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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쉐비 Dec 16. 2020

관리권을 인수하다!

제3의 길에서 찾은 돌파구


   한 해가 저무는 12월의 마지막 날 오후, 나는 주택단지 인근 카페에서 강 대표를 오랜만에 다시 만나 반갑게 악수를 하였다. 나는 그 자리에 비상대책위원장을 역임했던 손 선생과 법에 밝은 이 선생을 동행하고 갔다. 강 대표는 그 두 사람이 동대표인 줄 알고 대하는 것 같았다. 내가 사전에 몇 사람과 같이 참석할 것이라고 말은 했지만, 구체적으로 그 두 사람이 누구라고 밝히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상황이 어려워진 만큼 서로가 좀 더 진지하고 솔직한 대화를 나눴다. 우리는 이참에 밀어붙여야 한다는 생각으로 팀웍을 발휘하며 좀 더 적극적인 공세를 폈다. 강 대표도 사뭇 전향적인 태도로 응했다.

협상장으로 이용한 까페. 이제 역사의 일부가 되었다.

   줄다리기하며 회의가 두 시간 반 정도 지날 즈음, 우리는 어렵사리 개략적인 합의서 초안을 도출할 수 있었다. 대화하며 내가 메모했던 내용을 강 대표 앞으로 내밀며 보여주자 그가 일부 표현을 바꾸자고 응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초안이 만들어졌다. 양측의 주장을 절충하고 그것을 서면으로 작성한 것은 향후 협상의 기준점이 되는 것이어서 매우 의미 있는 성과였다. 우리 일행도, 강 대표도 일단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앞으로 한 달간의 일정으로 협의를 하고 최종 합의서를 작성하기로 하고 헤어졌다.  

    



   그날 이후, 이메일과 전화로 여러 차례 합의서 초안을 수정하며 주고받았으나, 당초 예정했던 한 달이 훌쩍 지나도록 도무지 결말이 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 사이, 시청에서는 인사발령이 났다. 여태까지 손발을 잘 맞춰왔던 한 팀장이 다른 부서로 가버렸다. 자신은 작년에 그 부서에 와서 이번에는 이동하지 않을 거라고 장담하듯 말하더니 소리 소문도 없이 훌쩍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 자리에는 장 팀장이 새로 부임하였다. 그는 처음 맡은 일이라 업무 파악을 해야 하니 시간을 좀 달라며 상당한 시간을 끌었다. ‘별 수 없지.‘ 강 대표와 나는 그동안에도 서로가 무리한 요구를 한다며 입씨름을 하는 일이 빈번했다. 내가 보기에 강 대표가 진정으로 관리권을 내놓을 생각 없이 쇼만 하며 시간을 끄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하였다. 그 역시 입주민들로부터 아무런 담보도 받지 않고 어떻게 물러갈 수 있겠냐며 또다시 면책에 매달리는 주장을 되풀이했다. 서로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며 협상에 진전이 없자, 나는 합의서 초안을 변호사에게 자문해보는 게 좋겠다고 생각하였다. 여기가 분수령이라 생각하였고, 협상 계속 여부를 판단하자면 믿을 만한 근거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입주자대표회의에서 그렇게 하기로 동의를 받았다. 다만 오 감사만 자문받을 필요 없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으며 반대하고 회의장에서 퇴장하였다. 분위기가 갑자기 얼어붙으며 잠시 흔들리기도 하였지만, 나머지 대표들은 계속 추진해야 한다며 회장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방법이 좀 구차하지만, 변호사 자문료는 우선 동대표들이 균등하게 갹출하고 추후 관리비에서 보전하기로 하였다. 관리비를 시설의 장이 부과하고 관리소장이 대행하는 체제여서 그들이 인정하지 않는 입주자대표회의에 비용 지출을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 감사는 분담금도 낼 수 없다며 참여하지 않았다. 자문 회신을 받기까지는 예상보다 많은 시간이 걸렸다. 변호사는 입주민들에 대한 설치자의 요구가 무리한 면이 있고, 형평의 원칙에도 어긋나는 요구를 포함하고 있다며 부정적인 의견을 보내왔다. 나는 굴욕적인 합의는 해봐야 두고두고 짐이 될 거라 생각하였다. 설치자와의 협상을 중단하는겠다는 의사를 입주자대표회의에 부쳐 동의를 구하였다. 강 대표에게 협상을 더 이상 계속할 생각이 없다고 즉각 통보하였다. 협상 결렬을 선언한 것이다.




   강 대표와 연락이 끊긴 채 며칠이 흘렀다. 어떤 경우라도 상황이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가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돌아보면, 5개월 가까이 끌어온 협상 끝에 아무런 성과도 없이 손을 털고 일어선다는 것은 회장으로서 체면이 서지 않는 일이다. 관리권을 찾아오는 일은 입주민들이 가장 우선으로 꼽는 현안이어서 나에게 떠맡겨진 공약이나 다름없는 숙제였다. 어떤 식으로든 다른 돌파구를 찾아야 했다. 며칠을 고민하다가 강 대표에게 전화를 하였다. 나는 지금까지 검토했던 합의서 초안은 폐기해버리고, 제3의 길을 찾아보자고 제안했다. 그러면서 내가 생각하는 구상안을 차근차근 설명해주었다. “그게 바로 제가 처음에 제안했던 내용이잖아요!” 내 말을 다 듣고 난 강 대표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생각해보니 언젠가 들었던 것 같기도 해 머쓱했지만 이제 와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운영규정을 개정하자고 했다. 내 주장의 핵심이었다. 관리운영체계를 규정으로 정하면 된다고 봤기 때문이다. 강 대표는 시설의 장을 관리소장이 겸직하게 하자는 의견도 냈다. 좋은 생각이었다. 그리고 운영규정이 개정되면 사업자등록증을 관할 세무서에 반납하겠다고 하였다.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관리권을 이양하겠다는 강 대표의 진정성이 느껴져 반가웠다. ‘강 대표, 오늘따라 아주 쿨하게 나오는군. 오케이!’ 그것은 쌍방 대표가 서명할 필요도 없는 묘안이었다. 서명하지 않으니 서로에게 부담이 될 일도 없이 깔끔한 방안이었다. 동대표들도 그거 참 잘 됐다며 모두 찬성하였다. 오 감사는 “그거 봐, 내 말이 맞았잖아“ 하며 나를 쳐다봤다. 오 감사가 내용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우쭐한 제스처를 하는 것을 보고 나는 그게 아니라며 반박하고 싶었지만, 잘 끝난 마당에 더 이상 거론하지 않았다. 운영규정은 시청에 제출하여야 하므로 개정안을 시청 노인복지과 확인을 받아 확정하기로 하였다. 시청은 감독자로서 역할은 하되 흔적은 남기지 않는 방식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여태까지 닭갈비로 만 알았던 시청이 이 지경에 이르러서는 우리가 꼭 통과해야 할 관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장 팀장도 기꺼이 돕겠다며 동의하였다. 처음 시도했던 협상 방안과는 전혀 다른 제3의 길을 선택하고, 거기서 결정적 돌파구를 찾아낸 것은 그야말로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강 대표와 내가 메모 형식으로 합의한 내용을 시청 노인복지과 장 팀장에게 전달하고 혹시 의견이 있으면 알려달라고 하였다. 운영규정 개정안도 그렇게 하였다. 그는 특별히 다른 의견이 없다며 합의사항에 동의하였다. 그것은 곧 관리권 이양에 관한 3자간 합의가 비로소 타결되었다는 의미였다. 당초 1개월 목표로 했던 일정이 7개월 만에 결실을 보게 된 것이다. 합의사항 이행과정에서 약간의 신경전이 있기도 하였으나, 대체로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진행이 잘 안 된다 싶은 지점에서는 강 대표가 적시에 리더십을 발휘해주고 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그것은 그와 내가 장기간 협상하는 동안 쌓아온 신뢰가 작동한 것이리라 생각이 돼 고마웠다. 설치자가 세무서에 사업 폐지 신고를 하고, 우리는 이어서 입주자대표 명의의 사업자등록증을 발급받았다. 그것은 관리권 인수의 대미를 장식하는 화룡점정(畵龍點睛)이었다. 실로 역사적인 순간이라는 기분이 들어서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사업자등록증을 받아 관리사무소장에게 전달했더니 관리사무소 직원들이 일제히 놀라워하며 그 장면을 바라보았다. 소장은 나에게 수고했다는 말 대신 내가 건네준 사업자등록증을 내려다보며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거 액자 해서 벽에다 걸어야겠네요." 직원들은 절대 불가능할 거라고 믿었던 일이 끝내 일어나고 말았다는 표정들이 역력했다. 그것은 어쩌면 올 것이 왔다며 밖으로 드러난 불안감의 표시였을 것이다.


   그날부터 입주자대표 주관으로 관리업무에 대변혁이 시작되었다. 가장 먼저 입찰공고를 하고 새로운 관리업체를 선정하였다. 기존 업체는 입찰에 참여하지도 않았다. 그간 횡포를 부리듯 부실하게 관리하였고, 입찰 과정에서도 집요하게 방해 공작을 일삼은 기존 관리업체를 깨끗이 갈아치웠다. 그들은 주택관리업자로서의 마땅한 본분과 역할을 망각하고 정작 서비스해야 할 입주민들은 무시한 채 오로지 설치자에게만 충성을 다하는 편향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계약자인 설치자가 그 지위를 유지하며 영원히 갈 줄만 알고 오만하게 군림하는 어리석음을 저질렀다. 입주민들이 목격한 그들의 잘못은 크고 심각했다. 사실 요즘 같은 서비스 경쟁시대에, 그것도 유명 브랜드를 달고 있는 업체가 그러리라고는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처사였다. 고객을 망각한 기업은 시장의 냉엄한 평가를 받아야 했고, 결과적으로 퇴출은 불가피했다. 관리하는 단지를 하나 잃는다는 것은 그 속성을 너무나 잘 아는 그들에게 뼈아픈 기억으로 오래 남을 것이다. 그런데 새로 선정한 관리업체와 입주자대표가 계약하는 과정에서는 시청 노인복지과의 감시를 끝내 피하기가 어려웠다. 경우에 따라서는 거부권을 행사할 수도 있다는 신호를 여러 번 보내왔기 때문이다. 새로 선정하는 관리업체는 노인복지법 시행령에 규정된 조건에 부합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주택관리는 설치자가 직접 하거나 규정으로 정한 자격을 갖춘 자에게 위탁하는 방식이어야 한다고 하였다. 법대로 해야 안전하다는 사고가 융통성의 여지를 조금도 허용하지 않은 채 그대로 적용되었고, 우리는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관리업체를 선정하긴 하였으나, 계약서는 결국 설치자가 관리업무를 우리와 관리업체에게 위탁하는 형식으로 작성하고 마무리해야 했다.


   입주자대표 명의의 인장을 만들고, 통장도 개설하여 결재를 시작하였다. 전기, 통신, 하자보증증권, 가스, 지역난방 등 각종 계약자 명의도 그렇게 순차적으로 변경하였다. 변경하는 모든 일에는 반드시 회장 인감과 사업자등록증이 각각 들어가야 했다. 사업자등록증은 그런 의미가 있었고 그렇게 중요했다. 회장인 나는 직원들에게 이제부터 모든 일의 처리기준은 입주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고객만족이라는 점을 누차 강조하였다.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강 대표와의 약속에 따라 불가피 고용을 승계한 관리사무소 직원들은 태도가 눈에 띄게 달라지기 시작하였다. 이제 비로소 입주민들을 진정한 서비스 대상으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사업자등록증을 받은 날은 마치 식민통치에서 벗어나듯 입주민들이 주권을 되찾은 날이나 다름없이 기쁜 날이었다. 비로소 새로운 날이 밝은 것이다. 나는 입주자대표로서 어려운 현안을 해결하고 넘어야 할 산을 넘어섰다는 승리감으로 흐뭇하였다.




   나만의 일이 아닌 입주민들을 위한 일을 하고 봉사하면서 처음 느껴보는 만족감은 확실히 색다르고 달콤했다. 그것이 어떤 것들인지 하나하나 손꼽아 보며 마음속 깊은 곳 높은 성채에 둘러싸여 있는 '나'에게 위로와 찬사를 보내주었다. 리더십이 어떻게 발휘되어야 하는가를 때로는 공부하고 점검하며 마땅한 역할을 하였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약속을 지켰고, 체면을 세웠다. 무엇보다도 용기에 가득한 물처럼 감정은 좀처럼 흔들리지 않았고, 지독할 만큼 끈질긴 인내심은 나의 본래 모습을 지키는 일등 공신이었다. 소송 대신 협상으로 해결한 것 역시 지극히 '나'다운 면모였다. 집에서, 세상 누구보다도 나를 잘 아는 가족들이 수고했다고 손뼉 치며 축하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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