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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쉐비 Sep 26. 2022

어서 불어봐요!

아리랑 엄마 아리랑

   이른 새벽, 닭 우는 소리에 잠이 깼다. 대체 몇 시일까. 머리맡 부근에 둔 스마트폰을 손으로 이리저리 더듬어 찾았다. 아직 잠이 덜 깨 부시시한 채로 바늘 눈을 뜨고 전화기 속 시계를 들여다봤다. 새벽 4시 7분이었다. 어제는 4시 27분에 울었는데 오늘은 더 빨라졌다. 부지런한 수탉이 먼저 꼭끼오~ 하고 점잖고 우아하선창을 면, 또 한 마리가 곧이어 꽥끼리리~~ 하고 더 길고, 더 사나운 목소리로 사정없이 내질렀다. 따라 하는 울음소리가 마치 수탉과 경쟁이라도 하는 듯하고, 혹은 시기하는 듯이 들렸다. 어찌 보면 2인자나 애제자가 수탉의 위엄 아래 마음 놓고 힘껏 내지르는 모양 같기도 하였다. 조금 후, 더 먼 곳에서도 닭 우는 소리가 가세하듯 들리며 새벽은 갈기갈기 찢기기 시작하였다. 동이 트기까지는 아직도 시간이 멀었는데도 칠흑 같은 꼭두새벽부터 울려 퍼지기 시작한  우는 소리는 날이 훤히 밝도록 쉬지 않고 계속되었다.




   귀가 따갑도록 시끄럽게 울어재끼는 바람에 나는 모른 척하고 더 이상 잠자리에 누워 있을 수가 없었다. 조금만 더 자자고 닭과 무언의 신경전을 벌이다가 눈을 비비고 그만 일어나야 했다. 지난밤, 담요를 깐 방바닥에서 가벼운 이불을 덮고 잤다. 바로 옆 침대에서 주무신 엄마는 진작부터 말똥말똥한 눈으로 천정을 바라보다가 억지로 눈 감기를 되풀이하며 지루하게 아침을 기다리고 있었다. 고향에서 맞이하는 밤은 도시보다 훨씬 일찍 오고, 잠은 더 빨리 깬다. 예나 지금이나 취침과 기침은 농사짓는 일상과 다름없는 사이클이다. 달리 알람(alarm) 필요 없다. 



   닭은 나의 출생 이야기와도 밀접한 관련이 다. 어렸을 적부터 엄마는 내가 첫닭이 우는 축시(丑時)에 태어났다고 여러 차례 얘기를 해주었다. 축시가 새벽 1시에서 3시 사이여서 조금 이르다는 생각이 들지만, 엄마와 주변 어르신들의 당시 생생한 기억이 틀릴리는 없을 것이다. 그때가 닭의 해 삼짇날 이른 새벽이었다. 내가 고고의 성(呱呱之聲)을 울리며 이 세상에 탄생을 알린 순간은  아마도 거의 3시가 다 되는 즈음이 아니었을까 짐작된다. 고향의 새벽 이처럼 닭 우는 소리로 일찌감치 열리고, 세상은 온갖 새가 지저귀는 소리가 더해지며 차차 밝아오고 있었다. 닭 울음소리 사이로 어디선가 이름 모를 새가 천천히 울어대기 시작하였다. 흐느끼듯 애잔했다. 집 옆 대밭에서 나는 소리였다.


꾸우꾹 꾸꿈 꾸우꾹 꾸꿈 

꾸우꾹 꾸꿈 꾸우꾹 꾹


어릴 적에도 많이 들었던 귀에 익은 새소리다. 그렇지만 아직도 그 새의 이름이 뭔지 몰라 답답하였다. 혹시 뻐꾸기 아닐? 엄마한테 물어봤더니 뻐꾸기가 아니고 꾸꿈새라고 하였다. 전혀 들어보지 못낯선 이름이었다. 우는  마치 초상집 아낙네의 곡(哭)하는 소리처럼 슬프고 애처롭게 들렸다. 계속 우는 것이 아니라 대략 5분 간격으로 울었다 쉬었다를 반복하였다. 어찌나 서글프게도 울어대는지 사람 같으면 필시 무슨 사연이 있을 것같은 애달픈 소리다. 마는 처자식 다 고 혼자 남은 홀아비가 신세를 한탄하며 슬피 우는 소리라고 나에게 설명해주었다. 그리고 곧바로 가사를 붙여 똑같은 음조로 노래를 들려주었다. 


지집(계집) 죽고, 자식 죽고, 

지집 죽고 자식... 흑! 


자식과 처를 다 잃고 홀아비가 된 사내가 산에서 목매달아 죽고 난 뒤 새가 되어 우는 소리라는 것이다. 새가 슬피 우는 사연을 조단조단 들려주는 엄마의 해설은 기가 막혔다. 내 가슴이 뭉클할 정도였다. 슬픈 곡조에 엄마가 붙인 노랫말이 정말 그럴듯하였다.

꾸꿈새 등 사시사철 새들이 지저귀는 우리집 옆 대밭




   1930년대생인 엄마는 젊은 시절부터 가수의 노래를 따라 하거나, 가락에 새로운 노랫말을 직접 만들어 붙여 부르곤 하였다. 요즘 스타일의 모창은 물론, 다른 사람의 말을 흉내 내는 성대모사도 능했다. 특히 새 우는 소리에 노랫말을 붙이는 재능은 가장 탁월하였다. 매사 긍정적으로 보고 낙관하는 인생관의 근원이 바로 거기에 뿌리를 두고 있으리라 짐작된다. 그 옛날 따스한 봄, 남향 마루에 앉아 있노라집 바로 옆 대밭에서 갖가지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를 무시로 들을 수 있었다. 그중에는 두드러지게 꾸꿈새와는 전혀 다른 음조로 신나게 시부렁거리던 새가 있었다. 이번에도 그 녀석이 건재하며 지저귀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소년 시절 들었던 바로 그 새소리 인지라 아련한 향수가 느껴져 반가웠다. 소리의 높낮이와 속도가 영락없이 지네들끼리 뭔가 주고받는 대화처럼 들렸다. 뭐라고 하는 소리인지 궁금하여 마저 엄마에게 물었더니 역시 서슴없이 노랫말을 들려주었다. "머리 곱게 곱게 빚고 건너갈라요?" 와~, 정말 새가 지저귀는 소리에 딱 들어맞는 가사였다^^




   돌아보면, 아버지와 어머니는 모두 노래를 좋아하였다. 아버지의 애창곡은 <황포돛대>였다. 엄마는 <오동추야>를 즐겨 불렀다. 음조와 박자가 사뭇 다른 노래들이다. 교직에 종사하면서 농사를 겸했던 아버지는 주로 힘들고 고단할 때 노래를 불렀다. 그 자리에는 언제나 막걸리가 있었다. 아버지가 생각나 내가 그 노래를 할 때면, 나도 몰래 눈물이 나 끝까지 부르지 못하는 게 다반사다. 온순하고 마음 여렸던 아버지 모습이 어른거리기 때문이다. 반면, 엄마는 흥이 날 때만 다소곳하고 조심스럽게 흥얼거렸다. 멜로디가 매끄럽지는 않지만, 최대한 정확히 부르려고 애쓰는 모습이 역력해 재미있었다. 내가 힘들 때나, 즐거울 때나 가리지 않고 음악을 찾는 것은 아무래도 부모의 영향이 컸던 것 같다.^^




   어린 나이에 대가족의 맏며느리로 시집와 온갖 고생을 하던 엄마에게도 젊은 시절 망중한을 즐기던 특별한 하루가 있었다. 마을 아낙네들이 주축이 되어 1년에 한 번씩 뒷동산에서 축제처럼 한판 벌였던 화전(花煎) 놀이가 열리는 날이었다. 삼월 삼짇날 교외나 산 같은 경치 좋은 곳에 가서 진달래꽃으로 화전을 지져먹고 음주와 가무를 즐기는 여성들만의 잔치다. 화전(花煎)은 참꽃을 따다가 찹쌀가루에 반죽하여 둥근 떡을 만들고 그것을 기름에 지진 것이라 한다.(naver). 당시 우리 동네에서는 집집마다 쌀을 한 되씩 가져와서 한 데 모아 밥하고, 음식도 장만하여 나눠먹는 조촐한 잔치였다. 1961년 화전놀이는 삼짇날이 한 달 정도 지나 열렸던 것 같다. 당시 찍은 흑백사진 한 장을 보고 알았다. 사진 아래에 1961.5.25일이라고 하얗게 날짜가 새겨져 있었다. 달력을 추적해보니 그날이 음력으로는 4월 11일 목요일이었다. 엄마는 오랜만에 흰 옷으로 곱게 단장하고 멋진 양산도 하나 준비하였다. 그리고 이제 갓 다섯 살배기 첫 아이인 나를 데리고 갔다. 행사장 한쪽에 자리를 잡고 그늘막 삼아 등 뒤에 양산을 활짝 폈다. 엄마는 나에게 하모니카를 쥐어주며 불어보라고 하였다. '어서 불어봐요!' 엄마는 내가 당신처럼 노래를 좋아하고 잘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나 보다. 젊은 시절 엄마의 따스한 사랑이 느껴지는 장면이다. 나는 부끄러웠는지 살짝 고개를 돌려 엄마를 바라보고 있었다. 모처럼 카메라 앞에 여유 있는 포즈를 취한 엄마에게 그날만큼은 시름을 잊고 즐거웠기를 바란다. 벌써 60년도 더 지난 전설 같은 이야기가 되었다.

우리동네 화전놀이 하던 날, 엄마와 함께 (1961.5.25)




   그 후, 시간은 60년도 더 흘렀고 엄마는 어느새 고령의 할머니가 되었다. 정말 인생무상(人生無常)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어젯밤, 큰방에 앉아 엄마와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던 중 보자기에 싼 상자 하나가 장롱 위에 얹어져 있는 것을 보았다. 나는 저게 뭐냐고 별생각 없이 엄마한테 물어보았다. "저거...? 내가 죽으면 입을 수의(壽衣)다. 너네들 잘 보이라고 일부러 저기 잘 보이는 곳에 올려놨다." 그것은 엄마 침대에 앉거나 누우면 자연스럽게 눈에 보이는 위치에 있었다. 행여나 자식들이 찾지 못할까봐 세심한 엄마는 그것까지 고민을 했나 보다.ㅠㅠ.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혀 울컥했다. "엄마, 이렇게까지 준비를 해놔야 하는 거여?"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묻는 나에게 엄마는 오히려 담담하게 대답을 하였다. 수의를 미리 사두면 오히려 장수한다는 속설이 있다며 나를 보고 얇은 미소를 지었다. 연세가 더 듦에 따라 갈수록 체력도 약해지고 기력이 쇠약해지는 엄마의 모습에 가슴이 아팠다.




   재작년 언제쯤이었던가. 어느 TV 방송의 경연프로에서 우연히 엄마 생각나게 하는 노래를 봤다. 출연한 어느 여자 가수가 '엄마 아리랑' 노래를 그렇게도 다부지게 불렀다. 나는 전율이 느껴질 정도로 감격을 한 나머지 혼자 눈물을 글썽이고 말았다. '우리 엄마 무병장수 정성으로 기원하오, 사랑하는 내 어머니 보고 싶소 울 어머니, 서산마루 해가지고 달이 뜨는구나. 우리 엄마 사랑은 아리랑 엄마 아리랑' 아, 어쩜 그렇게 내 마음을 사로잡던지 지금도 그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그런 노래가 있는 줄을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 울 엄마 생각하면, 그 노래 '엄마 아리랑'이 떠오르고, 지금도 그 노래를 들으면 또 우리 엄마가 떠오른다. 아리랑 엄마 아리랑. 나의 노래, 바로 우리 엄마 노래다.


모처럼 고향에 내려와 엄마와 단 둘이 보낸 시간은 내가 사는 동안 영원히 잊지 못할 추억의 한 조각으로 차곡차곡 쌓여갈 것이다.


엄마 아리랑 아리랑 아리 아리랑 아라리요

아들딸이 잘 되거라 밤낮으로 기도한다

엄마 아리랑

사랑하는 내 아가야 보고 싶다 우리 아가

천년만년 지지 않는 꽃이 피는구나

아리랑 아리랑

사랑 음 사랑 음 엄마 아리랑

아리 아리랑 아라리요 쓰리쓰리랑 아라리요

우리 엄마 사랑은 아리랑 엄마 아리랑

엄마 아리랑 아리랑 아리 아리랑 아라리요

우리 엄마 무병장수 정성으로 기원하오

엄마 아리랑

사랑하는 내 어머니 보고 싶소 울 어머니

서산마루 해가지고 달이 뜨는구나

아리랑 아리랑

사랑 음 사랑 음 엄마 아리랑

아리 아리랑 아라리요 쓰리쓰리랑 아라리요

우리 엄마 사랑은 아리랑 엄마 아리랑

아리랑 아리랑

사랑 음 사랑 음

엄마 엄마

우리 어머니 아리랑

엄마 아리랑

https://www.youtube.com/watch?v=C-hcW3IJd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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