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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알밤 Sep 22. 2023

19주 차: 키덜트 3n년차 & 이모 12년 차의 짬바


결혼식이 다음 주로 성큼 다가왔다. 19주 차는 결혼식 준비 및 신혼여행 대비를 위해 굉장히 바쁜 한 주였다. 병원, 네일케어, 에스테틱, 부모님 메이크업, 웨딩홀, 플래너님, 그리고 사진과 촬영 업체 연락까지. 수시때때로 울리는 전화에 골머리를 앓았다. 게다가 18주 차를 지나면서 갑자기 입맛이 확 돌며 먹고 싶은 건 왜 이리 많은지! 그래도 결혼식이 코앞인데, 조금이라도 덜 부은 모습을 보이기 위해 나름 하루에 2끼는 샐러드로 챙겨 먹는 노력도 했다. 그러던 중, 밤에 야채를 강판에 갈다가 손가락을 다치고 말았다. 살점이 살짝 떨어졌으나 피도 많이 나지 않아서 호다닥 붙이고 씻은 후 습윤밴드를 붙여놓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반지를 껴야 하는 왼손이 아닌 오른손이라는 것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속상해하는 남자친구에게 코로나에 걸리거나 부러지지 않은 게 어디야라며 이 정도면 양호한 액땜이라고 웃어주었다.


어느 정도 일정이 마무리된 금요일, 사촌 언니네 방문하기로 했다. (내가 언니네 놀러 간다고 하자 언니가 놀라며 ‘주말에 결혼하시는 분 아니세요?’ 하며 물었다) 수원에 매우 유명한 베이글 빵집이 있는데, 인기가 높아서 매일 오전에 모든 수량이 다 팔리곤 한다고 했다. 특히 뉴욕 유태인들에게서 베이글 만드는 법을 직접 배워오셔서 한다는 점과, 플레인 베이글 한 개에 990원이라는 가격에 호기심이 솟았다. 빵을 좋아하진 않지만 급 입맛이 돌은 나와 빵을 좋아하는 사촌언니를 위해 남자친구가 금요일 오전 8시부터 빵집에 가서 미리 주문해 놓은 베이글을 픽업해 왔다. 베이글 한아름과 나의 세 조카들에게 줄 책 선물까지 챙기고 언니네로 출발했다.


사촌언니의 세 아이들은 모두 책을 좋아한다. 그러나 각각의 아이들은 당연하겠지만 모두 관심 분야가 달랐다. 첫째는 요즘 아빠를 따라 애니메이션 ‘원피스’를 보고 있다. 아무래도 형부가 일본인이다 보니, 아이들이 일본어를 했으면 해서 원피스를 일본어로 보여주고 있는데, 첫째는 유독 원피스에 흥미가 높아서인지 일본어도 80% 정도 알아듣는다며 내게 자랑하곤 했다. 나도 어렸을 때 봤던 만화인 만큼 캐릭터와 내용을 어느 정도 알기도 해서 첫째에게 소설로 된 원피스를 찾아서 구해줬다. 만화책을 사줄까도 잠깐 생각했으나, 차차의 육아를 고민 중인 내 양심 상 도저히 허락되지 않아 소설로 열심히 찾아보았다. 다행히 각 캐릭터 별로 비하인드 스토리를 짧게 담은 글밥이 꽤 많은 소설책이 있어 구매를 했다.


여자아이인 둘째는 요즘 ‘요리’에 관심이 많다. 워낙 어렸을 때부터 음식과 먹는 것에 관심이 많고, 금방 행복해지는 아이였는데, 조금 자라다 보니 요리를 좋아하기 시작했다. 책을 읽다가도 요리나 음식에 관한 부분이 나오면 언니에게 부탁하여 언니와 함께 직접 만들기도 하고, 좋아하는 만화 역시 ‘이 세계 요리사’라는 음식 관련 만화이기도 하다. 언니 또한 아이의 흥미에 맞추어 영어 수업도 요리 관련 교재로 가르치고 있다고 했다. 또 본인의 첫 요리책을 보며 차차가 태어났을 때 해주고 싶은 케이크를 고르는 둘째의 특성을 고려하여 둘째를 위한 책 선물은 일상에서 할 수 있는 간단한 레시피가 있는 동화책으로 골랐다.


막내아들인 셋째는 어려서부터 소근육 발달이 상당했다. 게다가 머리도 좋아서 말도 둘째인 누나보다도 더 또박또박한 말투로 어려운 어휘를 곧잘 사용하곤 했다. 이런 셋째의 관심사는 ‘종이접기’이다. 매우 어렸을 때부터 종이접기를 좋아하기 시작했는데, 손끝이 제법 야무져서 각도를 맞추고 꼭꼭 눌러 모양을 잡는 모습이 웬만한 어른보다도 낫다! 이런 셋째를 위해 레전드급 미니카 종이접기 책을 골랐다. 레전드 레시피인 만큼 어렵기에 성취감이 있을 것 같았고, 또 각 미니카 특성에 맞도록 디자인된 특별한 색종이도 포함되어 있어서 완성품의 퀄리티가 좋아 보였다.


사실 이 책 선물들은 모두 나름의 뇌물이었다. 아무래도 어른들만 관심 있을 ’ 결혼식‘이다 보니, 혹시 지루할까 봐, 집에 가자고 조를까 봐 미리 선수 치기 위해 뇌물로 준비한 것들이었다. 책을 한 명, 한 명에게 주며 눈을 똑바로 바라보고 ’ 이번주에 이모 결혼식인데, 지루하다고 하거나 떠들지 않고 이모 잘 봐줘야 해, 약속하면 이모가 책 선물로 줄게‘ 하며 건넸다. 다행히 아이들의 취향에 딱 맞는 책 선물이었는지 모두 책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함박웃음을 띄운 채로 연거푸 알겠다고 외쳤다. 선물로 챙겨 온 베이글도 구워주니 모두들 각자가 원하는 장소에서, 각자가 편안한 방식으로 자리 잡아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이렇게 책을 좋아하다니, 너무 뿌듯한 모습이었다.

특히 책 선물을 가장 좋아한 건 첫째였다. 혼자만 글밥이 많은 소설책이었음에도 너무나도 좋아했다. 키덜트로 살아온 지 어언 3n년인 나의 취향과 또 각 아이들이 좋아하는 분야를 잘 파악해 온 프로 이모 경력 12년 차의 내공이 아주 뿌듯하고 보람찬 순간이었다. 기뻐하는 조카들의 모습을 보며, 똑같은 부모 밑에서 태어났을지라도 아이들이란 각각이 얼마나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는지, 그렇기에 얼마나 세심한 관찰이 필요한지와 다양한 경험의 중요성에 대해서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이러한 소중한 깨달음들을 절대로 잊지 말고 차차에게 잘 적용시켜야지.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품은 아이를 위해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는 풍부한 경험을 해볼 수 있도록 해주고, 그에 따른 흥미도와 관심을 잘 지켜봐 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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