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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쉐비 May 19. 2023

어머니 생신 날 깜짝 선물

아내에게 공들이며 구슬린 나의 심리전 이야기

   5월 초 사흘 연휴를 겨냥해 한 달 전부터 고향방문 일정을 잡아놓고 기다렸다. 어머니의 87회 생신을 맞아 찾아뵙기 위스케줄이다. 하필이면 그때 비가 올 거라는 예보가 있어 마음에 걸렸다. '이번에는' 아내와 같이 내려가기로 했다. 자주 있는 아니다. 특히 어머니 연세가 이 만큼 많아졌기에 더욱 뜻깊은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다. 하기로 한 일을 막판에 깨버린 경우가 하두 자주 있어서 끝까지 아내의 마음을 지켜보아야 했다. 혹여라도 변심하지 않도록 어느 때보다 각별한 신경을 썼다.


   올리비아는 어쩌다, 정말로 어쩌다가 이번 나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어떻게든 아내를 데려갈 궁리를 다가 내가 콘도를 잡겠다며 회심의 카드를 던진 것이 주효했다. 대신에 딱 1박만 하고 돌아와야 한다며 나의 다짐을 받았다. "? 좋아!"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 성공이다. '야~~, 이 사람 정말 고향에 한 번 같이 가기 힘드네!' 결혼생활 35년 동안 시골에 같이 갔던 기억을 꼽아보면 두 번이나 될까 세 번이나 될까. 그렇다고 아랫동서들이 더 많이 간 것도 아니다. 하여튼 10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어마어마한 일이 이번에 일어나게 돼서 나는 마냥 흥분되다. 


   출발하는 날 아침. 이미 어제부터 추적추적 내리던 빗줄기가 더 거세지고 있었다. 예보가 틀리기를 바랐는데... 마음이 심란했다. 아내가 날씨 핑계 대고 못 가겠다고 선언해 버리면 어쩌나 걱정되었다. 가야 하고, 갈 것이라는 내 마음은 요지부동이었다. 올리비아가 끝내 못 가겠다고 꼬장 부린다면 그때는 두 말없이 단념하고 혼자 가리라 단단히 작정하고 있었다. 어머니 생신인데 가고말고를 조금도 고민할 일은 아니었다. 더구나 이번에는 동생들도 각자 다른 일정들이 있는지 가겠다고 나서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 이제는 그런 일로 탓하지 않기로 하였다. 그럴 생각도 없다. 오히려 이럴 때 아내와 단둘이 다녀오면 참 좋겠다는 대안이 머릿속에서 급부상하였다. 안 될 일에 미련을 두기보다는 차라리 될 수 있는 일을 만들어 보자는 주의다. 구상대로 울 엄마도 정말 놀라고 기뻐할 것만 같은 생각에 미치자 한층 더 의욕이 솟았다.

 

   마음은 급한데 아닌 척하며 아내의 움직임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올리비아전혀 서두르는 모양이 아니었다. 이거 뭐야. 간다는 거야 안 간다는 거야! 속이 터질 것 같았다. 그렇지만 차마 판을 깰 수는 없었다. 더 참아야 했다. 잠시 후, 내가 안달이 나서 잽을 던지듯 가볍게 건네보는 말에 이미 가시가 배어있었다. 최대한 늦게 출발하고 가급적 빨리 돌아오려는 아내의 뒤틀린 심사가 말끝마다 나의 기분을 적잖이 자극하였다. 


   길이 멀고 비도 계속 온다고 하니 아침 일찍 출발하자고 어제 미리 말했건만, 이미 8시가 지나도록 서두르는 기미가 전혀 없었다. 도대체 언제 출발하려고 그렇게 탱 하고 있냐는 나의 채근에 올리비아는 즉각 신경질적인 말로 응수하고 나왔다. 뭐 한다고 그렇게 빨리 가야 하냐며 브레이크를 걸어버렸다. 아내가 나에게 가자고 할 때까지 기다려 보기로 하였다. 별 수가 없었다. 알고 보니 어제 직장에서 축구연습을 하고 집에 들른 아들을 데려가고 싶은 속셈이었다. 단 둘이서 가자고 했기에 미리 나의 허락을 받고자 눈치를 살피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아들과 함께 10시가 지나서야 출발할 수 있었다.


   수원 광교에서 출발한 지 거의 6시간 만에 벌교에 도착하였다. 내내 비가 내리는 바람에 평소보다 시간이 훨씬 더 지체되었다. "내가 이래서 아무 데도 못 간다니까~" 멀고 허리 아프다며 뒷좌석에 앉은 아내가 내뱉는 말을 몇 번이고 벙어리처럼 들어야 했다. '아~참, 집이 너무 멀다고 미안해야 하나?' 한마디 되쏴주고 싶었지만,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은 채 나는 앞만 주시하며 운전에 몰두하였다.


   어머니는 다른 어르신들과 함께 마을회관에 계셨다. 우리 일행은 회관에 들어가 어르신들께 정중히 인사를 드렸다. 그리고 잠깐 집에 들러 어머니의 짐을 챙기고 콘도가 있는 율포로 갔다. 내가 고향에 가면 어머니 모시고 해수녹차탕에 가고, 녹차화장품도 사는 등 즐겨 찾던 해수욕장 휴양지다. 예상대로 아내의 얼굴이 확 밝아졌다.


   어머니 생신을 맞아 우리가 직접 미역국을 챙겨드리지 못해 죄송하고 아쉬웠다. 당신께서는 아침에 끓여서 잘 먹었으니 괜찮다고 했다. 아들이 할머니를 위해 저녁을 샀다. 아내는 다음날 아침 청국장을 샀다. 우리는 해변도로변 데크를 잠시 거닐며 바람도 쐬고 사진도 여러 컷 찍었다. 엄마와 나, 그리고 아내와 아들이 번갈아 옆으로 와서 같이 찍기도 하였다. 특히 어머니와 아내가 같이 찍은 사진이 참 예쁘게 나와서 내 기분이 흐뭇하였다. 오래전부터 마음속으로 그리던 장면이다. 이제야 그런 장면을 만들 수 있어뿌듯하였다.


   어머니와 같이 해변길을 더 걸어보고 싶었지만, 이제는 힘들어서 못 한다고 하기에 바다를 눈으로만 바라보고는 말았다. 마음이 아팠다. 고작 식사 두 끼를 하고 나니 어머니와 함께 한 시간이 다 소진되어 버렸다. 어머니도 나도 아쉬워하는 마음과는 아랑곳없이 아내는 갈길이 멀고 차가 밀린다며 부랴부랴 서둘렀다. '그래봐야 얼마나 차이가 난다고...?' 역시 피가 섞이지 않은 사람은 어디가 달라도 다르다. 그런 모습을 바라보는 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냉정하고 야속해 보여 마음이 약간 쓰렸다. 어머니를 다시 집에 모셔다 드리고 이내 출발하였다. 마음이 무거웠다. 그나마 이렇게라도 다녀오는 것이 좋겠다는 당초의 생각을 떠올리며 나는 스스로를 위로해야 했다.


   오가는 길은 힘들었지만, 아내를 동반하고 가서 어머니와 함께한 율포의 시간은 즐겁고 행복하였다. 시어머니가 어려운 아내는 그나마 아들 녀석이 동행했기에 확실히 부드럽고 자연스러워 보였다. 차를 몰고 고향 가는 먼 길이기에 모처럼 우리 둘이 도란도란 얘기 나누며 가고자 했지만, 아들이 끼는 바람에 그럴 기회는 갖지 못했다. 나는 왜 굳이 아들을 데려가려고 하냐며 짜증을 내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잘한 일이었다. 함께 한 시간이 너무 짧아 아쉬워하는 내 마음과는 달리 어머니의 기분 좋은 목소리는 여러 날 계속되며 이어졌다. 너무 서운해하실까 봐 걱정했는데 다행이었다. 감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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