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께 연락을 드려 내 어릴 적 앨범을 택배로 보내달라고 했다. 내 어릴 적 모습과 차차의 모습을 비교해보고 싶은 마음에, 약 7년간 부탁은 커녕 연락도 없었던 주제에 눈 딱 감고 엄마께 부탁을 드렸다. 택배가 도착하여 상자를 열어보니 잦은 이사와 오래된 시절로 낡고 찢어진 내 어릴 적 앨범이 있었다. 그리고 이 앨범을 열자,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나는 3남매의 첫째로 태어나, 연년생 남동생 한 명과 터울이 좀 나는 막내 동생을 두고 있다. 나는 20대 후반에 결혼한 엄마가 결혼한 지 5개월 만에 낳은 첫 아이였다. 십몇년만에 열어본 앨범엔 내 아주 어릴 적 사진들과 젊은 엄마와 아빠의 모습, 그리고 짧은 코멘트들이 남아 있었다. 비록 남동생이 태어나기 전 약 1년 동안에만 이었지만 그래도 평범한 내 모습에 사랑스러운 코멘트를 남기는 엄마와 나를 안고 웃고 있는 아빠의 모습, 하나하나가 모두 사랑이었다. 젊은 엄마, 아빠의 신혼의 단꿈에 젖은 미소들을 보며 울컥 슬픔이 몰려왔다. 이 사랑들은 모두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내가 기억하는 우리 가족의 모습은 늘 싸우는 부모님과 나에게 화내는 엄마, 일에서 지쳐서 돌아와 소파에서 잠을 자는 아빠였다. 어렴풋이 어릴 적 언젠가 저녁식사를 먹고 다 같이 과일을 먹으며 TV를 보다가 ‘지금 이 행복이 언젠가 끝날 것 같아’ 라며 울었던 기억도 있다. 가족끼리 아는 사이인 정신과 선생님께서 ‘세상을 맑게 보네요’ 라고 칭찬을 들었던 순간도 있었다. (당시 ‘맑다’ 라는 단어의 뜻을 몰라서 사촌언니에게 물어봤던 기억이 있다) 이때의 사랑은 어디로 휘발되어 버린 것일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게 되면 나와 남자친구도 이렇게 되어버리는 걸까? 무섭고 두려운 생각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변하지 않는 것이란 건 없다는 걸 잘 안다. 어제 친했던 친구와 오늘 틀어질 수 있는 것이다. 세상살이를 하며 사람의 감정이라는 것이 얼마나 한때이고, 휘발성이 짙은 지 많이 겪었다. 그렇지만 지금의 사랑과 행복이 불변하지는 않더라도 그래도 덜 변하게 할 수는 없는 것일까. 그러기 위해선 아마도 내가 생각할 수 없을 만큼의 큰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 물론 나 하나만의 노력으론 절대 불가능하다. 나와 남자친구, 그리고 태어날 차차 또한 다 같이 노력을 해야겠지. 만약 나와 남자친구가 싸우게 되더라도 절대 차차 앞에선 티 나지 않도록 해야지. 그리고 싸움을 절대 하루 이상 끌고 가지 않도록 노력할 것이다. 이해와 배려, 서로가 서로의 이 부분에 반해 결혼을 결심했듯, 서로의 이해와 배려가 절대 당연한 것이 아님을 늘 되새기며 하루의 끝엔 꼭 손을 잡고 눈을 마주치며 웃도록 노력해야지. 그래서 차차가 보는 이 세상에서 엄마 아빠의 사랑이, 우리의 신혼의 단꿈이 비록 빛바래더라도 여전히 존재함을 느낄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우리는 할 수 있다. 곧 작성할 혼인서약서에 이 내용을 꼭 추가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