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서 갖기

PALzit - 7평 프로젝트 5. 정리정돈

by 체셔

8 zit에 색이 입혀지고, 멤버들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물품들을 모아 유형별로 정리하기 시작했다. 전시회를 마치고 기부나 나누지 못한 작품들, 빈 액자들, 그동안 구매했던 공구들, 가위, 풀 등등. 하나씩 정리하면서 아, 이건 그때 쓴 건데, 아 이건 그때, 기억이 돌아온다. 예뻤거나 행복했거나 슬펐던 기억.

겉으로 보기에 인생은 모순으로 가득 차 있다. 하지만 모순 뒤에 숨어 있는 질서를 발견할 때 비로소 인생이 참으로 아름답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드리스 샤흐

페이스북이나 여러 SNS를 보며 가끔 느낀다. 그들의 삶이 '예뻐 보인다. 즐거워 보인다. 행복해 보인다.'라는 것. 많은 사람들이 글을 쓰고, 사진을 고르고 보정하고, 해시태그를 하며 자신의 행복을 남과 공유하고 싶어 한다. 너도 행복했으면 하는 마음일까, 나 이렇게 행복해-하는 마음일까. 가끔 정말 궁금하다.


이유가 어찌 됐든 타인의 행복을 보며 자란 우리는 '나도 행복해지고 싶다.'라고 생각하곤 한다. 그래서 막상 따라 해 보면 정말 행복한 경우는 드물다.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좋은 곳에 가면 당연히 기분이 좋다. 그러나 그 기분을 딱. 그래 이건 행복이야.라고 자신감 있게 말한 사람은 드문 것 같다. 사람마다 자신이 행복을 느끼는 지점이 다르니까. (나는 음식도 대화하기 즐거운 사람이랑 먹으면 맛난다고 느끼는 편이다.)

2017-07-04-13-48-21.jpg

그래서 우린 정말 시도해봐야 한다. 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하는 조건인지를. 무엇이 내 삶을 아름답고 즐겁게 채울 수 있는 조건 혹은 질서인지를 찾아야 한다. 참, 그대는 언제 행복한가요?

2017-07-21-14-36-16.jpg

나는 아침마다 강의를 갈 때 커피 한 잔 들고나가는 것이 소소한 행복이다. 아침, 출근하는 길, 그 거리를 걷는 시간, 공복 상태, 커피의 고소함, 그리고 그 커피를 만들어주시는 사장님의 인자한 미소, 건네주는 아침인사. 하나의 요소가 아니다. 이 모든 요소들이 합쳐져 나는 '행복해'라고 느낀다. 인생의 그런 지점을 찾는 것, 생각보다 삶을 지탱하고 유지해주는 질서가 된다.


우리 아지트도 초반엔 어떻게 사용할지 고민하다가 멤버들 사이에 흩어져 있는 물품을 둘 창고로 쓸까 했었다. 그러면 굳이 누구에게 무엇인가를 가져다 달라 부탁하거나 왔다 갔다 하는 번거로움이 사라지니까. 한 곳에 모여 정리되어 있다는 건, 언제 어디서나 내가 쓰고자 한다면 자유롭게 사용해도 된다는 의미이니까.

1496996598932.jpg

물품을 정리할 때, 나는 이것도 저것도 다 담고 싶었다. 그런데 말랑이 내게 질문했다.


'이게 꼭 필요해?'
'이게 너꺼야, 우리들거야?'


나는 대답했다.


'어- 아니, 그때 사두고 혹시 몰라 가지고 있었지.'
'어- 그거 이뻐서ㅎㅎㅎ'
'어- 내꺼 맞는데, 다 같이 써도 좋을 것 같아서.'


그렇게 물건을 하나둘 정리하며, 집게류는 집게대로, 붙이는 얘들은 걔들대로, 물건을 분류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정말 많은 물건들이 버려졌고, 우리가 얼마나 같은 물건에서 지출하는지도 파악할 수 있었다.


질서를 갖는 것은 아마도 소유를 정리하고 소비를 분석하고 나의 상태를 정돈하며 다음 스텝을 준비하는 단계가 아닐까. 무작위로 담겨있던 짐들이 하나둘 정리되고 보니 우리가 가지고 있던 짐들이 무척 적게 느껴졌다. 몇 년 동안 가지고 있던, 하지 않고 미뤄놓은 일을 치른 기분이었다. 이제 이 곳에, 물건이 아닌 사람들이 차면 이곳이 행복해질 준비가 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발전의 기술이란 변화 중에서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요.
질서 중에서 변화를
유지하는 것이다.

인생이란
절대로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다.
-앨프레드 N. 화이트헤드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비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