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나저나 소장의 몫
"구청 아파트관리팀입니다. 방금 팩스로 문서 하나 보냈는데 잘 들어왔는지 지금 확인해 보실래요?" 뭔가 낌새가 이상해 순간 긴장되며 몸이 위축되었다. 전화기를 놓고 즉시 뛰어가 전송받은 문서들을 뒤지며 찾아보았다. 구청장 명의로 들어온 공문 제목을 본 순간 숨이 콱 막혔다. 과태료 부과통지. 환장하겠네~. 도대체 얼마짜리야? 금액 200만 원! 부과대상자는 입주자대표회의였다. 헉, 이거 대체 누가 낸담...?
전화를 한 구청직원은 그 통지문을 접수하고 10일 이내에 7일 이상 아파트 인터넷과 동별 게시판에 공개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걸 어기면 그 역시 과태료 대상이라며 으름장을 놓고 전화를 끊었다. 과태료, 과태료, 과태료! 아파트 관리업무에 적용되는 그놈의 벌칙과 과태료가 왜 그렇게 많은 것인지. 항상 염려하면서도 불만스러운 법규라 생각하고 있던 참에 드디어 터질 게 터져버렸다.
법령 위반 중 계약서 미공개라는 것이 있다. 공사, 용역 등의 계약을 체결한 경우 계약체결일부터 1개월 이내에 그 계약서를 공개하지 않은 사실을 지적하는 것이다. 몇 백 원짜리 볼펜을 사건, 5백만 원짜리 용역을 하건, 또는 7억 원짜리 공사를 하건 빠짐없이 계약서를 작성하고 그것을 한 달 내에 입주민들에게 낱낱이 공개하라는 규정이다. 국가계약법과는 달리 공주법(공동주택관리법의 약칭)에는 의외로 예외를 규정한 조항이 없다. 이번 구청에서 날아온 과태료 부과통지문이 곧 그런 경우에 해당하는 계약서 미공개였다.
적시된 내용을 보니 엊그제도 아니고 벌써 3년 전에 발생한 일이었다. 어떻게 그런 일이 발생하게 되었는지 너무나 의아했다. 파악해 보니 민원을 자주 제기하는 한 입주민이 있다는 것이다. 이번 사건은 그중 하나에 불과하다고 했다. 어휴~ 당시 소장과 겪었던 감정적 불화가 원인이 되어 현재까지 이어지는 표적 고질 민원인 셈이다. 구청 담당자는 안타까워했다. 제기된 민원은 규정에 따라 처리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라며 고충을 토로하였다. 미안하다는 말도 했다. 그간 일련의 사실조사를 했고, 위반 사실이 최근 확인되어 그에 따른 행정처분이 불가피했단다.
과태료 부과대상자로 지목된 입주자대표회의로서는 황당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군댓말로 하자면 침상 위에 수류탄이요, 마른하늘에 날벼락 맞은 격이었다. 다만, 행정처분이 현재의 입주자대표회의에 떨어지긴 하였지만, 과오는 3년 전 당시 동대표들에게 있다는 점에서 일말의 안도감을 느끼는 표정들이었다. 그들에게 구상권을 청구하면 되겠지만, 그 절차가 너무 머리 아프지 않냐는 볼멘소리도 터져 나왔다.
입주자대표회의 구성원인 동대표들은 저마다 분개하며 목소리를 높이면서도 궁금증을 하나씩 토로하기 시작하였다. 우선 무슨 돈으로 누구보고 내라는 것이냐. 과태료를 관리비로 내면 안 되냐. 관리소장인 나에게 묻는 것이어서 답을 해주어야 했다. "끝내 과태료를 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별 수 없지만, 이의신청 등 가능한 후속절차에 최선을 다해봐야죠. 갈 데 까지 가보고, 끝까지 대응하는 겁니다. 다만 과태료를 관리비로 낼 수는 없습니다". 재판 결과에 따라서는 부과취소 또는 감경 결정도 가능하지 않겠냐며 일말의 기대감까지 더해주었다.
행정처분에 불복하여 구청에 제출하는 이의신청서는 마땅히 부과대상자로 지목된 입주자대표회의 명의로 작성하여야 한다. 하지만 실제로 회장이든 감사든 동대표가 직접 작성하는 경우는 없다. 그들 갑(甲)을 위한 변명이라 할까. 그것은 전적으로 을(乙)의 입장인 관리소장의 몫이다. 당연시되는 관례다. 동대표들도 불만이 없을 수는 없다. 규정상 입주자대표회의 명의로 계약서를 작성하는 경우로 분류되어 있더라도 그것은 다만 확인, 날인 행위만 할 뿐 계약서를 게시하는 등 직접적으로 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그렇게 하는 것도 이상하고 그렇게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생업에 종사하며 입주민들을 대리해 동대표로 봉사한다는 점에 비춰보면 그 설득력은 더 높아진다. 관리소장은 이나저나 그들을 대변하는 역할을 외면할 수는 없다. 동대표들은 관리소장이 어련히 잘 알아서 하리라는 믿음을 갖고 있기 마련이다. 그런 일일랑 소장이 하는 것이라며 그저 손 놓고 지켜볼 뿐 달리 취할 방도가 없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입주자대표회의라는 것이 자치의결기구라는 기능과 역할 외에는 달리 실무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그 집행과 사무처리는 관리주체와 관리사무소장의 소관이다. 법령이 그렇게 정하고 있다. 따라서 입주자대표에게 과태료를 부과하려면 법적인 근거가 더 명확하게 정비되어야 한다. 부당하고 억울하다는 주장이 나올 수밖에 없다. 민원도, 관청의 감독도 그 사무처리는 관사무소장의 몫이다. 정말 힘든 일이지만, 그 만능의 역할을 잘 해내는 사람이 곧 능력 있고 환영받는 소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