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운전면허를 딴 건 호주에서 운전을 하기 위함이었다. 스물 두 살 인생 첫 해외여행을 앞두고 나는 야심찬 계획을 갖고 있었다. 지금에 비해 10배쯤은 더 모험심이 넘쳤던 그때의 나는 면허도 없으면서 호주에서 운전을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급하게 학원을 다니고 마음도 급해서였는지 실력 부족으로 처음 본 시험에서 떨어졌다. 출국 전에는 면허를 받아야 한다는 마음에 바로 볼 수 있는 다음 시험을 치렀다. 코스를 마치고 시험장으로 좌회전을 해서 들어오기만 하면 되는데 너무 긴장한 탓에 직진을 해 버렸고 ‘수고하셨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두 번째 불합격을 했다. 결국 호주 출국 전 면허를 따진 못했지만 돌아와서 다시 본 시험에서 합격했다. ‘호주에서 운전을 하려면 면허를 따야 해’라는 압박감이 없어서였는지 내가 생각해도 차분하게 시험을 보았다.
그 이후로 호주에 살면서 운전은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나이가 들수록 내 모험심이 줄어든 이유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호주와 한국의 운전석이 반대라는 이유가 가장 컸다. 면허를 딴 뒤 한국에서도 거의 운전을 하지 않았던 내가 도로와 운전석이 반대인 곳에서 잘 운전할 수 있으리라는 자신이 없었다. 겁이 났다. 그리고 그 겁을 뛰어넘을 만큼 간절히 운전을 해야겠다는 계기 또한 없었다.
호주에서의 운전이 어색하고 헷갈리는 운전자들을 위한 표지판. 운전자석, 도로 진행방향 모두 우리와 반대다.
호텔에서 렌터카 회사까지는 열차(지하철)로 이동했다. 호텔과 서큘러 키 역이 가깝고, 렌터카 회사가 마스콧 역까지 가까워서였다. 마스콧은 시드니 공항이 있는 지역으로 시드니 남쪽에 위치하고 있는데, 우리는 뉴사우스웨일스주 남쪽으로 이동하고 돌아오면 바로 공항으로 갈 예정이어서 그곳에서 렌트를 했다.
홈페이지 상에서는 기아 리오를 예약했는데 현대 i30를 빌려주었다 (예약 시 비슷한 차종으로 렌트하게 될 수도 있다는 안내가 있음). 직원이 내 이메일로 보낸 차 사진과 막 세차를 마치고 나온 차를 비교해서 다른 점이 있으면 사진을 찍어 보내달라고 했다. 사진은 대략 7개 정도였는데 차를 받기 바로 직전에 찍은 사진이었다. 나 또한 혹시 모르니 차 외관을 동영상으로 한번 둘러 찍어두었다.
직원이 들어간 후 트렁크에 짐을 싣고 차 키 버튼을 눌러 문을 열고 차에 타려고 했다.
“엄마, 거기 아니야.”
엄마는 자연스럽게 차 오른쪽 앞 문 쪽으로 간 것이다. 멋쩍게 웃으며 ‘헷갈리네’라고 하곤 반대쪽 문으로 탔다. 나는 오른쪽 운전석에 앉아 차 내부를 살폈다. 어색했다. 미리 가져간 핸드폰 거치대를 왼쪽에 달까 오른쪽에 달까 고민하다가 한국에서는 운전석 기준 오른쪽 (차 가운데)에 두었으므로 오른쪽 사이드미러 바로 옆 환풍구에 거치대를 달았다. 길게 숨을 들이쉬고 ‘자 이제 가볼까’하는 마음에 시동을 걸려고 하는데 시동 거는 버튼이 없었다.
“버튼 어딨지?”
“뭔 버튼”
“시동 버튼. 뭔지 모르겠어.”
엄마와 나는 고개를 이리 젓고 저리 저으며 버튼을 열심히 찾았다. ‘이거 아냐?’라고 하고 나면 ‘응 아니야. 내비게이션 버튼이야.’가 되고 ‘저거 아냐?’라고 하면 ‘응 아니야. 라디오 버튼이야.’가 되었다. 그렇게 5분을 버튼만 찾았다. 사무실에 들어가서 ‘저기요... 죄송한데 시동 어떻게 걸어요?’라고 물어보면 초보운전자같이 보일까봐 어떻게든 우리의 힘으로 시동을 걸려고 했다.
“키 줘봐.”
혹시 키에 있는 버튼을 누르면 시동이 걸리나 싶었다. 아무리 봐도 문 여는 버튼밖에 없는데... 우리는 자주 보는 것만 본다. 자세히 보니 작고 둥그런 버튼이 ‘나 눌러줘’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누르니 열쇠가 쑥 하고 돌려 나왔다. 고개를 좌우로 아래쪽으로 향해 키를 넣는 구멍을 찾았다. 있었다. 호주에 있는 내내 집 문을 열 때 디지털도어락 대신 열쇠만 사용했었다는 걸 내가 기억했더라면 이렇게 헤매지는 않았을 것이다.
시동을 걸자마자 나는 기어를 R로 바꾸어 후진을 했다.
“캬... 다행이다. 후방 카메라 되네.”
시동은 열쇠로 돌리는 아날로그 식이지만 주차는 후방카메라가 돕는 신식이었다. 주차는 100퍼센트 후방카메라에 의지하는 내게 너무나도 중요한 옵션이었다.
엄마는 내가 운전석에 앉은 그 순간부터 바짝 얼었다. 샐러드와 생수 등 이것저것 사고 싶다고 말하는 엄마는 렌터카 회사에서 500미터 떨어진 울월스(대형 마트)에 걸어갔다 오자고 했다. 이미 캐리어를 마스콧 역에서 렌터카 회사까지 끌고 오느라 힘을 소진한 나는 마트에 걸어가기도, 장 본걸 들고 오고 싶지도 않았다.
“아니 엄마, 차가 있는데 왜 거기를 걸어갔다 와?”
내가 번지점프와 래프팅을 하고 해외여행을 혼자 무수히 다녀도 쏘 쿨 한 엄마는 내가 운전을 하는 것에 있어서만큼은 늘 걱정이 아-주 많았다. 내가 면허를 딴 이후로 운전을 거의 하지 않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교통사고를 겪은 엄마의 주변 몇 사람들 때문임을 알기 때문에 나도 늘 조심하는 편이지만 가끔은 너무 걱정을 한다 싶을 때가 있다. 모르는 동네에서 주차하겠다고 헤맬 것을 예상한 엄마는 몸이 편한 것보다 마음이 편한 편이 낫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우리 살 거 많잖아. 물만 해도 무게가 얼만데. 차로 가, 요 앞인데.”
렌터카 회사에서 나오자마자 좌회전을 해야 했다. 호주에서 좌회전은 한국의 우회전처럼 신호 없이 바로 하는 것이다. 나는 운전석 왼쪽에 달린 스틱을 아래로 내렸다.
“어... 뭐야.”
와이퍼가 흔들흔들했다. 이런... 운전석만 반대가 아니라 깜빡이 스틱도 반대잖아. 이후로 4일 동안 나는 수 번을 깜빡이 대신 와이퍼를 켜고 와이퍼 대신 깜빡이를 켰다.
반대인 운전석은 걱정했던 것보다 빠르게 적응이 되었다. 의외로 적응하기 힘들었던 건 도로 사정과 내비게이션이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방향이 헷갈리는 교차로에서는 도로에 선이 그려져 있어 따라가면 되었는데, 호주에서는 그런 게 없어서 몇 번을 가야 할 방향을 놓쳤다. 그럴 때는 내비게이션이 미리 ‘전방 몇 미터 앞에 어디로 가야 하니 몇 차선으로 주행하라’라고 알려주는데 구글 지도 내비게이션은 그런 게 없었다. 그나마 예상치 않게 한국어로 안내가 된다는 점만 제외하고는 너무 불편했다. 지도를 잠시 확대를 하면 몇 초 후 다시 주행안내 모드로 자동 전환되는 한국 내비게이션과 달리 구글 내비는 다시 현 위치 버튼을 눌러야 주행모드로 돌아왔다.
[100미터 앞 살짝 좌회전하세요]
“살짝 좌회전은 뭐야.”
이후에도 살짝 좌회전, 살짝 우회전은 나를 여러 번 헷갈리게 했다. 어떤 때는 미리 차선 변경을 해서 그놈의 ‘살짝 좌회전, 우회전’을 해야 했고, 어떤 때는 그냥 가던 길로 직진하듯 가면 되는 경우도 있었다. 마트로 가는 길에서 살짝 좌회전에 실패하여 근처를 한 번 더 돌았고 똑같은 데서 또다시 살짝 좌회전에 실패해서 결국 세 번을 돌았다. 결국 엄마의 판단이 옳았던 셈이 되는 것 같아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정작 마트에 가서 샐러드, 물, 저녁에 구워 먹을 고기, 라면 등 장을 한가득 보고 나니 ‘역시 차로 오길 잘했어’라는 마음이 들었다.
그 외에 호주에 무수히 많은 회전교차로에서도 몇 번을 난감해했다. 회전차량이 주행 우선인 것은 우리나라와 같지만, 추가로 호주에서는 자신의 방향 오른쪽에서 오는 차가 주행 우선이다 (회전 차량 없이 각 차로에서 정차하고 있는 경우 오른쪽 도로 정차 차량 통행 우선순위). 이 사실은 예전에 호주에서 운전하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검색하여 숙지해 두어서 큰 도움이 되었음에도 한 두 번 정도는 ‘아차’싶을 정도로 헷갈려했다. 무엇보다 내비게이션은 회전교차로에서 ‘좌회전, 직진, 우회전’으로 안내하지 않았고 ‘회전교차로에서 첫 번째 출구로 가세요.’와 같이 세 번째, 다섯 번째 등 홀수 번째 출구를 대며 안내를 했다.
‘아니 출구가 세 갠데 어떻게 다섯 번째가 나와’
처음에는 좌회전이 첫 번째, 직진이 세 번째, 우회전이 다섯 번째인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고백건대, 엄마와 나는 4일간 끝내 ‘첫 번째, 세 번째, 다섯 번째 출구’의 비밀을 풀지 못했고 그냥 그림을 보고 알아서 좌회전, 직진, 우회전을 했다.
그렇게 나는 처음 호주에서 운전을 하고 싶었던 오랜 바람을 이루게 되었다. 호주에서 운전하는 건 내게 있어서 나만의 안전지대에서 벗어나 도전하는 용기를 의미한다. 오랜 시간 동안 할 엄두를 못 내었던, 용기가 없었던 일을 어설프든 어떻든 해 내고 나니 ‘괜찮구나’라는 안도감과 묘한 성취감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