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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쉐비 Apr 03. 2021

아파트가 된 분양형 노인복지주택

중계동 중앙하이츠 아쿠아의 경우

   내 집을 내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고, 처분 시 특정한 사람한테만 거래하라는 분양형 노인복지주택은 애당초 발상부터 잘못된 정책이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런 기형적 상품을 출시하면 안 된다. 이로 인하여 지금도 수천 세대의 입주자들이 불편과 고통을 호소하며 제도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분양형 노인복지주택 단지마다 갖가지 분란이 계속되는 것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며, 정책이 잘못됐다고 비아냥거리는 소리는 또 언제까지 들어야 하는가. 배타적이고 전면적 행사가 보장되어야 할 소유권 침해가 가장 크다. 매매, 임대 등의 거래는 물론 입주도 아무나 해서는 안 되고, 반드시 60세 이상인 사람만 가능하다는 노인복지법 규제 때문이라는 것은 이제 식상한 상식이 되었다. 법대로 하자면 60세 미만인 가족은 부모가 사는 복지주택에 전입하여 같이 살 수도 없고, 같이 살아서도 안 된다. 시청 노인복지과에서는 단속을 빌미로 60세 미만인 사람은 주민등록 전입을 받지 말라고 주민센터에 문서를 보내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실제 거주이전의 자유를 제한하는 일이 우리 사회 일각에서 이처럼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    



 

   2020년 기준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은 812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15.7%를 차지하고 있다. (21.3.29. 중앙일보). 이 수치는 고령사회의 기준인 14%를 이미 넘어선 것으로 국가가 노인복지를 모두 감당하기 어려운 단계로 진입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상황에서 은퇴자를 포함한 노인들 가운데에는 이른바 Aging In Place, 즉 재가복지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자신이 거주하는 집에서 편안하게 늙어가고 싶은 것이다. 2017년 보건복지부 조사에 따르면, 만 65세 이상 노인 10명 중 9명(88.6%)이 “현재 사는 집에서 계속 거주하길 희망한다”고 답했다.(2019.11.20. 조선일보). 자식들과 더불어 오순도순 같이 살 수 있다면 황혼의 행복감은 배가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행 노인복지법대로라면 이러한 소망은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로망(romance) 혹은 노망(老望)이다. 그것은 법으로 금지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분양형 노인복지주택에 대하여 시행하는 시청의 복지행정이라는 것은 이처럼 가족이 같이 사는 것을 막는 일처럼 감시, 단속하는 것 외에는 눈을 씻고 보아도 보탬이 되는 것은 없다.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행정기관이 그런 일을 과연 복지라는 이름으로 할 수 있는 것인가. 언어도단이다. 유독 분양형 노인복지주택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점에서 행복추구권이 제한되고 있다. 국가의 노인복지정책이 거꾸로 가거나 왜곡되고 있다. 노인이 된 부모도, 그들의 자식과 손자녀들도 생각할수록 기가 막힐 일이다. 이런 집에 사는 것이 죄인가.  

   



   분양형 노인복지주택의 연혁을 살펴보면 중요한 변곡점이 몇 번 있었다. 이 제도가 갑자기 논란의 대상으로 떠오르게 된 것은 2006.7.11. 사업계획 승인을 받고 2008.6.20. 입주를 시작한 서울시 노원구 중계동 중앙하이츠 아쿠아 노인복지주택이 계기가 되었다. 지상 10층 높이의 4개 동 219세대 규모로 지어진 이 주택의 사업시행사는 노원구청으로부터 60세 이상 노인만 거주가 가능하고 복지시설로 지정받을 것을 조건으로 취득세와 등록세를 절반만 냈고 용적률 혜택도 받았다. 그러나 입주가 시작되기도 전에 전체 세대 중 3분의 1 가량이 이미 다른 사람에게 집을 되판 것으로 드러났고, 집을 산 사람들은 60세가 넘지 않아 입주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당시 이러한 전매를 막을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었고, 결국 보건복지부나 노원구청은 이들의 입주를 허용할 수밖에 없었다. 60세 이상이 안 사는 것은 법을 어긴 것이어서 구청이 60세 미만인 입주자들에게 나가라고 말은 하지만, 강제로 나가게 할 수는 없었다.(2008.6.26. 연합뉴스, 2008.6.29. MBN).    



 

   이에 따라 보건복지부는 2008.8.4. 민간건설업체가 경쟁적으로 노인복지주택을 건설하고 입주자격자가 아닌 자에게 분양하여 일반 공동주택과 같이 거래되면서 당초 의도한 노인복지주택의 제도적 취지가 훼손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노인복지법을 개정하였다. 노인전용 주거시설인 노인복지주택을 건설하는 민간건설업체에게는 건축부지 취득에 관한 조세를 감면받고 일반 공동주택에 비하여 완화된 시설 설치기준을 적용받는 등 각종 보조와 혜택이 주어지는 것을 이용하고자 하였기 때문이다. 법률 개정으로 노인복지주택의 분양·양도·임대의 대상을 입주자격 기준인 60세 이상의 자로 명확히 하고, 이를 위반하는 경우에 대한 처벌규정을 마련하였다. 그러나 법 시행 전에 미리 분양받은 사람들의 재산권 침해 등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하게 됨에 따라 2011.3.30. 보건복지부는 이들을 구제하기 위한 부칙을 마련하였다. 즉 2008.8.4. 이전에 건축허가를 받았거나 사업승인을 받은 분양형 노인복지주택은 양도 또는 임대하거나 입주가 60세 미만인 사람도 가능하도록 규제를 해제한 것이다. 일반 아파트와 다름없이 거래할 수 있는 길이 이때 트였다.

그 후에도 분양형 노인복지주택이 이래저래 문제가 끊이지 않자 보건복지부는 2015.1.28. 분양형을 폐지하고 임대형만 가능하도록 개정한 노인복지법을 공포하였다. 시행은 공포 후 6개월이 경과한 날(2015.7.29.)부터 하기로 하였다. 문제는 그 6개월 사이에 벌어졌다. 조세감면과 용적률 상향 등 달콤한 혜택을 누릴 수 있는 분양형 노인복지주택의 사업시행사에게는 마지막 절호의 기회가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수익성이 좋은 수도권에서 대량의 노인복지주택 분양 허가가 이루어졌다. 더 이상 나올 수 없는 분양형 노인복지주택의 끝물이었다. 수원광교 아르데코(261세대), 수원광교 두산위브(547세대), 용인동백 스프링카운티 자이(1,345세대), 용인수지 광교산아이파크(537세대)등 약 3천여 세대에 달하는 그 사업장들은 2020년 초까지 모두 입주를 완료하였다. 여기서 주목할 문제는 사업시행자들의 이익은 보장해주었으나, 2011.3.30일자 부칙으로 풀었던 입주자격 등에 관한 족쇄를 다시 채우며 후퇴해버렸다는 데에 있다. 그 폐해는 모두에 기술한 바와 같다.



      

   이러한 멍에를 쓰고 탄생한 분양형 노인복지주택의 현재 실상을 살펴보면, 단지마다 각기 다른 사정으로 분란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노인복지주택은 주택법상 주택도 아니고 공동주택도 아닌 준주택이며, 건축법상으로는 노유자시설이다. 따라서 공동주택관리법이 규정하는 의무관리대상이 아니며 관리비 부과 등 세부 기준도 없다. 관리가 제대로 될 리 없고 투명성 확보도 어렵다. 주택관리업자를 직접 선정할 수 있는 권한도 없다. 임대형과 다름없이 설치자가 직접 관리하거나 위탁하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입주자가 주도적으로 관리권을 행사할 수 없는 것은 마치 눈 뜬 봉사로 살라는 말과 다름이 없다. 입주자들이 겪는 불평, 불만, 고통의 원인이 바로 여기에 있다. 문제가 많아 폐지한 분양형 노인복지주택은 이제 기형아가 아니라 사생아나 마찬가지인 처지에 놓여있다. 제도를 만든 보건복지부는 소유권 침해, 거주이전의 자유와 행복추구권 제한 등 이미 노출된 숱한 문제를 도외시한 채 녹슨 규제에만 집착하며 입주자들의 절규에는 귀를 막고 있다. 주택의 공급과 관리를 담당하는 국토교통부는 자기 소관이 아니라며 들으려고 하지도 않는다. 분양형 노인복지주택은 이처럼 칸막이 행정의 극치 사이에 내동댕이쳐져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는 사생아 신세와 다름없다. 가야 할 길은 명확하다. 더 이상 방치하지 말고 조속히 공동주택으로 전환하여야 한다.



     

   최근 노원구 중계동 중앙하이츠 아쿠아 노인복지주택이 일반 아파트로 변경된다는 보도가 나왔다.(2021.3.4. 서울신문). 노인복지주택을 공동주택으로 변경하는 첫 사례이자 모델케이스가 나온 것이다. 그 과정을 살펴보면 이렇다. 입주민들은 입주 후 2년 동안 의무실, 식당 등 일부 시설을 운영하지 않았다. 이에 노원구청은 노인복지법 위반이라며 네 번의 시정명령을 내렸고 법 절차에 따라 2010.5.31. 노인주거복지시설 사업을 폐지하였다. 설치자가 신고한 사업의 폐지로 노인복지주택과 공동주택을 구분할 수 있는 유일한 조건이 사라지게 되었고, 중앙하이츠 아쿠아는 노인복지주택의 기능을 상실하여 노인복지주택도 아니고 공동주택도 아닌 제도권 밖의 건축물로 전락하게 되었다. 그 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지난 10년간 중앙하이츠 아쿠아 입주민들의 끈질기고 지루한 노력이 있었음은 불문가지다. 노원구청, 시의원, 지역구 국회의원 등과 같이 합심 노력하여 얻어낸 기념비적인 성과라 할 만하다. 2021.2.25일 서울시는 이 주택이 서있는 사회복지시설용지를 공동주택용지로 변경하는 도시관리계획 변경 결정을 관보에 고시하였다. Period!



     

   분양형 노인복지주택을 공동주택으로 변경하기를 갈망하는 입주자들에게 중앙하이츠 아쿠아 사례가 시사하는 점은 크다. 노인주거복지시설 사업이 폐지되도록 운영하는 것은 숨통을 끊는 행위나 같다. 그것은 의무실을 사용하지 않는다거나 식당을 운영하지 않는다거나 아니면 운영위원회를 가동하지 않는 등 일부 기능을 마비시키면 된다. 그러면 노인복지주택의 기능은 상실되고, 시청은 노인복지법 절차에 따른 행정처분 후 사업 폐지 명령을 내려야 한다. 시설기준, 직원배치기준 및 운영기준을 위반한 때에는 시장·군수·구청장은 노인복지법 시행규칙에 따라 행정처분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 기준에 따르면, 1차 위반(경고), 2차 위반(사업정지 7일), 3차 위반(사업정지 15일), 4차 위반(사업폐지) 순으로 처분하게 돼있다. 최종적으로 사업이 폐지되면 무신고 주택이 되어 주택연금을 받지 못하는 불이익이 불가피하겠지만, 그렇더라도 입주자들은 결국은 중앙하이츠 아쿠아의 전철을 밟게 될 것이다. 굳이 이런 가시밭길을 가야 하겠는가. 보건복지부와 국토교통부가 머리를 맞대고 해결책을 내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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