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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쉐비 Nov 07. 2020

유쾌한 시지프스

쉐비와 올리비아의 엇갈린 동행

   아들과 딸이 염창동에 방을 얻어 산 지 거의 1년이 다 되었다. 아직 결혼도 하지 않은 아이들이 그렇게 서둘러 집을 떠나게 된 것은 그들의 일터가 집에서 너무 멀기 때문이다. ‘하나라도 결혼하고 나갔으면 좋으련만...’ 처음에는 각자 다른 원룸에서 살다가 여의도 방향 지하철역이 가까운 투룸 월세 오피스텔로 옮겨 간 곳이다. 무덤덤한 아들은 별로 말이 없었던 반면, 두 살 아래인 딸은 그렇게 해서 점차 독립하는 거라며 오히려 반겼다. 한번 엄마 아빠 집을 나간 이상 다시 돌아오는 일은 없을 거라며 단호한 어조로 한술 더 떴다. “그래??” 전혀 예상치 못한 반응이었으나 듣고 보니 대견스럽고 고마웠다. 아내와 나는 안쓰러움과 안도가 혼합된 표정을 지으며 미소를 지었다. 그때부터 우리 집은 주말 가족이 되었다. 그간 감칠맛 나는 말솜씨와 맛깔난 요리 솜씨로 집안의 윤활유 역할을 톡톡히 하던 딸내미가 그렇게 떠나자 아내와 둘만 남아 사는 우리 집은 그야말로 절간처럼 무미건조하고 조용해졌다.     




   2년 전부터 나는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아침마다 바삐 출근하던 규칙적 리듬이 마치 유통기한 지난 상품처럼 중단된 뒤부터다. 한동안 어색하고 이상하고 때로는 멍해지기도 하기를 반복했지만, 그건 바뀐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어차피 건너야 할 강이었다. 갑자기 정체성이 실종된 듯한 적응기간이 – 딱히 정해진 건 없지만 - 차차 소진되자 집에 머무는 것이 더 이상 불안하거나 불편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이제야 가정을 직시하게 되었고 아내는 앞으로 살아갈 내 인생의 가장 소중한 반려자로 다가왔다. 책에서, 매스컴에서, SNS에서, 때로는 대화 속에 전파되는 삶의 지혜는 이렇게 나에게도 선한 영향력을 끼쳤다.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는 일 없고, 서로에게 인색하기 짝이 없이 살아온, 무척 싱거운 우리 두 사람 아니었던가. 열심히 뛰다가 갑자기 집안에 위리안치(圍籬安置)된 처지인 양 창가에 홀로 앉아 대로를 질주하는 자동차 행렬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지난날들을 돌아보노라니 눈가에 슬그머니 뜨거운 기운이 감돈다. 무엇에 그토록 홀려 살았는지 모르겠다. 소중한 것, 소중한 사람들을 간과하고 너무나 소홀히 했다.

     

   퇴직한 남편이 밖에 안 나가고 집에만 있으면 삼식이가 돼 아내들이 왕짜증 낸다는 이야기를 직장 말년에 참 많이도 들었다. 지금까지 별일 없었던 부부 사이가 집에 같이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 자칫 악화되기 쉬우니 되도록 재취업해서 밖에 나가 일을 계속하는 게 좋다는 뜻이다. 그런 줄 알지만, 일반 사무직으로 일한 사람이 나이 60이 돼 정년퇴직하고 나서 다시 일자리를 구하기란 결코 만만한 도전이 아니라는 걸 경험으로 금방 알게 된다. 어느새 그 처지가 된 나에게 집사람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몰라 한동안 눈치를 살펴야 했다. 일을 더 해주기를 바라는 것 외에는 별로 불만이 없어 보였다. 내가 알아서 집안일을 이것저것 자질구레한 것까지 착착 처리하는 걸 보고서는 반색하더니 급기야는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해주라고 정색하며 웃었다.   



  

   무슨 일이든 하기 전에 그 주변이 정갈하게 잘 정돈되어 있지 않으면 나는 마음이 편치 않다. 그런 경우, 거의 99%는 제때 일을 시작하지 못한다. 물건이 여기저기 어지럽고 무질서하게 널려 있는 모습이 자꾸 신경 쓰여 일에 집중이 잘 안 되기 때문이다. 나는 고민할 것도 없이 신속하고 가지런하게 각각의 제자리를 찾아 배치하며 정리를 마무리한다. 물건들은 마치 열중쉬어 자세를 취하듯 저마다 있어야 할 자리에 반듯하게 놓인 채 매서운 나의 시선을 주시하는 모양새로 굳어진다. 줄이 잘 안 맞거나 열에서 조금이라도 삐져나오기라도 하면 여지없이 나의 손길이 다가와 바로잡아 줄 태세라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다는 듯한 눈치들이다. 군대 열병식 사열을 받는 병사들처럼 전후좌우로 정연한 질서가 유지되는 가운데 잠시 세상이 멈춰 선 듯 집안에 적막이 흐른다. ‘그래, 그것은 거기에 있어야 하고, 이건 여기에 있어야 해. 그렇지?’ 정리가 끝난 상황을 눈으로 점검하며 물건들과 나누는 마지막 대화는 짤막한 구두 선언으로 종료된다. “됐어!” 비로소 할 일을 착수해도 좋다는 신호를 뇌에서 입 밖으로 내보내고는 이내 자세를 고쳐 잡는다. 책을 읽던가, 신문 기사를 스크랩하던가, 그림을 그리던가, 장군 아비 김삼식의 신나는 기타 연주를 시청하던가, 아니면 브런치에 글을 쓰던가. 혼자서도 잘 노는 순한 아이처럼 나는 어느새 일에 집중하고 쾌감을 느끼며 점점 더 깊이 빠져든다. 몰입하며 자신에게 침잠하는 시간은 달콤한 쾌락처럼 유쾌하고 흐뭇하다. 그러니 정리가 먼저고 필수다.     


   반대로, 세상에는 정리가 질색인 사람도 많다. 그중에는 아예 ‘정리 DNA’가 없는 사람도 적지 않아 보인다. 좀 심했나? 성격이나 기질이 다름을 말하는 것이지 그렇다고 무시하거나 틀렸음을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멀리서 찾을 필요 없이 나의 반려자 아내도 그중 한 사람이다. 너저분하고 어지러운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고 오히려 반듯반듯하고 정돈된 모습이 때론 잘 이해가 안 된다는 것이다. 효율과 편리를 위한 질서가 어딘지 모르게 숨 막힐 듯 답답하며 부담스럽게 받아들여지기도 한다니 나로서는 그게 더 이해가 안 되는 편이다. 흔히 창의적인 사람들이 그런 부류에 많다고 곧잘 거론되기도 하니 ‘아, 저 사람도 아마 그런 기질이 있어서 그럴 거야’ 하고 관대하게 봐주고자 인내하는 편이다. 아니, 그보다는 처음부터 정리할 생각이 아예 없으니 벌써 오래전에 포기했노라고 솔직히 고백해야 속이 시원할 것 같다. 하고 싶은 대로 이렇게 말하고 보니, 그게 도대체 무슨 말이냐며 아내가 특유의 도끼 눈썹을 그리며 역공해올까 봐 신경이 좀 쓰이긴 한다. 동전의 앞뒷면처럼 성격이 다른 만큼 말도 신중하고 가려서 해야 예봉을 피할 수 있다.  



   

   30년 이상 한 집에서 살을 맞대고 살아온 우리 두 사람, 쉐비와 올리비아. 1997년 말 우리나라에 IMF(국제통화기금) 사태가 터지기 전, 직장 연수차 미국에서 잠시 살던 시절 현지에서 사용한 나와 아내의 각 닉네임(nickname)이다. 여전히 지금도 이름 대신 자주 사용하는 애칭이기도 하다. 쉐비는 정리정돈을 해야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렇지 않고 내버려 두는 건 자꾸만 마음에 걸리고 불편해서 참을 수가 없다. 올리비아는 정리라는 걸 생각만 해도 불편하다. 그따위는 아예 생각조차 안 한다. 너무나 자연스럽고 태평한 습관이다. 물건을 찾는다면, “그걸 내가 어디에다 뒀지?” 혼잣말하며 여기저기 뒤지거나, 옆에 있는 사람에게 “그거 못 봤어? 안 치웠어?” 하고 큰 소리로 말하며 들쑤시는 사람은 언제나 올리비아다. 그런 일이 잦다. 그렇지만, 쉐비는 찾는 물건이 어디에 있는지 이미 잘 알고 있다. 그러니 옆에 있는 사람에게 그거 어디에 있냐며 물어볼 필요도 없이, 눈 감고도 손을 뻗어 조용히 가져올 정도다. 큰 소리로 말을 많이 하는 올리비아와 정반대로 쉐비는 소리 없이, 쥐도 새도 모르게, 티 안 나게, 묵묵히 일을 처리하는 방식을 좋아한다. 인생관으로 삼는 상선약수(上善若水)가 일거수일투족(一擧手 一投足)에 은근히 묻어난다. 자기가 한 일도 소위 생색을 내지 않으니 주변에서 눈치채지 못하거나 몰라주는 경우가 허다하다.      


   창과 방패 같고, 선인장과 해바라기 같기도 한 올리비아와 쉐비. 이 세상에서 드라마 같은 삶을 살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마는 반대도 그런 반대가 없고, 안 맞아도 너무 안 맞는 이 극단적 두 성격이 인연을 맺고 오늘에 이른 데 대하여 서로가 기적 같고 끔찍하고 수수께끼 같고 또한 아이러니컬한 동행이었다는 데에 동의한다. 잔뜩 화난 목소리로 “우리는 정말로 안 맞아!” 하고 허공에 내뱉는 외마디는 요즘도 돌발적 상황에서 무의식적으로 터져 나오는 현재 진행형이다. "정마~ㄹ~~~!!!" 그렇게도 다름을 서로가 인정하는 것에는 전혀 견해 차이가 없다. 지금까지 그런 삶이 어떻게 지속 가능했고, 앞으로 남은 세월은 또 어떻게 헤치며 가야 하나. 정년퇴직으로 엊그제 막을 내린 인생 1막은 마치 말 두 마리가 서로 정반대 방향으로 등을 돌린 채 수레를 끌고 가고자 기를 쓰는 형국이나 다름없었던 것 같다. 잘 살아보자고 둘이 힘을 합해도 힘겨운 세상을 우리는 그토록 서로 탓하고 지적하는 데만 유독 열을 올리며 먼 길을 왔다. 지나온 자국마다 상대방을 부정하며 자존심 대결을 벌였던 흔적이 역력하다. 올리비아가 가는 방향을 보고 내가 좀 더 창의적으로 움직였다면, 우리는 멋진 조화를 이루어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서로가 피곤하게 하지 않고 마음 편하게 사는 방법을 찾아볼 생각은 하지 않은 채 눈먼 봉사처럼 살았다. 그 많은 시간 동안. 분하고 아쉽지만, 다 가버린 세월이다. 눈 앞에 있는 바위를 산 꼭대기로 힘껏 밀어 올려놓으면 바닥으로 굴러 떨어지고, 그러면 또다시 그 바위를 산 정상으로 밀어 올려야 하는 고생을 평생 반복한다는 시지프스의 신화는 마치 우리 두 사람의 이야기와 다름없었다. 마냥 꺼내고 벌려놓기만 하는 올리비아, 여기저기 어지럽게 널려있는 것들을 제자리로 정리해둬야 직성이 풀리는 쉐비. 만약 까칠했던 알베르 까뮈가 지금의 우리를 보았다면 마냥 낙서만 하는 여자 옆에서 지우개로 일일이 지우고 있는 남자를 그의 작품 속에 등장시켰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웃음이 나왔다. 알고 보면 우리는 서로 반대로 일하는 시지프스나 다름없는 삶을 살아온 셈이다. 서로가 힘들고 고통스러웠던 것은 둘 다 같은 방향으로 움직여주지 않는다고 그때마다 어김없이 열불 내며 지적한 데 있었다! 그녀가 갖고 있지 않은 것을 기꺼이 내가 채워주며 도와주겠다는 마음 하나가졌으면 정말 죽이 착착 맞았을 텐데 진작에 그렇게 못 했는지 모르겠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우리는 서로 반대로 고생을 일삼는 영락없는 시지프스 부부였다. '그래, 맞아. 바로 그거야. 우리 둘 중 누구도 틀리지 않았어. 나만 생각을 바꾸면 돼. 내가 좀 더 고생하면 되는 문제였어' 창밖으로 먼 산을 바라보며 생각을 그렇게 바꾸기로 하였다. 그래, 이제부터 우리는 유쾌한 시지프스 부부로 사는 거야. 사랑하며 고생하고, 고생하며 사랑하는 것이 행복이라고 말씀하신 금년 100세 철학자 김형석 교수님의 어록이 생각났다. 나를 바라보시며 특유의 어조로 "쉐비, 그거 이제 알았어요?" 하실 것만 같다. 너무 늦게 현명해져서 인생이 비극이라는 말에 쉬이 공감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며칠에 불과하더라도 이 세상에 머무는 동안 그렇게 깨닫고 살다 가는 것이 더 값지고 현명하다는 말로 나의 버전(version)을 기록해두고 싶다. 주말이면 집에 오는 아이들도 달라진 엄마 아빠를 보고 엄지 척하며 응원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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