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12주 차가 되었다. 오늘은 한 달 만에 병원 검진이 있는 날로, 1차 기형아 검사와 입체 초음파 검사를 하기로 한 날이다. 차차는 한 달 동안 얼마나 컸을까 두근두근하며 아침 일찍 병원으로 향했다. 오전 8시에 시작한 병원 검진은 친절하신 직원분들로 인해 매우 행복했다. 오늘 첫 손님으로 초음파 검진실에 들어섰다. 처음으로 배 쪽으로 초음파를 진행했다. 까만 화면이 밝아지며 무언가를 비추기 시작했다. 그리고 드디어 한 달 만에 보는 차차가 보였다. 내 눈엔 사람의 형체로 잘 보이지 않던 차차가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나와 남자친구 둘 다 너무 놀라 말이 사라졌다. 심장소리를 듣고, 입체초음파를 보고, 그리고 꼬물꼬물 실시간으로 움직임까지 보았다. 차차는 사람이었다.
사실 지금까지 나는 임신 초기로, 언제 유산될지 모르는 상황에 대한 마음의 준비 겸 입덧으로 힘든 몸 컨디션의 원흉으로 차차를 아직까지 ‘내 몸에 침입한 이생물체’로 여기고 있었다. 나를 불편하게 하고 나를 힘든 상황으로 밀어 넣고 있는 이생물체, 세포라고 내심 여겼던 차차가 어느덧 사람의 형태를 띤 것을 내 눈으로 확인하고 나니, 더 이상의 변명이 불가피했다. 차차는 나와 독립된 인격체로, 내 몸 안에서 자유의사를 표현하고 있다. 심적으로 큰 부담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내가 인간 한 생명체를 키우고 있구나’라는 느낌이 나를 점점 벅차오르게 하기 시작했다.
어벙벙한 상태로 초음파 검사실을 나와, 담당 의사 선생님께 1차 기형아 검사 소견을 들었다. 육안으로 확인 가능한 목 투명대 수치가 정상 범위에 들고, 심장과 성장속도 모두 좋다고 하셨다. 그리고 이제부터 안정기가 시작되었으니, 조금 마음을 놓아도 된다는 한마디를 덧붙여 주셨다. 몇 주 간이나 너무나 듣고 싶었던 ‘안정기’라는 단어가 이 순간만큼은 참 안 와닿았다. 안정기가 시작되었지만, 그동안은 내가 형체도 잘 못 알아보던 이생명체였으나 이제는 사람인 것이다.
인간은 인간을 닮은 다른 생명체 혹은 움직이는 물체에 대해 애정을 갖는 습성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동차와 배 같은 움직이는 운송수단엔 애칭이나 이름을 붙이지만 들고 다니는 휴대폰에는 붙이지 않는다. 최근에 남자친구가 미생물을 활용한 음식물 쓰레기 처리기를 샀는데, 미생물을 배양시켜서 음식물을 주고 증식을 눈에 볼 수 있다 보니 뭔가 애완동물 같은 느낌이 드는지 ‘밥돌이’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이 음식물 처리기 후기를 찾아봐도 이름을 붙인 사람이 꽤나 많고, 중고마켓에 되파는 건수도 매우 적다. 인간은 이렇게 다른 생명체에 애정을 주기 마련이다. 이러니 오늘 차차의 모습을 본 이후로 내가 어떻게 마음을 놓을 수가 있겠는가.
그 외에도 내가 차차에 대해 더 크게 느낀 부분이 하나 있다. 바로 차차의 이마다. 현시점에서 가장 뚜렷한 인간의 면모를 보여주는 차차의 이마는 내 이마를 닮았더라. (자신할 수 있는 게, 내 남자친구의 이마는 납작한 편이다) 차차의 이마처럼 내 이마는 윗부분이 높게 솟은 둥근형이다. 이마에 대해 이야기하자마자 남자친구도 내 이마를 닮았다며 신기해했다. 차차에게서 유전적으로 나와 닮은 모습을 봐버리자, 이미 샘솟은 애정이 마구마구 솟구치기 시작했다. 이 아이를 어째야 할까? 손가락 만한 아이가 벌써 나를 닮아있다니. 아직 성별도 모르고 제대로 된 생김새도 모르는 차차에게 마음을 홀랑 뺏겨버렸다. 우리 인간도 동물로써 이렇게 프로그래밍되어 있는 거겠지, 외적인 요소를 유전시키며 나를 닮은 내 자손의 모습에서 안도감을 느끼고 애정을 쏟아 키우도록 되어있는 것이겠지. 어렸을 적 읽은 이기적 유전자의 내용을 비로소 실감하기 시작했다.
아버지에게 차차와 나의 사진을 보내며, 닮은 곳이 있나 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자 아버지는 대뜸 ‘차차가 당연히 더 이쁘고 혹은 잘생겼을 거야’라고 답하셨다. 단호박이다. 할아버지의 손자 손녀에 대한 사랑도 이미 유전자에 쓰여있었던 것인지 아직 보지도 못한 차차를 아빠는 벌써 더 애정하고 계셨다. 그렇지만 그 말이 속상하진 않다. 그러길 나 또한 바라기 때문이다. 차차는 나와 내 남자친구의 모든 좋은 부분만을 닮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