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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연 Oct 27. 2021

여전히 계속 나아지고 있는지

강원도에서 과테말라로

채리에게


 달여만에 답장을 쓴다. 브런치 북을 완성하는 동안 답장을 쓰지 못할  같다고 미리 공지한 것처럼, 정확히  달이 걸렸네. 기다려줘서 고마워. 올해도 어김없이 브런치  출판 프로젝트에 응모하느라 조금 정신이 없었어. 애초에 공모에 응모하려던  아니었고, 집과 이사에 대한 이야길 쓰고 싶어 준비하던 찰나에 타이밍이 맞아서   서둘러 글을 쓰고 응모를 했어. 자유로움을 추구하지만 반대로 무한한 자유를 주면 한없이 늘어지는 타입이라 도착지점을 만들어주고 작업하는  좋아하거든. 마침 제작사에서 쓰던 대본을 잠깐 쉬자고 했는데, (알다시피 내가 글을 너무 빨리+많이 쓰는 편이라, 제작사에서 제작환경을 만드는 것보다 대본이  빨리 나와서 모두를 당황시킨 ...) ',  쉬어야겠다' 생각하는 순간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놀아버렸어. 가끔은 그래도 괜찮지, 하고 생각하면서도 머릿속은  온통 어떤 이야길 써볼까 생각하고 있어.

한창 바쁘던 일들도 마무리가 다 되어가니, 새롭게 작업할 소설에 대한 주제도 생각해보려고 해. 이것저것 써둔 건 많은데 세상에 나온 것들이 없어서 초조할 때도 가끔 있지만, 세상 일이 뭐 다 내 맘 같지 않고 성공의 기준은 다 제각각이라 좌절이나 실망 같은 건 되도록이면 하지 않으려고. 난 '될놈될'이란 말을 믿거든. 어차피 난 '될 놈' 이란 근거 없는 믿음이 있으니, 잘 될 거야.


자위는 이만하고, 그동안의 얘길 해볼게. 아직도 나는 네가 추천해준 양희은 님의 책을 읽지 못했지만 올해가 가기 전에는 꼭 읽을 거야. 네가 엄마가 되어서 그런지 엄마, 할머니의 이야기들이 더 와닿는 걸까? 네가 요즘 추천해준 글이 대부분 '할머니의 글' 이란 점에서 흥미롭다고 생각했어. 요즘 예전처럼 다독은 못하지만 흥미로운 주제가 있을 땐 여전히 책을 찾곤 해. 최근에는 집 이야기 때문에 '합정과 망원 사이',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를 읽었어. 너무 재미있고 공감도 돼서 휘리릭 읽어지더라. 만약 다음 책은 뭘로 할까 고민 중이라면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를 추천할게. 작가가 대구에서 유년시절을 보내서인지 더 실감 나고 공감하면서 읽었고 서울에서 자취하는 이야기들이 가볍고 유쾌함보다는 시대의 문제점들을 짚어나가면서 쓰는 글들이 무게감 있고 좋더라고. 외롭고, 어딘가로 자꾸 떠나고 싶었던 예전의 나는 이병률 시인이나 생선 작가의 글을 좋아했고, 현재의 삶에 만족하고 행복을 자꾸 상기시키고 싶었던 때에는 류시화 시인의 이야기들을 좋아했어. 그리고 한 사람이 만든 새로운 세계나 세상에 대한 이야기가 한창 궁금할 땐 소설을 주로 읽었지. 그러고 보면 우리가 서로 책을 추천하고 같은 책을 많이 읽을 때가 있었는데, 그땐 혼자 살았고, 나이가 같았고, 그러면서 일과 삶, 취미나 사람에 대한 밸런스 같은 걸 주로 생각했던 것 같아. 집에 대한 책을 다 읽고 난 지금은 법정 스님의 '스스로 행복하라'를 읽고 있는데 요즘은 스스로 마음을 다스리는 일을 게을리 한탓에 우울감이나 쓸데없이 시간만 낭비하는 류의 생각들이 자꾸 머릿속을 장악하려 해서 읽는 중이야. 그런 의미에서 양희은 님의 에세이는 좋을 것 같아서 다음 책으로, 예약! 이번 한 달은 부지런히 에세이 13편을 쓰고, 고쳤고, 그리고 김치를 담갔지. 그리고 이번 달엔 결혼식이 무려 5번이나 있어서... 매주 주말마다 서울을 다녀왔어. 서울은 거리두기가 조금 완화되어서 결혼식장 입장인원도 조절이 되었어. 작년에 미뤘던 결혼식을 몽땅 몰아하는 걸까, 여기저기 결혼하는 신혼부부들이 엄청나게 많더라. 한쪽 신부 대기실에서 신부가 사진을 찍고 있으면, 그다음 식 신부는 예식장 앞에서 신랑이랑 미리 사진을 찍더라? 한 공간을 참 부지런히 사용하는 예식장들. 역시, 내 취향은 아니었어. 더욱 결혼식은 필요 없다고 확신이 들었지. 시간이 참 빨라서 벌써 나도 결혼 1주년을 맞이했네. 지금까지 잘 살아왔던 대로 앞으로도 우리답게 잘, 살기로. 그리고 남편한테 만드는 잣대를 조금은 완화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유독 남편한테만 너무 못된 거 같더라고 내가 ㅋㅋㅋㅋ


바이올린 학생이 5명으로 늘었다니, 정말 ㅎㅎ 대단하다 너. 바이올린 켜는 동영상을 보고 나면 실력은 의심하지 않을뿐더러, 네가 내 책 초안에 맞춤법 표기를 교정해줄 때 생각을 하면 채리는 어쩌면 '틀림없는 선생님'일지도 모르겠다. 나도 디자인 강의를 하며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었거든. 직접 디자인하는 것보다 가르치는 것에 흥미를 느끼고 소질이 있다는 것을 말이야. 컴퓨터에 익숙하지 않거나, 포토샵 일러스트 프로그램을 처음 다루는 기초반 학생들을 가르칠 때도 있고, 디자이너 양성을 위한 직업 훈련반도 맡을 때가 있었어. 기초반 학생들을 가르칠 때는 선생님의 열정이나 열의보다는 편안함과 당황하지 않는 말투나 행동, 느긋함 같은 것이 좋은 점수를 받았고, 직업 훈련반 같은 경우에는 열정 있는 선생님을 선호했지. 바이올린 학생들은 어린아이들이니까 아무래도 친절하고 섬세한 선생님을 선호할 것 같은데 채리는 목소리 톤이 좋고 차분해서 학생들이 좋아할 것 같아, 나는 강의할 때 목소리가 독특해서 수업 중에 잠이 안 와서 좋다는 피드백을 받은 적이 있어. 기분 좋지만 묘하게 기분이 나쁜 후기였다는...


강원도는 이제 단풍이 갓 들기 시작했고, 날은 추워지기 시작했어. 보일러를 가동해야 하는 날씨가 되면서 이제 산골 집에는 월동 준비를 시작하려고 해. 달려있던 콩은 얼어 죽기 전에 모두 수확을 마쳤어. 호두나무에서 떨어진 호두를 모두 주워 해가 잘 드는 곳에서 말린 뒤 그늘진 곳에 망에 담아 보관을 하고, 수확이 끝난 호박, 대파는 모두 뽑아서 정리해뒀지. 겨울 김장용으로 심어둔 배추와 무, 고추를 뽑아 김치를 담그는 일만이 남아있어. 첫 농사여서 쪽파와 무는 실패 했어. 비료를 너무 많이 줘서 다 죽어버렸거든. 그래서 옆집 아주머니가 같이 심었던 총각무를 많이 나눠주셔서 같이 뽑고 다듬어서 김치를 담갔어. 내 인생 첫 김장 김치인데 맛있게 잘 익었으면 좋겠다. :) 채리도 얼마 전 김치를 담궈야겠다는 피드를 본 것 같은데, 김치는 담갔는지 궁금하네.

한국인은 역시 국밥에 김치야. 오늘도 속이 뜨끈해지는 맛있는 식사를 하길 바라며.

이틀 전에 찍은 따끈한 서울의 단풍사진과 강원도 집 창문으로 보이는 단풍을 첨부하며 이만 줄일게.



ps. 안 바쁠 때 답장 좀

강원도에서 도연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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