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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쉐비 Mar 15. 2023

귀촌 두 마음

아내와 나 사이는 여전히 평행선

   부부가 30년 이상을 같이 살면서도 확실히 서로가 이해하지 못하는 깊은 구석. 보통은 상대방의 내면을 손바닥 보듯 너무나 잘 알고 있다고 각자 자신하며 사는 사이인데도 말이다. 올리비아가 가끔 전혀 예상치 않은 의외의 모습을 보일 때 나는 특히 그런 생각을 다. "아니, 당신한테 그런 면이 있었어? 응?" 서로 극과 극의 관계처럼 그토록 상반되고 고한 성질을 고수하며 살아온 우리이기 피차간 예상 궤도를 벗어난 말과 행동이 나오면 그냥 지나치기가 어렵다. 도대체 무슨 사정이 있었는지, 그게 정말인지  확인하고 싶어 마음이 안달이다. 마치 갈 데까지 가자며 마주 보고 달리던 두 마리의 말이 갑자기 대형을 바꿔 같은 방향으로 사이좋게 발맞추며 걸어가는 대반전이 이뤄진 형국인지라 그냥 지나치기가 어렵다.




   바로 어제 내가 했던 말을 올비아가 마치 자기 생각인양 내 앞에서 태연하게 말해 당혹스럽게 하는 건 우리 사이에 종종 있는 일이다. 아이들 일이나, 물건을 사는 문제 등 대부분은 사소한 것들이다. 서로 그게 아니라고 기를 쓰며 주장했던 일을 두고 갑자기 태도를 바꿔 그렇게 나올 때면, 굳이 내가 아니라 다른 누구라도 실소를 참지 못할 것이다. "그러게 말이여. 근데 그건 내가 한 말이잖아! 당신이 그렇게 말을 하니 내가 갑자기 헷갈리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기쁘고 다행이다. 위안과 안도감까지 동시에 느끼게 된다. 은연중 내 말에 동조하거나 인정한다는 신호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작년 어느 날, 아내가 <나는 자연인이다> TV프로를 즐겨 보는 것을 우연히 알게 되었다. 뜻밖이었다. '아니, 이 사람이 이런 프로를 다 보네...!' 외딴곳 깊은 산속에 묻혀 혼자 살아가는 사람들의 기행에 가까운 갖가지 모습이 흥미를 끄는 프로였다. 올리비아는 그들 삶의 소박하고 진솔한 면보다는 오락적 요소에 더 비중을 두고 재미있어하는 것 같았다. 분위기가 비슷한 고향 얘기를 내가 꺼내면, 그런 이야기일랑 아예 들으려고 하지를 않았다. 두 팔을 들어 크로스하고 크게 엑스(X) 자를 그리며 나의 말을 스톱시켰다. '다른 곳은 몰라도 당신 고향얘기라면 관심 없거든. 듣기도 싫으니 그만하시지.' 마치 그런 표정이다. 그런 사람이 자연 속에 들어가 사는 낯선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에 호기심을 보이다니 그게 무슨 징조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내 앞에서는 아니라고 하면서도 속으로는 남들이 시골에서 어떻게 사는지 은근히 궁금증이 발동하나 보다 하고 나 혼자 생각했더랬다.




   60 넘어 점점 나이가 더 듦에 따라 남녘 고향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연로한 나이에 홀로 외롭게 계시는 어머니 곁에 가고 싶은 마음에다가 이제 거친 세상사 멀리하고 그저 호젓하게 살고 싶은 생각이 더해져 더욱 그런 것 같다. 세상에 대하여 가질 수 있는 욕심이나 집착도 과거에 비해 많이 사라졌다. 오히려 약소하나마 주변에 뭔가를 베푸는 일이 가끔씩 생겨난다. 예전에 비해 관대해지고 먼저 손을 내밀며, 먼저 다가가는 일이 잦아졌다. 이제야 철이 들고, 인생의 참맛을 알게 되었나 보다.^^ 그럴 때마다 정말로 마음이 흐뭇하고 좋았다. 돌아보면, 정년퇴직을 하고 나서 가장 먼저 모교 교우회에 평생회비를 기부금처럼 냈을 때 그런 알싸한 기분을 처음으로 느껴봤다. 물론, 감사한 마음이 컸지만.




   생각이 자꾸 자연을 닮아가는 것일까. 성숙하고 늙어가는 징후일 것이다. 마음이 자꾸 고향을 향하는 것 역시 그러한 연장선상 어디쯤에 있으리라. 항상 마음에 걸리는 건 아내다. 고향으로 내려가는 나의 제안을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모양이다. 아직은. 도시의 편리함과 생동감에 미련이 많아서 그러려니 하고 짐작한다. 시골에 산다는 것이 꼭 일을 해야만 하는 것도 아닐진대, 몸도 약해서 일하며 살 자신이 없다 하니 내가 그리는 그림과도 한참 동떨어진 얘기로 거부감을 표시한다. 혹시나 닫힌 마음이 조금이라도 열리고 유연해졌을까 싶어 가끔 짚어보지만, 아직은 택도 없다는 걸 재차 확인할 뿐이다. 그래도 나는 쨉을 날리듯 일부러 시골 얘기를 꺼내 늘어놓기도 한다. 조금이라도 먹혀들어가는 효과가 있는지 올리비아는 혼자 있을 때면 조용히  말을 곱씹어보는 것 같았다. 말이 아닌 행동에서 그런 기미를 봤다.^^




   역시 TV프로였다. 아내가 KBS <자연의 철학자들> 시리즈물에 푹 빠졌다. 도시에서 살다가 어느 순간 귀촌, 귀산, 귀어 등 자연으로 돌아가 사는 사람들의 일상을 담아 소개하는 영상기록물이다. 그중에는 시나 동화를 쓰는 등 글과 친한 사람들이 유독 나의 눈에 많이 띄었다. 취향이 비숫한 때문일 것이다. 늙은 어머니 모시고 춘천에 내려가 사는 어느 시인의 사례는 특히 교훈적이었다. 파란 눈의 프랑스계 캐나다인 신부가 우리 농촌에 터 잡고 살면서 땀 흘려 일하는 모습은 삶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매력을 더해줘 신선했다. 촌(村)에서 산다는 것이 고되고 힘들지만, 사실 북적거리는 세상과 멀어진 관계로 삶이 외롭다는 걸 나는 잘 안다. 그렇다고 이것저것 다 가질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그래서인지 철학자라는 이름으로 그려지는 영상 속 사람들은 하나같이 아름답게 보였다. 시적이고, 서정적이어서 보는 이들의 심금을 자극하기에 충분하였다. 틈틈이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장면은 마치 내가 그 주인공이라도 되는 양 설레기도 하였다. 그것이 비록 실제 현실 삶에서 느끼는 심경과 사뭇 거리가 있을지라도 말이지. 처음에는 아내의 권유가 있었지만, 지금은 내가 오히려 더 열심히 챙겨보는 입장으로 바뀌어버렸다. 그것 참 괜찮은 프로라고 의견을 같이 하며, TV앞에 둘이 나란히 앉아 하루 한 프로씩 다시 보기를 하였다. 귀촌 오리엔테이션을 받는 기분이었다. 정 내키지 않으면 마음을 거슬러서까지 억지로 갈 수야 있겠는가. 아무쪼록 지금껏 완고하고 단정적이었던 아내가 시골을 다시 보는 계기가 되었기를 바란다.




   고향, 시골, 자연에 대한 아내와 나의 견해 차는 여전히 크다. 고향이 비슷한 아내는 시골의 우리 집이 너무 멀어서 가기 싫다고 한다. 그것은 다시 돌아올 생각을 하기 때문일 것이다. 앞으로 사는 동안, 과연 그럴 일이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다. 굳이 그래야 할지도 의문이다. 요즘 유행하는 노래 가사처럼 아내와 나 사이는 좀처럼 접점이 이뤄지지 않는 평행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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