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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채리 Nov 30. 2021

나 잘 나가나 봐

<과테말라에서 강원도로>

도연에게,


브런치 답장을 정말 까맣게 잊고 있었지 뭐니??!!! 요즘은 점점 글과 멀어지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로 글을 못 쓰고 있어. 한 달에 한 번 남기는 블로그도 꾸역꾸역 써가는 것 같거든. 책 읽을 시간도 부러 만들지 않으면 읽을 시간이 없기도 해. 어쩌면 현재 읽고 있는 책이 딱히 내 취향이 아니라서일지도 모르겠어. 바빠도 읽고 싶어 안달 난 책은 졸린 눈 비벼가며 읽기도 하니까. 난 요즘 하루키의 에세이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읽고 있는데, 하루키 책은 은근히 내 취향이 아니더라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난 사실 지금도 의아해. 어떤 부분에서 사람들이 하루키에게 열광하는 건지... 난 잘 모르겠어. "아무튼, 하루키"라는 책도 읽었는데 공감이 잘 안되고 말이야.. ㅎㅎㅎ 뭐 사람에겐 누구나 취향이란 것이 있는 것이니 말이야. 취향 얘기가 나온 김에, 네 말대로 내가 엄마가 되어서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좋아하는 걸까 생각해봤는데, 결혼 전부터 사노요코 할머니의 책을 좋아했던 걸로 봐서는... 꼭 그런 건 아닌 거 같다. ㅋㅋ 다만, 확실한 건 '혼자 사는 삶'에 대해 쓴 책들을 좋아했었는데, 이제 그런 책은 잘 들여다보지 않아. 읽다가 부러워질까 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이를 낳지 않은 사람은 자기의 유전자로 낳은 아이가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그 마음을 결코 헤아릴 수 없다고 생각해. 나도 그랬으니까. 육아로 힘든 모습을 옆에서 보면서 부러워질 일은 없거든? 내가 낳아보기 전엔 그 이면의 행복은 온전히 알기 힘들다고 봐. 근데 반대로, 아이를 낳은 사람은 싱글의 자유로운 삶을 잘 알고 있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래서 때때로 부러워져.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서 난 그런 책은 피하고 있어. ㅎㅎㅎ 


그나저나, 내가 답장 쓰는 걸 잊을 정도로 정신이 없던 11월이었음을 설명해도 되겠니? 자, 우선은 말이야... 내가 지난 편지에서 학생이 다섯 명이 되었다고 했지? 근데 또 그 사이에 열 명이나 되다 못해, "그 시간대엔 레슨이 다 이미 잡혀 있어서요, 도저히 시간을 맞추기가 힘들겠네요.. 죄송합니다 어머님.." 이런 말을 하고 있다니까??? 참나... 나 잘 나가나 봐...(??!!) ㅋㅋㅋㅋㅋㅋ 학생이 다섯 명일 때까지만 해도, 취미 생활 같은 느낌이 짙었다면, 지금은 이게 내 직업인가? 하는 생각이 들곤 하는데, 그럴 만도 한 게 매일매일 레슨이 있어. 어떤 날은 두 명을, 어떤 날엔 네 명을..  어느 날엔 목이 쉬기도 하고 또 어느 날엔 긴장과 스트레스로(주로 첫 레슨을 하는 날) 목이 뻣뻣하게 굳기도 해. 그럴 때 비로소.. '이게 내 직업이구나' 하고 생각하는 것 같아. 암.. 남의 돈 버는 데 스트레스가 없으면 안 되지. 그게 빠질 수 있나.. 하고 말이야.


그런 와중에 지난 주말에는 멕시코에서 친구가 놀러 왔어. 호스트 역할을 하느라 역시나 정신이 없었지만, 참 즐겁고 귀한 시간들을 보냈어. 고딩 때 과테말라에서 사귄 친구인데, 그녀는 과테말라에서 대학까지 졸업을 마치고선 멕시코로 가서 취업을 했거든. 며칠 전 본인의 상태가 '번아웃'인 거 같다며 힘들다는 연락이 왔길래, 리프레쉬할 겸 과테말라 한번 놀러 오라고 권했는데, 회사에 휴가를 내고 3박 4일로 짧은 휴가를 왔어. 6년 만에 돌아온 고향 같은 과테말라에서 그녀는 마음껏 편안하고 즐겁게 지내다 간 것 같아. 가자마자 다시 과테말라행 항공권을 검색했다고 하는 걸 보니 말이야.

반면에 나는 그녀가 떠나가고 한 이틀.. 마음이 헛헛하더라.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더니.. 그녀가 머물다 간 그 방이 괜히 아련해지고 허전하더라고. 


"나 술 진짜 오랜만에 마셔.. 멕시코엔 같이 술 마실 친구도 없어."라고 말하는 그녀가 안쓰럽기도 하더라. 그래도 멕시코엔 이케아도 있고 아마존도 있다고 하니... 이건 마치 출세를 위해 지방 소도시에 살던 애가 서울로 상경한 것과 다를 바가 없는 모양새였달까. ㅎㅎ 유난히도 시호를 참 예뻐하는 친구라, 글쎄..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머지않은 기간 안에 시호와 함께 멕시코 시티를 다녀올까.. 하는 다짐을 품었어.

그게 장기적인 다짐이라면, 가까운 다짐도 최근에 하나 했어. 유튜브 영상에 스페인어 자막을 넣어볼까 해. 최근에 외국인(스페인어로 댓글을 다는데, 국적까지는 알 수 없어) 구독자들이 생기기 시작해서 말이야. 뭔가 나의 남루한 채널에 들어와서 영상을 보고(한국어로만 지껄이는) 구독을 누르고 댓글을 달고 갔다 하니.. 나도 그들을 위해 뭐라도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서 말이야. ㅋㅋㅋㅋㅋ 스페인어 자막을 넣으려면 아무래도 문법도 체크해야 하고.. 편집 시간이 몇 곱절로 늘 것 같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만간 시작해야 하는 일이 아닌가 싶어. 그러다 지치면 뭐...  그때는 자막을 다시 빼지 뭐. ㅋㅋㅋㅋ이렇게 말해놓고서는 첫 자막을 넣는 날.. 편집하다가 그냥 다시 자막을 삭제할지도 몰라.... 


언젠가부터 우리의 답장은 늘 구구절절 이래서 늦었다.. 이래서 바빴다.. 이런 얘기들이 빠지지 않네. 바쁘다는 건 좋은 걸까? 뭐든 적당한 것이.. 그리고 밸런스를 맞추는 것이 중요하단 걸 우린 잘 알고 있잖아. 나의 마음을 돌보는 일에 소홀하지 말고 열심히 밸러스를 맞추자고. 남편에게 친절과 분노의 밸런스도 잘 맞추고 말이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벌써 11월이 다 지났다. 올 해가 한 달밖에 남지 않았어. 네가 보내준 단풍 사진들은 이미 다 떨어졌겠지. 강원도의 겨울이 돌아왔구나. 눈 열심히 치워야겠네... 나는 눈이 참 그립다. 내년 겨울에 한국에 가서 실컷 봐야지. 너는 내년 겨울에도 인제에서 지내? 문득 한국은 보통 전세 계약이 2년이니까 이사를 할 계획인지 궁금해진다. 개인적으로는 내가 한국에 갈 1년 후에도 네가 그곳에 머물면 좋으련만....


그럼 안 바쁠 때, 답장 좀.

과테말라에서 채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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