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쉐비 Apr 08. 2023

이제부터 나라가 어르신 대우해 드립니다

분양형 노인복지주택에 드러난 모순

   벌써 한 달 전, 시청에서 웬 우편물이 하나 내 앞으로 왔다. '뭐지...?' 혹시 내가 죄지은 게 있었던가. 불안한 생각이 먼저 들었다. 아무래도 짚히는 게 없었다. 흐흠~~. 봉투를 조심스럽게 뜯어보고서는 나도 모르게 살짝 웃음이 나왔다. 다음 달 생일에 만 65세가 되니 기초연금을 미리 신청하라는 연락이었다. 복지담당 공무원들의 분주한 움직임이 눈앞에 보이는 듯 상상이 되었다. 매달 만 65세에 도달하는 사람들을 이처럼 가려내고, 나라가 그들에게 제공하는 복지혜택을 일일이 안내하느라 바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른바 어르신 복지혜택을 알려주는 서비스다. 어느덧 내가 그 대상자가 되었다.



 

   며칠 후, 행정복지센터에 가서 기초연금 신청서 양식을 받았다. 서류작성에 앞서 상담을 먼저 받아보라며 한 여자 직원이 내 앞으로 와 앉았다. 기초연금을 신청한다고 해서 누구나 주는 건 아니라고 했다. 점을 먼저 주지하고 싶은 눈치였다. 금융, 부동산 등 각종 재산에 관한 개인정보를 조회하고 심사를 거쳐 결정하게 된다고 하였다. 소득인정액이 전 국민 기준 하위 70%에 들면 받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요?" 그 정도라면 나도 낄 수 있지 아닐까. 최상위 소득자 30%를 제외하고 나머지 사람들에게 다 준다고 하니 막연하나마 낙관적인 생각이 들었다. "나라에서 기초연금 주면, 이 나이에 일 안 하고 싶소^^" 기왕이면 받을 수 있게끔 조건을 맞추고 싶다고 말을 건넸다. 그러시냐며 그녀가 사무적으로 가볍게 웃었다. 나는 진지한 표정을 짓느라 덩달아 따라 웃지는 않았다. 복지팀 소속이라는 사람은 미리 준비된 문항을 보며 나에게 서대로 질문을 하기 시작하였다. 정확한 결과를 보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수도 있다고 하였다.




   예정된 질문을 모두 마치고 나서는 곧바로 예고편처럼 결론을 들려주었다. "어르신은 기초연금 지급대상에서 제외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니 너무 기대하지는 말라며 일찌감치 희망을 꺾어버렸다.  사이 나는 국민연금과 개인연금에다가 우리 부부 기초연금한 데 보탤 수 있다그런대로 괜찮겠다는 계산을 머릿속으로 이미 끝내놓고 있었다. 하는 일을 그만두고 그만 고향으로 내려갈 수도 있겠다고도 생각하였다. 그건 유감스럽게도 불과 5분도 안 돼 깨져버린 3분몽(夢)에 불과하였다. 잠시 들떴던 기분이 착 가라앉아버렸다. 지금 일을 하며 받는 급여 때문이라면, 차라리 그만두면 가능하지 않겠냐며 되물어도 보았다. 그래도 웃기만 할 뿐 확답을 해주지는 않았다.




   안내장에는 그 밖에도 3가지 혜택이 더 들어 있었다. 지하철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경로우대 교통카드가 가장 실속 있어 보였다. 내 생일인 삼짇날이 되자마자 농협 창구에 갔더니 즉석에서 발급해 주었다. 지하철을 공짜로 탄다고 해서 지공거사로 부른다는 친구들의 익살스러운 말이 떠올랐다. 전부 무료여서 직급으로 치면 전무급이라고도 한다니 배시시 웃음이 절로 나왔다. 공짜 티켓을 받고 나서는 기분이 영판 좋았다.ㅋ 지하철공사 누적 적자가 눈덩이처럼 커졌다며 논란이 많은 시국이라지만, 여하튼 내가 국가로부터 뭔가 직접적인 챙김과 대우를 받게 되었는다고 생각하니 뿌듯하고 기뻤다. 더미로 인하여 불가피 제도가 바뀐다면, 그때 가서 그런대로 수용하면 될 이다.



   그 밖에 만 80세 이상 직계존속을 부양하는 사람에게는 효도수당을 주는 혜택도 들어 있었다. 반기당 5만 원씩 준다는 것이다. 추가 2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해야 가능하다는 전제가 붙어 있었다. 조부모-부모-손자녀 식으로 3세대 이상이 함께 거주할 것. 해당 지역에서 5년 이상 연속 거주하고 있을 것. 요즘 같은 세상에 까다롭고 만만치 않은 주문이었다. 그렇더라도 효를 장려하기 위해 그런 제도를 시행하는 것은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라 좋아 보였다. 그런데 거기에는  가지 간과해서는 안 될 중요한 문제가 내재되어 있었다. 돈의 많고 적음을 떠나 같은 조건에서 효도수당을 받기가 상대적으로 더 어려운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다. 분양형 노인복지주택 거주자들이다. 사람이 문제가 아니라 규제덩어리인 그 주택이 문제다.  집에 거주하는 노인들은 자식들과 같이 살고자 하나 감히 그럴 수가 없다. 노인복지법으로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족쇄다. 복지주택에 이런 복지정책이 사실상 먹힐 수 없게 된 것이다. 앞뒤가 맞지 않는 노인복정책 모순이다.

 



   노인복지주택, 특히 분양형 주택 거주자들의 불편과 불만이 크다. 행정복지센터에서는 60세 이상인 적격자가 아니면 주민등록 전입을 아예 받아주지 않는다. 부적격자가 거주하는지 실태조사를 벌이기도 한다. 사실상 입주자격을 심사하고, 부적격자가 살고 있는 건 아닌지 늘 감시하고 통제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위반하면 법령에 따라 처벌을 받을 수도 있다. 손자녀까지 3세대는 아니더라도 부자지간인 2세대도 함께 살 수가 없는 경우가 바로 복지주택이다. 초고령 사회가 목전에 이른 마당에 이게 과연 지금도 존속해야 할 복지정책인지 의문이다. 이미 사유재산이 된 분양형 주택에 정부가 사회복지시설이라는 라벨을 붙인 채 이래라저래라 간섭하는 것은 언어도단이고 어불성설이다. 사유재산을 이렇게 취급해도 되는가. 불합리한 규제와 족쇄는 하루속히 풀어야 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