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Lzit - 7평 프로젝트 2. 핸디코트
우리는 이 공간에서의 더러움을 한참 거둬내고 나서야(우에엑) 이제 뭔가를 할 수 있겠구나 싶었다. 벽지를 다 뜯은 후에 우리들은 주변 페인트 가게를 찾아가 핸디코트 작은 것을 하나 구매해 왔다. 핸디코트는 하얗고 약간 쫀득쫀득한 치즈 같이 생겼다. (벽을 고르게 만들고 싶거나 어떤 느낌을 내고자 할 때, 페인트 잘 먹게 하고 싶을 때 사용한다고 한다.) 핸디코트는 대학 때 과제로 몇 번, 이후 벽화 프로젝트할 때 가끔 사용했었는데, 집 인테리어를 할 때에도 동일하게 사용될 줄 몰랐다.
벽 사이사이 생긴 틈새를 채우기 위해 핸디코트를 바르는 것은 꽤나 재미난 일이다. 얼룩덜룩한 벽이 하얗게 변하는 것도 신이 나지만 매끄럽게 빈틈이 채워지는 것 역시 기분이 좋았다. 이렇게 빈틈과 굴곡을 채우다 보면 무엇이든 새롭게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 공간이 이전과는 전혀 다른 곳으로 탄생될 수 있을 것 같은 기대도 부풀어 올랐다.
하지만 즐겁기만 한 것도 잠시. 벽 천장이 문제였다. 제일 고르지 못한 곳이 제일 바르기 힘든 위치였다. 벽면을 바르며 한참을 고민하던 중, 벽을 빤히- 쳐다보던 말랑이 말했다.
"근데 꼭 못난 부분을 다 채워야 할까? 난 저것 그대로도 이쁜 거 같은데."
나는 다시 천장을 한 번 보고 핸디코트를 바르며 다시 생각했다. '왜 난 꼭 다 채워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생각의 끝에서 나는 '완벽했으면 좋겠다.'라는 무의식이 발현되었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 공간의 아름다움을 찾고 받아들이고 조화롭게 무엇인가를 해보겠다는 생각보단 예뻐야 해, 완벽해야 해, 깔끔해야 해, 그래야 사람들이 좋아해, 그래야 내 맘에 들어. 그런 생각.
완벽주의자의 경직성은 통제에 대한 집착에서 비롯된다. 완벽주의자는 삶의 모든 면을 통제하려고 한다. 자신이 손을 놓으면 세상이 무너져 내릴 것처럼 느끼기 때문이다. - 완벽의 추구, 탈 벤 샤하르
"아, 맞아- 다시 생각해 봐야지."
그러고 몇 분 후, 나는 이전에 하고 싶었던 기억의 방 컨셉이 떠올랐다. 학생들과의 수업에 응용하고 싶어 작성해두었던 강의컨셉이었는데, 실제로 적용해 볼 기회가 없었던 기획이었다. 방안을 실로 가득 채워 기억의 조각들을 걸어두는 수업이었는데 우리 아지트에 적용해도 너무 좋을 것 같아서 말랑에게 이야기했더니 흔쾌히 찬성해줬다.
하지만 다시 몇 분 후, 천장을 보니 굳이 그렇게 가려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보고 보고 또 보니 어쩜, 저 거침이 그렇게 멋있게 보일 수가 없었다. 결국 페인트를 칠해보고 결정해보자-하고서 열심히 핸디코트로 이곳저곳을 채워갔다.
그렇게 벽면 가득히 빈틈을 채우고 나니 이 공간에 대한 나의 '완벽함'에 대한 기준이 변하고 있었다. 완벽할 수 없다-가 아니라 나의 완벽함에 대한 기준을 조금씩 바꿔가는 것. 완벽주의에 대한 못된 습관을 하나씩 바꿔가는 연습을 나는 아직도 한참 진행 중이다.
완벽하고 싶다는 생각을 완전히 떨쳐내긴 힘들다. 대신 나쁜 생각(또는 습관)을 덜어내면서 동시에 좋은 생각으로 채우려고 노력한다. 천장에 대한 나의 생각을 떨쳐내면서 이 공간에서 저 천장이 할 수 있는 역할이 뭘까 생각해 보았다. 비를 막아주니 충분하다 여길 수도 있고, 다 하얗게 변한 공간에 홀로 거칠기에 매력 있다 여길 수도 있고, 천장은 자주 보지 않으니 상관없다 여길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천장 하나를 두고 참 별 생각을 다한다 생각했는데, 여기 즈음에서 고민을 멈추고 멋있다- 생각하기로 했다. 가끔 이런 고민을 멈춰 줄 필요가 있다- 여기며.
가끔 삶에도 빈틈이 있어야 더 생각해 볼 여유도 생기니까-
평범한 것에서 기적을 보는 것,
그것이 지혜롭다는 확실한 증거다.
- 에머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