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아침 7시, 눈이 번쩍 떠졌다. ‘정확한 테스트를 위해선 아침 첫 소변으로 테스트하는 것이 가장 좋다’라고 어젯밤 유튜브를 통해 배웠다. 옆에서 곤히 자고 있는 남자친구 몰래 화장실로 가서 문을 닫았다. 화장실 벽장엔 어제 사둔 얼리 임신 테스트기가 숨겨져 있었다. 조용히 뜯어서 테스트를 했다. 코로나 테스트기와 정말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며 천천히 결과가 나타나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무 이상 없이 대조 라인만이 한 줄로 선명해졌고, 임신이 아니라는 생각에 안도와 실망을 함께 느꼈다. 바로 버리려고 하다가, 최근의 몸상태가 너무 이상했던 것을 떠올리며 적어도 3분은 기다리자는 마음으로 화장실을 서성였다. 속으로 노래를 한 곡 정도 불렀고, 나가기 전에 또 한 번 슬쩍 보고 버리려던 테스트기를 급하게 다시 눈앞으로 당겼다. 미세하지만 옅은 줄 하나가 옆에 추가로 나타났다. 이렇게 연해도 임신인 걸까? 코로나일 때는 줄이 옅다가도 날이 갈수록 점점 진해졌는데, 임신 테스트기도 그런 것이 아닐까? 불안한 마음에 방으로 돌아와 휴대폰으로 검색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지막 생리일을 임신 주수 계산기에 넣어보았다. 임신 3주 0일 차. 내가 임신이라니!
생각해 보면 최근 2주간 몸이 너무 안 좋았다. 두통과 열이 미약하게나마 계속 있었고, 아랫배가 아팠다. 민감성 대장 증후군을 앓고 있는 나로서는 익숙한 아랫배 통증이었다. 그러나 위치가 애매하게 달랐다. 평소 배가 아플 때는 배꼽 바로 아래 3cm 정도가 아팠다. 그런데 이번 복통은 그보다 훨씬 아래였다. 그 아래에도 장이 있나? 싶을 정도로 아래였다. 그때부터 ‘아 이건 뭔가 아닌데’ 싶었다. 미열을 알아챈 건 내가 아닌 남자친구였다. 평소엔 꼭 붙어 잠을 청하던 남자친구가 언제부턴가 밤마다 내 다리와 몸이 너무 뜨겁다며 슬며시 몸을 떼곤 했다. 늦봄에서 여름이 되어가는 계절이기도 하고, 또 평소에 체온이 높은 편이기에 그런가 보다 하고 넘겼던 징후가 임신 초기 징후와 맞아떨어지는 것을 수많은 검색을 통해 알게 되었다. 그런데 내가 임신이라니?
아예 계획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주변의 수많은 케이스들을 보며, 노산의 범주에 들어가는 나이가 되어버린 만큼 나와 남자친구 둘 다 결혼을 앞두고 미리 시도해 보기로 했던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왜인지 모르게 내가 난임일 것이란 확신에 가득 차 있었고, 주변 난임 병원을 찾아보며 내방 일자를 조율하고 있던 터였다. 그런데 우리도 모르는 사이 자연스럽게 임신이 되었다. 나와 남자친구 모두 건강하단 뜻이기에 감사하고 기뻤다. 그런데 그건 그거고, 여전히 의문이었다. 내가? 임신이라고? 난 아직 이모감이지 엄마감이 되지 못한다. 어떡하지? 일단 병원 예약을 하고, 엽산도 사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자친구한테는 어떻게 말하지?
남자친구가 일어났고, 오픽 영어 시험을 봐야 해서 급하게 아침식사를 차리던 남자친구 앞에서 세상 복잡한 표정으로 앉아있었다. 졸린 표정으로 짜파게티를 먹는 남자친구를 휴대폰으로 찍기 시작했다. 평소 이러지 않는 나의 행동에 남자친구는 어리둥절해했고, 여전히 잠에 덜 깬 표정으로 내가 묻는 질문에 대답을 했다. ‘짜파게티는 무슨 맛이에요?’ ‘음, 짜파게티 쉐프가 찍은 맛.. 아니 찍은이 아니라, 이걸 왜 찍어?’ 그리고 슬쩍 임신 테스트기를 눈앞에 들이밀었다. 오물오물 씹던 남자친구의 입이 멈췄다. 눈이 커지고 이게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그리곤 드디어 알아차렸다. 눈이 더 커지며 나온 첫마디는 ‘어떡해?’였다. 너무 솔직한 반응에 웃음이 빵 터졌다. 계속 테스트기를 들며 놀라고도 웃는 요상한 표정을 짓던 오빠는 ‘큰일 났다!’ 며 크게 웃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세 번째 만에 ‘축하해’라는 말이 터져 나왔고 우리는 껴안으며 서로를 축하해 줬다. 어떡해. 큰일 났다. 축하해. 아직도 계속 긴가민가 하는 어안이 벙벙한 3주 차. 우선은 둘만 알고 있기로 하며 집 근처 여성병원을 예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