두 번이나 챙겨야 하는 일은, 가족이 많아져서 기쁜 일이기도 하지만 꽤나 금전적으로 부담이되기도 할 것 같아. 게다가 결혼기념일까지 더 해져서 말이야. 그래도 새로운 가족을 맞이하고 꽃을 보내는 마음, 그리고 받는 사람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는 일이 얼마나 행복한 마음인지 알기에 조금, 아니 많이 부럽기도 하다. 나는 집에서 막내에다가 아직 결혼을 안 한 싱글이다 보니까 어버이날에도 돈을 보내고 전화 한 통 하는 게 전부이지만 앞으로 5월만큼은 가족들을 많이 생각하고 보살피려고 해야겠어. 쉽지 않은 일이긴 해. 아직까진 가족을 챙기는 근육이 생기지 않은 햇병아리란다. 헤헤. 


 오늘 결혼한 친구와 1시간을 넘게 통화했어. 이 친구는 결혼과 출산을 장려하는 사람이야. 그래서 분기별로 한 번씩 나에게 전화를 걸어서 결혼과 출산은 언제쯤 할 건지, 그리고 결혼과 출산이 꼭 그렇게 겁을 내야 하는 일만은 아니란 걸 상기시켜주곤 해. 오늘의 주제는 '남을 보고 쉽사리 걱정하지 말 것'이었어. 우리 언니 이야긴데, 내가 출산과 육아를 가장 가깝게 지켜본 게 나의 친언니잖아. 내가 언니의 육아방식을 몇 년 동안 보면서 더더욱 아이를 기르는 일이 자신 없어진 것 같았거든. 언니는 아이의 모든 것, 그러니까 1부터 10까지를 모두 자기 손으로 해야 하고, 심지어 형부(남편)의 케어도 믿지 못하고 답답하니까 자기가 다 해버리는 스타일이거든. 식구들이 다 모여서 식당을 가서 밥을 먹더라도 조카들 밥을 다 먹일 때까지 한수 저도 제대로 뜨지 못하는 편이야. 모유를 1년 넘게 먹였고, 이유식도 사서 먹이는 걸 한 번도 못 봤어. 그러니까 얼마나 피곤하고 힘들겠어. 친구말로는 언니는 그게 힘들지만, 자신이 좋아서 하는 방식이니 꼭 모든 육아를 그렇게 해야 하는 건 아니라고 얘기해주더라. 그에 비해서 친구는 이유식도 다 구매한 것으로 주고 모유도 일찍 끊어버렸어. 하기 싫은 건 하지 않는 편이 좋다는 방식인 거지. 네가 혹시 출산을 하고 육아를 하게 된다면, 네 방식대로 하면 되는 거니까 너무 염려하지 말라고 말이야. 채리는 시호를 어떻게 기르고 있어? 너무 힘들지 않은 선에서 적절히 육아를 감당하고 있을까, 아니면 무리해서라도 아이에게 최선을 다해 에너지를 쏟아붓고 있을까? 


그리고 내가 요즘 고민이 많아서 이런저런 푸념을 했더니, 친구가 이런 말을 하더라. "너는 이성보다 늘 감성이 앞서고, 내가 조금 손해 보면 되지 뭘. 하는 생각으로 살아가는데 그 방식이 꼭 남을 위해도 자신을 위해서도 좋은 게 아니더라. 네가 정 때문에 했던 행동들이 결국엔 타인도, 자신도 스트레스를 받게 하고 관계를 망치는 것 같다."라고. 좋은 마음으로 시작했던 일들, 배려하느라 참아왔던 것들이 결국 화살처럼 꽂히는 일이 많은 요즘이라 마음을 추스르고 다스리는 시간이 매일 반복되고 있어. 날카로운 말은 참고, 좋은 말만 하고, 웃는 얼굴만 보이고 싶고, 좋은 게 좋은 거지 하던 것들이 결국엔 좋은 게 좋은 게 아니라 관계를 망치는 것만 같아서 속이 많이 상해. 타인 때문에 생기는 고민들은 이제 그만 해도 될 때 같은데 여전히 스치는 바람에도 흔들리는 걸 보니, 나는 참 어리고 여리고 부족하다는 생각을 한다. 


오늘 푸념이 길었지? 이번 주도 꽤나 정신없는 한주였어. 마음은 매일 문을 꽝 닫고 글쓰기에만 전념하고 싶은데, 며칠째 계속 약속이 있어서 혼자만의 시간을 충분히 가지지 못했어. 가정의 달이라고 가족들도 만나고, 못 봤던 친구들도 만나고... 그래서인지 자꾸만 마음에 불행이 먼지처럼 내려앉고 있어. 이번 주말부터 다음 주까지는 불행 먼지를 좀 털어내고 다시 깨끗한 마음으로 온전한 나만의 시간을 가져야지. 다짐, 또 다짐!




ps. 시간 날 때 답장 좀

연남동에서 도연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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