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조금 말할 수 있을까요
새해 첫 수업,
아직 나는 새로운 학생들을 만나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매해 새로운 학생들을 만나야만 했던 그 많던 담임 선생님들은 무슨 기분이었을까.
지금 나는 설렘과 불안감이 공존한다.
그들을 이해할 수 있을지, 즐거운 수업이 될지, 우린 서로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 기대하면서 동시에 나란 사람이 걱정스럽다.
교실이 새로운 건 학생들 뿐인가보다.
익숙한 공기, 익숙한 책상, 익숙한 공간. 갈 길이 명확한 나의 발자국 소리만 교실 안을 가득 채운다. 아직 사람을 잘 모르는 '선생'이라는 나는 고작 '더 익숙하게 느낀다.'라는 느낌만으로 기선제압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어릴수가.
"오늘 몇시에 끝나요?"
아니, 첫날인데 벌써 끝나는 시간을 물어본다. 마음이 불편하다. 왜일까. 수업 전, 학생들에 대한 간단한 정보가 담긴 문서를 받는다. 그 문서엔 이름과 나이 그리고 장애등급이 적혀있다. 이전에는 각 장애등급의 특징들을 찾아보고 공부하곤 했다. 그리곤 몇일 지나지 않아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뇌병변, 지체, 자폐성'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반절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내가 몸이 불편한 것도 아니고, 우리 가족 중에 선천장애를 가진 사람이 있지도 않다. 그리고 살아오면서 몸이 불편한 사람과 깊은 관계를 갖는 경험도 극히 드물다. 단어 이상의 의미를 안다고 나는 말할 수 없다.
그래서 수업이 시작되는 매 주마다 생각한다.
* 미리 불가능하다고 판단하지 말고,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판단할 것.
* 차츰차츰 불가능이 아닌 차이를 느낄 것.
* 학생 스스로 도움이 필요하다고 느낀다면 요청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 것.
* 서로가 서로를 채워주는 존재임을 교실 안에서도 느끼게 할 것.
+
아마도 우리는 살면서 개개인의 이름보다는 '장애인'으로 대표되어 불리는 사람들과 스치는 순간들이 많았을 것이다. 다만, 눈에 담기는 순간들이 많지 않고 길지 않았을 뿐.
우린 무관심한 것이 아니라 너무 바빠서 지나친 것이라고.
2년차에 접어든 미술 직업훈련 강사와 학생들의 이야기를 마음에만 담아두지 말라는 친구들의 응원에 이야기를 꺼내본다.
이 교실이 나에겐 '사람'을 보게 하는 시간이고 우리들의 차이를 인정하고 조화롭게 살아갈 방법을 고민하는 공간이 되기를 기대한다.
#시작 #사람 #차이 #체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