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잠한 채 유리되어 낡아버린 삶의 노래

<퍼펙트 데이즈(Perfect Days, 2024)>

by 체스넛

어슴푸레한 새벽, 남자는 눈을 뜬다. 남자의 이름은 히라야마. 히라야마는 좁은 방 구석에 이불을 가지런히 개어 둔다. 지난밤 잠들기 직전까지 읽었던 책을 앉은뱅이 책상에 올려두고, 계단을 내려가 침실보다 좁은 세면대에서 밤 사이 자란 수염을 깔끔하게 정리한다. 청결을 위해 세면대에 세제인지 뭔지를 뿌려준 뒤, 그는 다시 2층의 침실로 향한다. 그리고 여러 개의 작은 화분에 물을 준 뒤, 새파란 점프 수트를 입는다. 등에는 ‘The Tokyo Toilet’이라는 하얀 글씨가 박혀있다.


낡은 맨션 앞에는 마찬가지로 낡아빠진 음료 자판기가 서있다. 그는 평소와 같이, 오랫동안 고수해 온 취향의 음료를 고른다. 작업복처럼 새파란 미니 밴에 올라탄 그는 마치 의식처럼 음료를 한 모금 들이킨 뒤, 깨어 움직이기 시작하는 도시를 가로지르며, 마찬가지로 낡고 오래된 카세트 테이프 속의 팝 음악을 재생한다. 해가 떠오르고 있다.


마침내 도착한 곳은 한 공중 화장실 앞이다. 히라야마의 직업은 등에 있는 하얀 글씨가 드러내는 것처럼 화장실 청소부다. 그는 아무런 말 없이, 손거울까지 사용해 작은 얼룩도 없이 깔끔하게 청소한다. 취객이 와서 그를 방해할 때도 있지만, 그 순간마저 그는 잠시 웃으며 하늘을 바라볼 뿐이다. 함께 일하는 젊은 청년은 일도 대강대강, 그저 불만만 지껄여 댈 뿐이지만 히라야마는 신경 쓰지 않는다. 단지 그의 일에 열심일 뿐.


하지만 그의 하루가 무난하고 가볍기만 한 것은 아니다. 청소 중 엄마를 잃고 울고 있는 어린 아이의 손을 잡아주었더니, 아이 어머니는 히라야마를 의심하는 데다 그와 잡았던 아이의 손을 더럽다는 듯 물티슈로 벅벅 닦아대는 꼴을 눈앞에서 보기까지 해야 하니. 아무리 스스로 만족하고, 잔잔히 흘려보내려 해도 대외적으로 ‘하찮은 일’이라 여겨지는 그를 향한 타인의 날은 언제나 벼려져 있었으니까. 그래도 히라야마는 화 한 번 내는 일 없이 그저 아이의 고맙다는 손짓에 웃음 짓고 흘려보낸다. 그리고 여느 때처럼 주위의 신사에 찾아가 하늘을 바라보고, 새로운 식구로 맞이할 작은 나무를 신문지로 껴안을 뿐이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길, 히라야마의 세상은 여전히 변함없는 길과 장소로 배치되어 있다. 그의 차에는 역시나 올드 팝이, Velvet Underground의 Pale Blue Eyes가 흐른다. 도착한 현관에는 차키와 지갑이 차례대로 놓인다. 그리고 신사에서 가져온 작은 나무가 2층의 다른 녀석들과 함께 정렬된다. 오전 내내 입었던 작업복을 제자리에 걸어두고, 목욕 용품을 실은 자전거에 올라탄다. 이제서야 영업을 시작하는 목욕탕의 첫 손님으로 발을 들인다.


깨끗하게 씻은 몸이 무색하게 하늘에서는 비가 내렸다. 그러나 히라야마는 짜증 한 번을 내지 않고 비를 맞으며 역내의 단골 식당까지 가서 맥주 한 잔을 마신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여전히 비가 내린다. 하지만 상관없다. 집으로 돌아간 히라야마는 지난 밤과 마찬가지로 윌리엄 포크너의 책을 읽다, 어제와 마찬가지의 장소에 두고, 어제와 마찬가지의 자세로 잠에 든다. 하루가 꿈에 든다. 그리고 다시 하루가 시작될 것이다. 하루가 시작된다.


그러나 언제나 같은 하루만이 반복될 수는 없는 법. 어린 조카 니코가 가출해 남자에게 오고, 그녀를 데려가기 위해 찾아온 여동생과 마주한 뒤, 히라야마는 홀로 남아 눈물을 펑펑 터뜨린다. 책은 눈에 들어오지 않고, 다음날엔 변변치 않았지만 나름 정을 붙이고 있었던 동료 직원도 갑작스레 사라진다. 히라야마의 삶은 지금과 다른 어떤 날처럼 힘들고, 고통이 가득하고, 웃을 일 없는 소진의 구렁텅이로 빠져드는 것 같다.

그래도 히라야마는 언제나와 같은 하루를 유지하기 위해 애쓴다. 일어나서, 차를 타고, 낡은 음악을 듣고, 일을 하고, 술 한 잔을 기울이고, 책을 읽고, 잠에 든다. 세상은 계속해서 그를 움직이게 하려 하지만 그는 그저 자신의 시간을 걸어간다.


많은 리뷰들이 히라야마의 이런 모습을 보며 ‘반복되는 일상을 버텨내는 힐링 영화’라고 묘사한다. 나 또한 그런 것을 기대하고 <퍼펙트 데이즈>를 재생하기 시작했으니까. 그러나 여동생과 조카를 만난 뒤 홀로 오열하는, 그리고 영화의 말미에서 눈물이 가득 고여 붉어진 눈으로 애를 쓰듯 미소 짓는 히라야마의 모습을 보며 ‘힐링’이란 단어와 지독하리만치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히라야마와 주변인들의 대사를 곱씹으니 생각은 확신이 되었다.


알고 보면 이 세상은 수많은 세상으로 이뤄져 있거든.
연결된 것처럼 보여도 그렇지 않은 세상도 있지.


삶이란 계속해서 변한다. 불안과 불안이라는 공포 속에서 수없이 뒤섞여 춤을 춘다. 나의 세계는 매일이 변함없이 같은 모양새일 것 같다가도, 소리 없이 요동치며 흘러가 결국 강에서 바다로 나아가고 만다. 나는 이 강의 바닥에서 그저 분리된 채 머물러있고 싶을 뿐인데, 나를 억지로 나룻배에 태우고 망망대해로 보내려 한다. 허름하다 못해 연약한 나를.


그러나 히라야마의 입으로 조곤조곤 내뱉어지는 이 대사와 그의 변하지 않는 하루하루를 돌아보면, 그는 불안이라는 세계에서 자의적으로 유리되어 자신만의 평행 도로를 걸어가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이 단지 그의 이성적인 판단과 바람으로만 이루어진 행위였다면, 그가 그리도 처절하게 눈물 흘릴 이유가 없지 않았을까.


이 점에서 생각하건대, 그는 그저 삶의 행복으로 고립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그저 안정 속에 고여있고 싶은 보통의 한 사람일 뿐이다. <퍼펙트 데이즈>는 히라야마 스스로가 실존을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자 세계이며, 그가 붙인 세상의 이름이며, 어떻게 보면 완벽은커녕 침잠하여 움직이지 않길 원하는 자가 자신의 시간을 반어적으로 명명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즉, <퍼펙트 데이즈>는 한 겁쟁이가 자신 그리고 세상과 타협해 간신히 하루하루를 살아나가는 이야기인 것이다.


그렇다면 히라야마의 삶은 비판 받아야 마땅한가? <퍼펙트 데이즈>에 대한 다른 리뷰들은 모두 잘못된 내용인가? 그렇지 않다. 자신이 처한 상황과 삶을 덤덤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은 비교와 불만족에 파묻혀 사는 현대인에게 귀감이 될 만하다. 단지 그 과정에 결국 체념의 눈물이 묻어있기에 이 영화를 단순히 ‘힐링’이라고 칭할 수 없다는 점을 말하는 것뿐이다. 물론 누군가에게는 겸허히 삶을 받아들이는 히라야마의 모습이 위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내면을 급급하게 가린 채 ‘나는 완벽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홀로 중얼거리는 일이 사실 주술에 불과하다는 것을, 살아간다는 것이 이리도 속상하고 텅 빈 거라는 사실을 히라야마 스스로는 느끼고 있지 않을까.


Sometimes feel so happy
가끔은 아주 행복하지만
Sometimes feel so sad
가끔은 아주 슬퍼요
But mostly you just make me mad, Baby you make me mad
하지만 당신은 늘 나를 화나게 해요, 늘 나를 화나게 해요
Linger on your pale blue eyes
당신의 옅고 푸른 눈동자가 아른거리네요
Thought of you as my mountain top
난 당신이 나의 끝이라고 생각했어요
Thought of you as my peak
난 당신을 나의 마지막이라고 생각했어요
Thought of you as everything
난 당신이 전부라고 생각했죠
I’ve had but couldn’t keep
하지만 당신이 머무르게 할 수 없었어요
Linger on your pale blue eyes
당신의 옅고 푸른 눈동자가 아른거려요



간만에 영화를 보며 눈물을 펑펑 흘렸다. 붉어진 눈으로 웃으며 다시 또 하루를 살아나가는 히라야마의 모습이 마치 거울처럼 느껴져서 손수건 한 장을 적시고 말았다. 그와 나의 시간이 끝나고 나의 세상으로 돌아오자, 한참을 잊고 있었던 풀벌레 소리가 창 너머로 들려오는 것이 느껴졌다. 마음이 차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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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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