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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쉐비 Jul 15. 2022

시어머니의 선물

쉐볼리비아의 사랑과 전쟁

   어제 밤늦은 시간에 엄마가 전화를 했다. 평소 잠도 잘 안 오는데, 오늘은 일이 생겼다는 것이다. 옆집 저온창고에 보관 중인 쌀을 전부 빼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아니, 왜~?" "그 집 맏며느리가 서울에서 내려왔는데, 창고 전기를 끊을 거라고 하더라." 그깥 전기료가 나오면 얼마나 된다고 그럴까 싶었는데, 표면적 이유는 정말로 전기료 때문이었다. 명동떡(宅)이 먼저 엄마한테 손을 내밀며 저온창고를 사용할 일 있으면 아무 때나 도 좋다고 해서 그동안 편하게 이용했다. 그러던 중 바로 지난달 애석하게도 노환으로 돌아가시고 말았다. 그후 사정이 급변하였다. 듣자하니 고부간의 관계가 그리 탐탁지 않았던 것 같았다. 결국 시어머니가 베풀었던 따뜻한 마음을 얼굴도 생소한 맏며느리가 갑자기 마을에 나타나 회수해 가버린 셈이다. "별수 없지 어째야..." 서운했지만, 엄마는 대책을 찾아야 했다. 


   "엄마, 전기를 끊으면, 그 집 창고나 우리 집 창고나 저온이 안 되는 건 똑같으니 쌀을 그냥 그대로 두면 안 될까?" 쌀 가마니를 옮기는 일이 힘든데 그걸 엄마가 혼자 어떻게 할 수 있겠냐며 걱정이 앞서서 하는 말이었다. 엄마는 그럴까도 생각해봤지만, 이참에 차라리 아들들 집에 나눠서 보내주는 게 좋겠다고 거의 결론을 내려놓고 있었다. 다만, 그러기 전에 종현이 아버지한테 정말로 전기를 끊을 거냐고 한번은 물어봐야겠다고 했다. 서울에 사는 맏며느리가 설령 그렇게 말했더라도 그 집은 시아버지인 종현이 아버지가 혼자서 계속 살 집이기 때문이다. 상황에 따라 쌀을 그 집 창고에 그대로 둘 수도 있지만, 여의치 않으면 택배를 불러서 바로 보낼 생각인 것이다. 엄마 표현대로 말하자면 "쌀을 갑자기 보낼 수도 있으니 도착하면 놀라지 마라"라고 미리 알려주는 뜻에서 자정이 가까워진 시간에 나한테 전화를 한 것이었다. 그 밖에도 엄마는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았던 것 같다. 거의 한 시간 가까이 통화를 했다.


   엄마가 예초에 그 집 저온창고를 사용하게 된 데는 사연이 있었다. 명동떡이 어쩐 일인지 오래전 홀몸이 된 우리 엄마를 안쓰럽게 생각하며 정 있게 대해주었다는 것이다. 그분은 나의 초등학교 친구 종현이 엄마이기도 하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명동떡의 인도로 전혀 관심도 없던 우리 엄마가 교회에 발을 들여놓게 된 인연도 있다. 어느 날, 마을회관에서 얘기를 나누다 창고에 있는 쌀에 벌레가 생길까 봐 걱정이라고 했더니 그 말을 듣고 명동떡이 자기 집 저온창고에 가져다 놓으라고 했다. 언제든지 사용하라며 창고 열쇠도 따로 하나 넘겨주었다. 울 엄마에 대한 진정성과 신뢰를 그렇게 동시에 보여주었다.  뿐만이 아니었다. 엄마가 네 살 아래 자기 동생과 동갑이라다른 사람들과는 차이가 느껴지도록 유달리 다정하게 대해주었다. 야릇 사연도 하나 더 있다. 엄마 말에 의하면, 엄마가 처녀 적에 아직 아버지를 만나기 전, 명동떡이 먼저 우리 아버지와 맞선을 본 적이 있다고 했다. 인연이 그렇게 맺어질 뻔도 했다는 뜻이다. 뜻밖의 놀랄 만한 뉴스였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덜컹해지며 기분이 이상했다. 그렇게 맺어졌다면 지금의 나는 물론, 종현이도 역시 이 세상에 아예 없었을 것이다.^^


   어제 아침, 아내 올리비아가 쌀통에 쌀이 떨어졌다며 문간 창고에 보관 중인 쌀포대를 꺼내 달라고 했다. 작년 가을, 엄마가 추수하고 보내준 그것으로 벌써 마지막을 드러냈다. 때마침 고향에서 엄마가 쌀을 보내주려고 하는 참이라 우연히도 타이밍이 절묘하다는 생각이 었다. "여보, 우리 집에 쌀 떨어진 걸 어머니가 어떻게 아셨는지 두 포대(반 가마니)를 또 보내주시겠다고 하시네^^" 사무실에서 아내에게 보낼 문자를 '장난스러우면서도 신중하게' 쓰고 있는데 미처 보내기도 전에 거꾸로 전화가 왔다. 나는 문자를 보내지 않고 그냥 전화로 소식을 그대로 전해주었다. 웬걸? 반가워할 줄 알았는데, 아내는 예상과는 정반대 반응을 보였다. 되레 신경질적인 말투로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아이고~, 묵은쌀은 날이 더워서 금방 벌레 생길 텐데, 어머니는 뭐한다고 보낸대...? 그거 오면, 차라리 누구한테 줘버려야겠네..." 목소리에 시어머니의 선물을 못마땅해하는 기분이 고스란히 나에게 전해져 왔다. 순간 나는 기분이 팍 상하고 말문이 탁 막혀버렸다. "아니, 이제 쌀도 바닥이 났고, 지금 먹고 있는 쌀과 똑같은 쌀을 보내주신다는데 뭐가 그렇게 불만이야? 정말 이해할 수가 없구만. 차라리 돈 주고 사 먹겠다는 거여~?" 나는 화가 치밀고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서 전화를 끊어버렸다.


   과거에도 시어머니가 식량이며, 야채, 김치, 된장 등을 애써 마련해 보내올 때마다 아내는 시큰둥하거나 오히려 역정을 내곤 하였다. 알고 보면 어느 것 하나 귀하지 않은 게 없는데, 왜 그렇게 못 마땅해하는지 원 나로서는 순식간에 일그러지는 아내의 모습을 정말로 이해할 수가 없었다. 더구나 아들의 입맛을 잘 알고, 아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조금이라도 먹여보려고 일부러 챙겨 보내주시는 마음이 제일 먼저일 거라는 걸 모르는 바 아닐 텐데 왜 그러는 걸까. 뭐가 됐든 시어머니가 고향에서 보내주는 것이라면 그저 반갑게 받고 고마워해야 할 일인데, 유감스럽게도 같이 사는 동안 나는 그런 모습을 본 기억이 거의 없다. 내가 여자의 마음을 너무 모르는 걸까? 혹시 아내가 내놓는 반찬보다 시어머니가 주는 음식을 더 좋아하는 남편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아 화를 내는 것일까? 아니면, 가끔씩 그렇게 음식을 보내오는 것이 자신의 솜씨를 무시하는 것이라고 항변하는 것일까? 아무리 헤아려봐도 그 깊은 속을 알 길이 없어 답답하기만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예전에 엄마가 보내온 쌀을 나의 강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자기 친구나 언니에게 줘버린 일도 있었다. 그 일로 인하여 한동안 불편한 시간을 보내야 했던 기억도 잊을 수 없다. 그러면서도 시장에서 쌀을 따로 사 먹는 건 또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혼란스럽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기어코 그렇게 결행하고야 마는 아내의 의도를 나는 결코 좋게 해석할 수가 없었다. 오히려 지난 설날에는 분당에 사는 처형이 아내에게 전화로 "아야, 너네 시어머니가 보내준 닭장을 떡국에 넣었더니 그렇게 맛있더라. 만드는 법 좀 냐?"며 물어오특이한 일도 있었다. 도대체 아내는 무슨 생각을 하고 그러는 것인지 결혼생활 34년 차인 지금도 나는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말하다가 시어머니가 등장하는 대목이 나오면 우리 사이는 서로 눈치를 살피며 즉각 긴장 모드를 켠다. 행여나 엄마가 또 뭘 보낸다고 연락이 오는 날이면, 나는 또 어떻게 해야 하나 홀로 안절부절못하며 아내의 눈치를 살펴야 한다. 오로지 나 혼자만 벙어리 냉가슴 되어 속이 까맣게 타도록 애를 태우는 기분이다. 아내도 혹시 신경을 곤두 세우며 나의 눈치를 살피는 걸까? 결혼하고 한 번도 시어머니와 같이 살아본 일 없건만, 내가 느끼는 고부간의 거리감은 한 없이 멀기만 하다. 그 거리감을 제거하고 언젠가 서로 손을 잡도록 하고자 중간에서 고뇌하는 나의 평생 노력이 끝내 허사가 될 것인지 불안하기만 하다.


   아내가 꼬장 부리는 걸 엄마가 어떻게 알아버린 것일까. 아마도 창 밖에서 지저귀던 새가 티격태격하는 우리 두 사람을 지켜보다가 전령이 되어 엄마한테 번개같이 전달해줬나 보다. 쌀이 두 포대 온다더니 한 포대만 왔다고 올리비아한테서 문자가 왔다. '아니, 두 포대 보낸다고 했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궁금하여 곧바로 엄마한테 전화를 했다. 엄마는 처음부터 나에게 한 포대라고 말한 것처럼 자세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지난번 내가 고향에 내려왔을 때 차에 싣고 갔기 때문에 이번에 우리 집에는 한 포대만 보냈다고 했다. 조금 섭섭했지만, 그건 아내의 뜻과는 정반대 되는 불합리한 생각이어서 그냥 알았다며 전화를 끊었다. 나는 아내에게 태연하게 문자로 회신을 보냈다. "당신이 너무 많다고 해서 내가 엄마한테 한 포대만 보내달라고 했어". 아내는 겉으로는 못 마땅해하면서도 혹시 두 포대가 올 걸로 기대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내 마음이 차라리 후련하였다. 퇴근 후 집에 가서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불편한 심기를 숨긴 채 조용히 밥을 먹었다. 그리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곧바로 안방으로 들어가려고 하는데, 등 뒤에서 아내가 짧게 한 마디 던지고서는 문간방 문을 쾅 닫고 들어가 버렸다. "설거지나 좀 해놔~~~." 나는 한참 있다가 주방으로 다시 나와서 묵묵히 숙제를 하였다. 그리고 나서 골방 서재로 돌아갔다.


*쉐볼리비아 : 쉐비와 올리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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