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쉐비 May 30. 2023

나 하나, 당신 하나

기분이 좋아지는 반전의 한 마디

   길을 가다가 무수한 사람들을 본다. 호기심은 무심코 안색과 표정을 주로 스캔한다. 인생을 잘 살았는지 못 살았는지 얼굴에 나타난다는 말이 이끄는 시선일 것이다. 꼭 그럴 의도는 아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저 여자는 남편에게 잘하고 행복할까? 저 사람은 은퇴하고서 쪼들리지 않고 잘 사는 걸까? 늙수그레한 사람들을 바라보며 별 생각을 다한다. 정년퇴직하고 나서도 일터에 다니느라 출퇴근하는 자, 나의 시선이다. 남들이 어떻게 살든 상관할 바 없는 데도 말이다. 거울이 따로 없다. 무심코 남들을 쳐다보고서는 자연스레 되돌아본다. 그럴 때 가끔은 머릿속 어두운 안쪽에서 아내의 인기척이 느껴지곤 한다.  운명의 공동체 올리비아가 부처님처럼 똬리를 틀고 가만히 앉아 있다. 나의 눈과 입을 뚫어져라 주시하고 있는 모습 영락없는 여사(史) 포스다.


   눈에 보이나 마나다. 내 마음속 아내의 눈초리는 언제나 신경이 쓰이며 나의 행동을 제어한다. 무슨 일을 하더라도 과연 그 일을 해도 될지 말지를 판단하는 까칠한 잣대가 된 지 오래다. 지나온 그 세월이 얼마인데... 우리 둘 사이에 쌓인 굴곡진 역사의 산물이다. 장남의 역할에 충실하고 장손의 일까지 잘 챙기고자 하는 나의 태도가 언제나 화근이고 화약고였다. 그런 자리와 역할을 아내는 무척이나 버거워했으니까. 나는 어려서부터 보고 배우며 익힌 전통과 도리에 충실하고자 했다. 아내도 그러려니 하고 무조건 잘해주기만을 바랐다. 응당 따라 줄 것으로 믿었고 추호의 의심도 하지 않았다. 당연하지 않은 것을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하였다. 오류였고 오산이었다. 지금은 사뭇 간소화하였지만, 예전에는 제사와 차례, 명절 등 챙길 일이 참 많았었다.


   아내는 나를 결혼 상대방으로봤지 집안에서의 내 역할까지는 별로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 사정을 전혀 모를 수는 없었겠지, 당시 몸 담았던 교직생활을 의식한 때문이었는지 그다지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모양이다. 맞선으로 만나 결심한 우리는 각자 자란 환경과 문화가 너무 다르다는 것을 뒤늦게서야 알게 되었다. 토양이 그러하니 생각의 차이 또한 컸다. 까딱하면 부딪치기 일쑤였다. 내가 하고자 하는 역할에 브레이크가 자주 걸렸다. 화가 나서 포기하기도 했고 라 모르겠다며 자포자기한 일도 많았다. 그래도 맞춰 살고자 갖은 노력을 다했다. 우둘툴툴한 돌멩이가 모진 파도에 시달린 끝에 몽글몽글해지듯 그사이 나의 의무감과 욕구도 많이 사그라지고 흐물흐물 희석되었다. 설령 돌의 생김새가 바뀌어도 파도는 상관없이 다시 해변으로 밀려오지 않던가. 감시와 견제의 촉각이 번득이는 아내의 눈초리가 지금도 예전과 별로 다를 바 없이 파도처럼 내 주변에 어른거린다.

 

    아내의 집요한 견제는 사실상 내 운신의 폭을 집안에서 가정으로 좁혀놓았다. 위리안치(圍籬安置)시키듯 좁은 영역에 가둬두고 싶어 했다. 그 울타리를 벗어날 기미가 보이면 어김없이 톤 높은 목소리로 내 앞에 경광등이 켜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땅한 도리는 해야 한다는 애당초 나의 소신에는 여전히 변함이 없다. 고향에 홀로 계신 어머니 생각이 어쩌면 내가 굽힐 수 없는 마지막 방어선이 될는지 모른다. 연로한지라 한 살 한 살 연세가 더해질수록 걱정이 태산이다. 자식이 많아도 곁에서 직접 모시는 이 아무도 없다 보니 더욱 그렇다. '이번 주말에 어머니한테 한 번 다녀오시지 그래요...' 이제 우리도 이 만큼 나이가 들었으니 이런 말쯤 하며 살면 얼마나 마음 편하고 기분 좋을까. 탁 까놓고 얘기해도 될 텐데 이렇게 홀로 고뇌하는 것은 아직도 좁혀지지 않은 감정적 괴리가 여전히 크기 때문이다. 마땅히 해야 할 도리에 대한 생각부터 달랐던 우리다.


   나는 나대로 효도와 도리를 정의해 놓고 살았다. 사실 배운 대로였다. 거기에 마음을 같이 하지 않는 아내의 심보가 내내 못마땅하고 섭섭하였다. 나는 속으로만 그래서는 안 된다며 사정없이 나물하고 무시하기 일쑤다. 도리를 되찾아 바르게 할 때까지 기다리고 달래고 설득해야 한다는 나의 생각은 거의 신념에 가깝다. 그 기다림은 죽는 순간까지도 계속될 수 있을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아내와 어머니가 다정히 손잡고 웃는 장면을 꼭 만들어보리라는 바람이다. 앞으로 주어진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아 보인다. 나의 이 순진한 생각은 과연 실현 가능할 것인가. 이달 초 어머니 생신 때 율포에서 그런 포즈를 잡은 일은 그나마 큰 진전이라 해둘 만하였다. 참으로 쉽고도 어려운, 가깝고도 먼 길이다.


   출근하는 나를 위해 매일 아침 밥상을 준비하는 올리비아의 손놀림이 분주하다. 아침이 바쁘면 미리 전날저녁에 일부 해놔도 되련만 제때 해야 맛이 난다며 모든 걸 아침에 다하느라 정신이 없다. 정성이다. 어제 언짢은 일이 있었어도 어김없이 밥을 차려주는 모습을 바라볼 때면 미스테리하고 기분이 참 묘하다. 저녁이면 굴비를 굽거나 고등어를 지글지글 구어 넓은 접시 두 개에 따로 나눠 내놓는다. 아침에는 빠지지 않고 내놓는 메뉴가 있다. 계란이다. 딱 11분 동안 삶으면 껍질이 술술술 잘 벗겨진다며 신이 난 얼굴로 자신이 터득한 노하우를 내 앞에서 연신 뽐내기도 한다.


   오늘도 알맞은 사이즈의 접시에 계란 두 개를 덩그마니 내놓았다. "이거 다 나 먹으라고 주는 거여?" 우스갯소리로 건넸더니 그게 아니라며 얼른 말을 이었다. "나 하나, 당신 하나. 나도 하나 먹어야제!" "오~, 나 하나, 당신 하나^?^" 나는 재미있다는 듯이 아내의 말을 따라 했다. 분위기가 반전되며 기분이 좋아졌다. 그러고 보니 어제저녁 굴비를 구웠을 때에도 두 마리를 밥상에 내놓으며 우리는 그렇게 말을 주고받았다. 


   올리비아가 밥상을 차리는 모양은 우리 서로 공평하고 대등하게 살자며 나에게 보내는 제스처 같았다. 혼자 잘났다고 우기지 마시오. 오로지 나만 옳다는 주장도 버리시오. 이 사람도 인정할 줄 아시오. 아마도 그런 뜻의 퍼포먼스가 아니었을까. 나는 소리 없이 미소를 지으며 찐계란을 하나씩 차례로 들고 조심스럽게 껍질을 깠다. 그릇에 두 개를 나란히 놓고 역시 아내가 즐겨 쓰는 스타일로 하나 먹으라고 권하였다. "잘 까졌네. 어째...^?^" 따뜻하고 호감 가는 말은 언제나 희망을 갖게 해서 좋다. 신념을 이루고자 하는 심모원려(心謀遠慮)를 멈출 수 없다. 여보, 잘해봅시다^^

매거진의 이전글 어머니 생신 날 깜짝 선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