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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알밤 Aug 06. 2023

13주 차: 지독한 여름 감기


13주 차가 되자마자 감기에 걸렸다. 월요일 밤에 몸이 으슬거렸는데 화요일부터 즉각 심해졌다. 임산부는 면역력이 떨어져 있는 상태이다. 왜냐하면 면역력이 계속 높은 상태이면 몸에서 자라는 태아에 대해 면역 반응을 일으켜 유산에 이르게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감기는 즉각적으로 나를 잠식해 버렸고, 일주일 꼬박 열감기를 심하게 앓았다.


사실 원래도 면역력이 좋은 편이 아니기에, 감기는 나의 분기 행사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내가 ‘임산부’라는 조건이 달랐다. 평소 같았으면 바로 병원에 달려가서 콧물약과 기침약, 해열제 등등을 바리바리 처방받아 먹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현재 임신한 상태로, 먹을 수 있는 약이 한계가 있었다. 그나마 임산부에게 허용된 한줄기 희망 같은 타이레놀만 시간 맞춰 먹으며 모든 감기 증상을 오롯이 견뎌내야 했다. 오한과 식은땀으로 온 몸이 푹 젖어 하루에도 여러 번씩 씻었다. 바로 지난주 얼굴을 보고 온 차차가 원망스러웠지만 이겨내야만 한다. 바깥 날씨는 35도를 넘나드는데 나는 목에 수건을 두르고, 잔등에 핫팩을 붙이고 따뜻한 생강차를 마셨다. 약국에서 임산부가 사용 가능한 코와 목에 뿌리는 스프레이를 사 와서 뿌렸지만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그렇게 화, 수, 목, 금을 꼬박 앓고 나니 금요일 밤에서야 조금 정신이 들며, 감기 기운이 물러가는 느낌이 들었다. 아직 무시무시한 두통이 있지만 증상이 조금 가벼워지자 그렇게 기쁠 수 없었다. 성실하게 감기의 모든 증상들을 순차로 앓는 내 모습을 보고 남자친구는 토요일 아침이 되자마자 이비인후과로 나를 데려갔다. 진료를 보신 의사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길 임산부이기도 하고, 또 평소에 아목시실린 항생제 알러지가 있는 만큼 우선은 항생제 없이 증상을 완화시키는 약만으로 처방해 주시기로 하셨다. 임산부가 먹을 수 있는 약인지를 의사 선생님과 약사 선생님께 두 번, 세 번 체크하고 나서 약을 받아왔다. 처방받은 약을 딱 세 번 먹자마자 머리가 깨질 것 같던 두통과 속이 울렁일 만큼 흐르던 콧물, 그리고 폐가 터질 것 같던 기침이 뚝 멈췄다. 나는 양약을 믿는다! 현대의학 최고다! 를 다시 한번 느꼈다. 그리고 일요일인 지금, 약기운에 몽롱하지만 또렷한 정신상태로 이 글을 쓰고 있다.


이번 감기로, 예전에 안아키에 대해 읽었던 글이 떠올랐다. ‘약을 안 쓰고 아이를 키우자’를 모토로 하는 일부 부모들이 자식들의 면역력을 키우기 위해 병에 걸려 아파도 자연치유가 될 수 있도록 관장과 된장 등 민간요법으로 낫게 하는 방법이었다. 도대체 이들은 어떠한 생각으로 이렇게 발달된 현대 의학을 뒤로하고 아이를 앓게 두는 것일까. 평소에도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이제는 분노가 생기기 시작했다. 고열이 신경계에 미치는 영향과, 면역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은, 말도 제대로 못 하는 어린아이들이 겪을 고통을 생각하니 눈물이 차올랐다. 물론 약이 다 좋다는 것은 아니다. 분명하게 약에는 부작용이 있고 내성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러나, 의사에게 처방받은 적절한 양의 약은 우리의 삶의 퀄리티와 건강 증진에 분명 좋은 영향을 끼친다. 급격하게 늘어난 평균 수명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은가. 더 이상 안아키로 인해 학대받는 아이들이 없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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