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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풍선껌 Aug 17. 2021

뉴질랜드에 가지 않은 게 후회된다.

나는 제주도보다 호주를 먼저 가봤다. 제주도를 처음 간 건 대학 졸업 전 학교를 통해 간 미국 연수에서 마일리지가 쌓여서 쓰기 위함이었다. 그때 나이가 25였다. 10여개국 해외여행을 하는 동안 일본은 28살에 중국은 30살에 처음 가보았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지만 아마도 무의식 중에 ‘가까운 곳’, ‘언제든지 갈 수 있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교환학생 시절까지 합쳐서 호주에 4년 정도를 사는 동안에 뉴질랜드에 갈 기회가 많았다. 살다 보니 호주인들보다 호주에 잠시 머물다 가는 사람들이 호주와 뉴질랜드 여행을 더 많이 한다는 재밌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단 한 학기 교환학생을 온 아이들은 학기 중에 있는 일주일간의 mid-term break와 주말, 학기말을 꽉 채워서 멜번, 울룰루, 퍼스, 태스매니아, 뉴질랜드 여행을 했다. 나는 저 중에 멜번만 가 보았다. 그들의 생각은 ‘이제 곧 떠날 테니 최대한을 누려야 해.’였을 테고 그때 나의 생각은 ‘시드니도 나에겐 외국의 도시야. 여기를 제대로 즐기는 게 나아’였다. 돌이켜 니 사실은 ‘호주에 오래 있을 테니 마음만 먹으면 저곳들을 갈 수 있어’라는 생각이 무의식 중에 자리 잡았던 것 같다.


울룰루나 퍼스, 태스매니아에 가지 않은 건 후회되지 않는데 뉴질랜드에 가지 않은 건 좀 후회가 된다. 기회도 많았다. 끝내 가지 않았던 건 내가 이것저것 재는 게 많아서였다. 로드 트립을 한다고? 화장실은? 샤워는? 호주에서 가는데 왜 비행기 값이 이렇게 비싸? 여행하는 중에 또 집값을 내고 있어야 되는 거네? 논문은? 등등...


반대로 내가 반 충동적으로 호주 국내여행을 한 적도 있다. 논문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을 때 내가 교환학생으로 있었던 브리즈번행 비행기 티켓을 사서 에어비앤비로 일주일을 있었다. 브리즈번 강 바로 옆에 있는 비싼 아파트의 한 방을 빌리는 거였는데 웬걸, 주인은 혼자 사는 아주머니였는데 여행을 떠나 없고, 그 아주머니의 친구의 딸이 키를 넘겨주고 3일간을 집을 비웠다. 고양이 밥만 좀 잘 챙겨달라는 부탁과 함께. 내 생에 가장 평화로웠던 3일이었다. 강이 보이는 베란다에 앉아서 아침에는 커피, 저녁에는 와인을 마셨다. 500m쯤 떨어진 마트에 가서 그날그날 먹을 걸 사 왔고, 100m쯤 떨어진 한적하면서도 적당히 붐비는 카페에서 끝내주게 맛있는 브런치를 먹었다. 강을 따라 걷다 보면 페리 정류장이 나와서 관광객을 위한 무료 페리를 타고 시티로 가서 예전에 다녔던 학교 캠퍼스도 들렀다 왔다.

집에서 강이 보이는 환상의 아파트였다.

광복절이 지나면 시원해질 거라던 엄마의 말이 맞았다. 창문을 열고 커피를 마시는데 문득 뜨거운 바람이 시원해진 걸 느낀다. 그러다가 갑자기 ‘뉴질랜드에 갔었어야 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뜬금없이. 바람이 시원해서 브리즈번의 강바람을 맞으며 마셨던 커피가 생각이 났고, ‘뉴질랜드에 갔다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해외여행이 제한되어서인지, 내가 여기에 있어서인지 하지 않은 선택에 좀 더 미련이 남는다.


뉴질랜드는 가보지 못했지만 내가 이미 갖고 있는, 그리고 가까이에 있는 것들을 소중히 여겨야겠다는 깨달음으로 아쉬운 마음을 달래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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