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운, 김애란

‘비’행운과 ‘비행’운 사이

by 체삼

#비행운 #김애란 #문학과지성사



제목의 의미는 ‘비행’운일까, ‘비’행운일까. 여러 번 책을 읽었는데도 잘 모르겠다. 어쩌면 둘의 경계에 놓인 것 같기도 하다. 불행한 주인공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으로 난 구름을 모아놓은 책 같기도 하다.


희미한 설렘으로 남은 첫사랑의 추억은 최 선배를 좋아했던 미영뿐만 아니라, 미영을 좋아했던 병만에게도 해당되었을 것이다. 미영은 자신이 받았을 상처 못지않게 저를 좋아했던 누군가(병만)도 같은 크기의 아픔을 지니지 않았을까 깨닫는 소설 <너의 여름은 어떠니>,

우리가 과연 벌레라고 칭하고 멸시할 수 있을까, 의문을 던지게 하는 <벌레들>,

아버지를 죽게 한 골리앗 크레인과 돌아가신 어머니, 죄다 물속에 잠긴 곳에서 애타게 누군가를 기다리는 <물속 골리앗>,

‘제 자리는 어딥니까’를 수없이 외쳐도 제자리를 찾을 수 없어 도시를 가로지르는 택시 테이프에서 흘러나온 이야기 <그곳에 밤 여기에 노래>

설렘으로 가득한 공항이 누군가에겐 일터이자 괴로운 하루의 축이 될 수 있음을 느끼게 하는 <하루의 축>,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었을 때의 그 갑갑함을 우린 안다. 남이 보는 나로 살 때의 피곤함을 생생하게 구현한 <큐티클>, 그 밖에도 <호텔 니약 따>, <서른> 등 총 8개의 단편은 모두 행운과는 거리가 먼 주인공들이 나오며 각자가 가야 할 길 중간에 멈춰 헤매고 있다. 그러나 다시 어디로든 가야 하리라는 것을 이들은 안다. 다만, 그들은 잠시 어둠 속에서 숨을 고르며 자신이 지나온 비행운을 돌아보는 중인지도 모른다. 나는 어둠의 색과 냄새를 담을 줄 아는 김애란의 소설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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