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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쉐비 Oct 06. 2020

우연한 발견

딸이 짚어준 한 수

    연말 정년퇴직을 앞두고 있던 2018년 여름, 사상 최악의 폭염과 열대야로 하루하루 힘겨운 시간이 여러 날 계속되었다. 예전에는 그래도 집에서 그럭저럭 견딜 만했다면, 이번에는 도저히 그럴 수가 없는 날씨였다. 무더위로 찌들었던 어제에 이어 오늘을 다시 살아간다는 것이 마치 한 땀 한 땀 힘겹게 바느질하듯 시간을 끌어다 붙이는 기분이었다. 한동안은 아내와 같이 피서지를 찾아 전전하였다. 주로 수도권 지역 교외에 산재해 있는 대형 아울렛을 쇼핑하듯 번갈아 가며 방문하였다. 한 군데 다녀온 후 다음날 아내는 또 다른 곳을 가보자고 보채는 바람에 가는 날이 점점 많아졌다. 서로 무뚝뚝하고 무관심하기만 했던 우리 사이에 훈풍이 불기 시작했다.  

   

   연이어 밖으로 나다니는 것이 다소 피곤하기는 하였지만, 그렇다고 집에만 머무는 것이 답이 아니라는 것은 너무나 뻔했다. 파주로, 여주로, 하남으로, 그리고 기흥으로 각각 적게는 한두 번씩, 많게는 두세 번씩 방문하였다. 집에서 교외로 오가는 길은 자연스럽게 드라이브 코스가 되었고 아내는 그런 시간을 무척 반기며 즐겼다. 어느 곳을 가나 20여 년 전 미국 연수 시절 방문했던 팜 스프링스 아울렛을 다시 찾은 것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어서 우리는 더 좋아했다. 그런 우호적인 분위기는 우리가 당면한 문제들을 터놓고 얘기하기에 더없이 좋은 기회가 되었다.

     


이사를 어디로 갈까     


   같이 외출을 하면서도 느긋한 아내의 모습과는 달리 나의 마음은 언제나 바빴다. 퇴직하기 전 제한된 시간에 처리하고자 한 일들이 한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집을 이사하는 것도 그중 하나였다. 집을 팔고 이사를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는 문제로 집에서는 오랫동안 신경전이 계속되고 있었다. 나는 살고 있던 집을 팔더라도 새로운 집을 사기에는 돈이 턱없이 부족하니 그냥 여기 살자는 의견이었다. 반면 아내와 딸은 강하게 반대했다. 교통도 불편하고 집 여기저기에 곰팡이도 많이 껴서 싫으니 무슨 수를 써서라도 좋은 집으로 이사 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돈을 걱정하면서도 이사를 해야 한다는 필요성에는 공감하고 있었다. 아내와 딸은 돈이 부족하면 대출받으면 되지 왜 그런 걸 걱정하냐며 나를 옥죄고 들었다. ”아니, 담보대출을 받으면 그 이자는 또 어떻게 감당할 건데? “ 낼모레면 남편이 정년퇴직하는 줄 알면서도 별 대책 없이 공세를 펴는 아내에게 볼멘소리로 쏘아댔다.      


   무슨 일이든 사전 계획을 세우고 검토해서 문제가 없다고 판단되면 그때서야 비로소 행동에 나서는 쪽은 언제나 나다. 자로 잰 듯이 정확하게 일을 계획하고 일의 단계마다 준비한 각본대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착착 실행하기를 원하는 신중론자다. 일이 계획한 대로 진행되지 않거나 궤도를 벗어나게 되면 마음이 아주 불편해진다. 반면 아내는 일단 먼저 저지르고 문제가 있으면 그때 가서 해결하면 된다는 주의다. 나와 아내 사이에 심각한 대립 구도가 형성되고 있었다.


   그렇게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답답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던 딸내미가 신경질적으로 한마디 거들며 끼어들었다. ”아빠, 아빠처럼 생각하면 우리 아무 데도 이사 못 가. 여기서 계속 살 거야? 엄마 말대로 이번에 꼭 이사 가면 좋겠어 “ 작년에 대학을 졸업한 딸내미한테 여지없이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나는 딸내미의 따끔한 일침을 듣고 나서야 비로소 못 이기는 척하며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날씨만큼이나 뜨거운 우리 집 이사 논쟁은 그렇게 후끈 달아올랐다. 나는 에라 모르겠다며 거실 바닥에 돌아 누어버렸다. 그러자 아내와 딸은 나를 제쳐놓은 채 서로 한편이 되어 본격적으로 이 집은 팔고 새로 사서 이사 갈 집을 알아보는 작업에 돌입하였다.     




딸이 짚어준 한 수     


   아빠 말에 실망하고 허탈한 딸은 말없이 식탁 의자에 걸터앉은 채로 한참 동안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러더니 뭔가를 발견하고 얼른 엄마에게 보여주었다. 인근 신도시에 괜찮은 집이 매물로 나와 있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지금 입주 중인 분양권 상태라고 했다. 거기는 우리가 사는 곳과 달리 집값이 이미 많이 올라 범접하기 어려운 수준이라고 나는 단정하고 있었다. 나는 속으로 ’ 애야, 대체 무슨 소리 하는 거냐?‘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면서도 아내와 딸이 있는 쪽으로 살짝 귀를 기울였다. 딸이 의아한 표정으로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이거 좀 봐. 집값 비싼 동네에 왜 이렇게 싼 집이 있지? 거의 반값이네~! “ ”그래? 어디 보자. 어머, 정말. 그거 참 요상시러운 집이구나. 이런 건 당장 가봐야 해. 어서 가보자! “ 아내와 딸이 즉각 떠날 채비를 했다. 아내는 나를 쳐다보고 같이 가보자며 갑자기 밀어붙이듯 보채기 시작했다. 내가 운전을 해야 했으니까.      



알고 보니 분양형 노인복지주택     


   우리는 그 매물을 게시한 부동산 중개사무소에 도착하여 간단한 인사를 나눈 후 바로 궁금한 점들을 물어보기 시작했다. ”이제 입주를 시작한 새집인데 가격이 왜 이렇게 싼 거죠?“ 그러자 중개사가 웃으면서 이건 좀 특별한 주택이라 아무나 살 수 있는 집이 아니라고 말해주었다. 생김새는 아파트 같지만 60세 이상만 매수할 수 있고, 입주도 역시 60세 이상만 할 수 있는 분양형 노인복지주택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내 나이가 어떻게 되냐며 물었다. 살 수 있는 자격이 되는지를 먼저 따져보자는 것이었다. 생일이 음력 3월이고 연말에 60세 정년퇴직할 거라며 주민등록증을 꺼내서 보여주었다. ”되네요. 선생님 명의로 매수할 수 있습니다 “ 중개사는 내가 올해 나이 딱 60세가 되었으므로 매수 적격자라고 확인해 주었다. 순간 통쾌한 기분이 들어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리고 물건을 직접 확인해 보자며 현장으로 같이 가보았다.


   그 집에 들어서면서 보니 주요 출입구에 문턱이 없었다. 현관, 화장실, 방의 출입구 바닥이 무장애(barrier-free) 설계가 적용돼 평탄했다. 드나들다가 걸려 넘어지는 것을 예방하고, 휠체어를 타고도 움직일 수 있도록 배려한 디자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문을 열고 닫는 손잡이는 모두 레버식이었다. 거실에서 창문을 열고 바깥을 내다보다가 우리 일행은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웃었다. ”아니, 이건 우리가 저기 저 도로를 지날 때마다 보았던 바로 그 집이잖아! “ 우리가 종종 갈참나무 터널 너머 아울렛에 갈 때마다 지나던 간선도로 옆 주택단지였다. 그때마다 우리는 별생각 없이 바라보기만 하고 지나쳤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주택 외벽 높은 곳에 걸려있는 ’노인복지주택 입주를 축하합니다‘ 현수막을 읽은 적 있지만, 나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집이라고만 생각하였다. 좀 더 일찍 알았다면 한 발짝이라도 더 빨리 와서 더 좋은 물건들을 볼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았다. 그나마 딸내미가 알려주지 않았으면 지금도 여전히 모르고 있을 것이다.



            아직 속은 몰라도 일단 껍질은 OK!       


   입주자격과 연령 제한 등은 있으나, 주변 아파트 시세 대비 가격이 훨씬 싸다는 매력 때문에 검색과 입질이 많았다. 매도자들도 판다, 안 판다, 값을 더 받아달라 하며 변덕이 심했다. 매수 물건을 확정하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중개사와 거의 매일 상황을 점검하며 분주한 시간을 보냈다. 매수계약을 체결한 것은 입주 지정 기간이 개시된 지 3개월 정도 지날 무렵이었다. 우리가 살던 집을 판 돈에 2천만 원을 더 보태 분양권을 샀다. 매수자격이 60세 이상인 자로 제한되는 것은 분명히 수요를 억제하는 요인이었다. 반대로 생각해 보면, 오히려 그러한 규제 덕에 좋은 집을 싸게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나는 그 점이 무척 기뻤다. 한동안 티격태격 다투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리즈너블(reasonable)한 가격으로 거래를 하게 되어서 가족 모두가 흡족해하였다.


계약을 마치고 지하철역까지 도보거리와 소요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알아보기 위해 아내와 딸과 같이 폭염 속을 함께 걸어가 보았다. 바람 한 점 없고 뙤약볕이 강렬한 무더위로 땀이 절로 났지만, 우리는 걷는 동안 유쾌한 말들을 주고받으며 마냥 즐거워했다. 오가는 길에 주변지역의 시설과 환경도 두루 살피며 입지조건을 따져보았다. 우리는 결국 만족해하며 모처럼 신나게 하이파이브를 했다.


딸이 짚어준 덕분에 살고 싶은 곳에 좋은 집을 좋은 가격에 기분 좋게 샀다. 그리고 두 달 후 이사를 했다. 정년퇴직을 한 달 반 남겨놓은 시점에 아주 의미 있는 일을 했다는 생각에 마음이 뿌듯하였다. 하지만 아직 외형만 봤을 뿐 분양형 노인복지주택이 대체 어떤 주택인지 그 속까지 정확히 알기에는 상당한 시간이 더 걸려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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