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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쉐비 Jul 10. 2022

거칠게 꺼내는 우당탕 여사, 집어넣기 바쁜 바깥양반

극단의 성격이 가까스로 손발을 맞춘 인생의 역설

   월요일은 왠지 힘들다. 월요병이라 불리는 수십 년 된 정신질환이 60 넘어 재취업한 지금도 가끔 그런 느낌으로 찾아온다. "여보, 오늘은 영판 힘드네~ 일찍 퇴근해야겠어. 배도 고프구마..." 아내에게 미리 문자를 날렸다. 빨리 집에 가서 뭘 좀 먹어야겠으니 준비를 해달라는 신호다. 퇴근을 일찍 한다는 미적미적 지체하지 않고 오후 6시 정시에 맞춰 사무실을 나선다는 뜻이다. 평소 아내가 말하는 버전으로 다시 말하자면, '영감이 씨알 데 없이 퇴근시간 지나도록 자리에 앉아있지 말라'는 것이다.ㅋ "○○. 엊저녁에 골방에서 혼자 뭘 하는지 몰라도 늦게까지 안 자더니, 피로가 쌓여서 그런가 보네~ 빨랑 와요!" 아내 한테서 문자로 답이 왔다.




   7월 초순 이건만, 무더위가 벌써 보통이 아니다. 오른쪽 바지 주머니에서 카드키를 꺼내 집 대문을 열었다. "어서 오시오~!" 주방에서 일을 하고 있던 아내가 스윽~하고 문 열리는 소리를 듣고 현관으로 달려 나와 웃으며 맞아주었다. 눈동자를 마주치 내가 들고 있던 도시락 가방을 건네받고서는 얼른 주방 쪽으로 갔다. 궁댕이를 실룩거리며 뒤뚱뒤뚱 허리 굽히고 걸어가는 뒷모습을 쳐다보고 있자니 엔돌핀이 마구 솟는 모양이다.^^ 나는 아내가 그렇게 밝은 표정으로 대해주는 것이 좋다. 언제나 그래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남자들은 누구나 퇴근 후 그렇게 아내한테 환영받고 싶다. 지만, 자칫하면 또 순식간에 비뚤어지거나 토라지기 일쑤여서 나는 좋아하는 표정을 함부로 나타내지 않는다. 감정이 렸다 맑았다 변덕을 부리지 않고 일관성을 지키도록 일부러 조절하고 억제한다. 거의 매일 그렇지만, 오늘도 역시 밝고 장난스럽게 웃는 올리비아의 얼굴을 보니 퇴근길 흐리멍덩하고 찌든 기분이 싹 사라졌다. 정년퇴직을 하고서도 날마다 리사무소장 일하러 나가는 남편이 안쓰럽고 고마워서 열심히 뒷바라지하는  마음을 나는 잘 안다. 그럼에도 나는 일부러 얼굴에 아무런 변화가 없는 준엄한 표정을 유지한 채 속으로만 실실 웃으며 서서히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이런 심리게임도 없다.ㅋ




   미리 에어컨을 틀어놔서 집안 공기가 시원하였다. "역시 집이 최고여~" 나는 얼른 안방으로 서류가방에서 돋보기와 책을 꺼내놓고 몸을 씻었다. 개운했다. 세면장에서 나와보니 안방과 주방 옆 창문 등 여기저기 문이 활짝 열려있었다. "아니, 여보. 에어꽁(에어컨ㅋㅎㅎ)을 틀어놓고 이렇게 문을 막 열어놓으면 어떡해...?" 요즘 같은 고물가 시대에 에너지 낭비, 돈 낭비라며 지적하는 나의 말에 올리비아는 환기도 좀 돼야 한다며 짧게 대꾸했다. 냉방 효과를 최대한으로 올리자면 당연히 모든 문을 닫아야 하는 것 아닌가? 아내는 언제나 나의 생각과는 전혀 딴판이다. 아무리 성격이 서로 반대라지만, 이런 건 좀 의견 일치가 되면 오죽 좋을까. 부부 복권처럼 안 맞는다더니 정말이지 맞는 게 하나도 없는 건 이럴 때마저도 예외가 아니다. 뭐라고 투덜대든 말든 나는 안달하며 열려있는 문을 재빨리 꽉꽉 닫았다. 그러면서 아내의 눈치를 힐끗 살피는 일을 잊지 않았다. 나의 지적을 듣고 자칫 기분이 상하면 뭔가 변명하며 도끼눈을 하고 반격에 나서곤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왠지 뾰로통한 기분이 느껴지기도 했지만, 다행히 그건 불안해하는 나의 생각일 뿐 올리비아는 더 이상 토를 달지 않았다. 그것이 과연 내 말이 맞다고 인정한다뜻인지, 닫아야 하는 줄 알면서도 귀찮아서 안 닫고 있었다는 것인지는 도무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결론은 이도 저도 아니고, 에어컨은 틀되 동시에 환기도 해야 한다는 생각인 것 같았다. '어떻든 용케 말없이 넘어갔으니, 됐다. 안심!'




   "여보, 근데 배고파. 뭐 먹을 거 없소?" '남편이 퇴근하고 집에 오면 5분 안에 입을 막아라'고 설파한 두 상달 선생님의 오래전 명강의를 여러 차례 환기시켜줬건만, 먹을 걸 꺼내 주는 일이 이렇게도 더디다. 10여 년 전, 우리횡성 힐리언스 선마을에서 있었던 직장 내 부부 힐링 프로그램에 커플로 참여한 적이 있었다. 그때 들었던 선생님의 강의 내용 중 가장 인상 깊었던 말을 듣는 순간 우리는 웃음을 빵 터뜨리고 말았다. 나는 기억이 생생한데, 아내는 벌써 잊은 지 오래인 모양이다. '아내여, 남편이 직장에서 일하고 돌아오거든 그대 하고 싶은 말 있더라도 잠시 미뤄두고 제일 먼저  사람의 허기를 채워주어라. 말은 그 후에 해도 전혀 지장이 없을지니...' 좀 우아하게 말하자면, 곧 그런 말이었다. 배가 고프면 화를 내기 쉽지만, 배가 부르면 관대 해지는 법이니 이 얼마나 금쪽같은 명언인가! 사소한 것 같아도 부부 사이에 잊지 말고 유념할 일이다. 연세 지긋한 두 선생님의 그 말씀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진리다.^^




   저녁을 준비하는 아내의 움직임이 분주했다. 주방 찬장에서 접시며 밥그릇 등을 꺼내느라 문 닫히는 소리가 탕, 탕하고 마찰음을 내며 귀에 거슬렸다. 사실 맨날 그런다. '문 좀 서서히 닫을 일이지...' 그뿐만이 아니라 현관문을 닫을 때도 그렇고, 주방 옆 세탁실 출입문을 닫을 때도 벽이 울릴 정도로 쿵쾅하고 닫으니 그때마다 나는 깜짝 놀란다. 방 문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문고리를 잡고 살짝 닫아주면 아무 소리 없이 조용히 닫힐 텐데 그런 생각을 전혀 하니 모든 것이 우당탕이다. 올리비아가 문을 닫을 때마다 튀밥 장사 빵~터뜨리기 직전처럼 나는 긴장하며 미리 받아들일 채비를 한다. 노이로제가 걸릴 지경이다. 집 무너지겠다며 천천히 닫으라고 해도 잘 안 된다고만 한다. 하두 안 되니 내가 문고리를 잡고 조용히 닫는 방법을 가르쳐주기도 했다. 하지만, 말로만 알았다고 하고서는 절대 따라 하지는 않았다. 자존심 때문인가. 별 소용이 없기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왜 그렇게 나의 방식과 반대이기만 한지. 살다 보니 그런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저녁을 다 먹고 나서 설거지는 평소처럼 내가 하기로 하였다. 수도꼭지를 틀고 노란 그물망 수세미로 그릇이며 숟가락, 컵 등을 씻기 시작하였다. 뭔가 미끈미끈한 기분이 느껴지는 그릇이 있어 주방세제를 풀고 휘저으며 거품을 내고 있는데, 올리비아가 그것을 보고 즉각 내 옆으로 다가와 역정 내는 소리를 퍼부었다. "그냥 물로만 씻어도 되는 그릇들이니 퐁퐁은 할 필요가 없어~. 그거 하면 쓸데없이 물만 더 많이 써야 하는데 뭐한다고 자꾸 퐁퐁을 해, 응?" "아니, 기왕 씻는 김에 이것까지 깨끗이 씻어버리면 좋잖어? 뭐 그렇게 이거는 물로만 씻고, 저것은 퐁퐁하라고 갑갑하게 그러는 거여. 물을 더 써봐야 얼마나 더 쓰겠어" 내가 퐁퐁 세제 쓰는 걸 보기만 하면 올리비아는 이렇게 재빨리 곁으로 다가와 제발 퐁퐁 세제 쓰지 말라며 꼭~! 간섭을 한다. 나도 나름대로 이유가 있어서 사용하는 것이니 당당히 반발하고 절대 설거지 소신을 굽히지 않는다.ㅎㅎㅎ. 옳다고 생각하는 소신인 만큼 나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대꾸하며 '눈치껏 적당히' 화를 내다 이내 그만둔다. 올리비아도 내 말이 절대로 마음에 들지는 않겠지만, 더 이상 뭐라 하지 않고 넘어간다. 그 쯤이 서로가 더 이상 가시 돋친 말을 하지 않고 절제력을 발휘해 순간적으로 날카로워진 감정이 누그러지는 지점이다. 다만, 나는 기어코 속으로만 생색을 더 내고 있었다. '세상 제일 하기 싫은 일을 내가 이렇게 해주는데 최소한 퐁퐁 쓰는 재량만큼은 허락해줘야 하는 거 아녀?'




   이제 우리 둘만 사는 집에서 뭐든 깔끔하게 정리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내 몫이다. 타고난 성격이어서 엉망이고 지저분한 모양을 한 시도 용납할 수가 없으니 그것도 병이라면 병이다. 그런 성격은 정년퇴직하고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결과적으로 아내에게는 크게 플러스가 되는 쪽으로 기여하는 것이었다. 설거지도 마다하지 않고 습관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자발적으로 하고 있으니 아내는 이제 그것이 당연한 나의 일인 것처럼 생각하는 모양이다. 한편, 착착착 모든 게 제자리에 잘 정리된 그릇들을 마음껏 꺼내 쓰며 식사를 준비하고 도시락을 정성껏 싸주는 올리비아의 모습을 보면, 나는 잘 안 맞는다고 불만스러워하는 대신 오히려 고마운 생각을 하는 나를 최근에 자주 발견하게 되었다. 그렇게도 서로 안 맞는다며 30년 이상을 티격태격 다투며 살아온 우리 두 사람. 아내는 무질서하게 어질기만 하고, 우당탕 거칠기도 하지만, 그걸 하나씩 차근차근 정리하고 소리 없이 처리하는데 익숙한 내가 옆에 있으니 역설적으로는 그렇게 잘 맞는 경우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새 각자 잘하는 성격이 발휘되도록 비켜가기 시작하면서부터 우리 사이 마찰음이 확 줄어들었다는 걸 불현듯 느끼던 순간 우리는 박수를 치며 한바탕 유쾌하게 웃고 말았다. "올리비아, 우리, 이렇게 하나가 되는 건가? 그 날카로운 가시들 다 어디 갔어? 인생 오래 살다 보니 참 재밌소.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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