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슈어리 포인트 (Sanctuary Point) → 시드니 마스콧 (Mascot, Sydney)
엄마와의 호주 여행 렌터카 대여 마지막날, 반납 시간이 시드니에서 오후 12시여서 우리는 아침 8시에 일어나 8시 50분에 숙소를 떠나기로 했다. 지도상으로 시드니까지는 약 190km, 시간으로 2시간 30분이 나왔으나 일기 예보에서 많은 비를 예상했으므로 시간을 좀 더 넉넉히 두어야 했다.
운전을 해야 할 때 비가 오면 엄마와 나는 관점이 달랐다. 운전을 했던 4일 내내 걱정이 끊이질 않았던 엄마는 ‘운전해야 하는데 이렇게 비가 오냐’였고, 나의 경우에는 ‘비가 올 때 운전을 해서 다행이다’였다. 비가 와서 어차피 나가서 어딜 돌아다니고 하는 게 제한된다면 차로 이동이라도 하는 게 낫다는 게 나의 생각이었다. 저비스 베이로 운전해서 올 때는 비가 거의 오지 않았지만, 내가 휴식 없이 장장 세 시간 정도 운전을 해서 시드니로 돌아갈 때에는 운전대를 잡는 순간부터 비가 마구 쏟아지기 시작했다.
비는 내가 운전을 하는 3시간 동안 단 한 번도 그치지 않았다. 조금 오거나, 많이 오거나, 아주 많이 오거나, 하늘이 뚫릴 기세로 미친 듯 쏟아지거나의 차이였다. 저비스 베이로 운전해서 올 때에는 로열국립공원, 울릉공, 키아마로 짧게 짧게 끊어 왔기 때문에 운전이 피곤하거나 아주 어렵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반대로 돌아갈 때에는 휴식 없이, 그것도 쏟아지는 빗속에서 한국과는 반대 좌석에 앉아 고속 운전을 하려고 하니 정신이 바짝 긴장이 되며 침이 말랐다.
비가 차츰 많이 오자 나는 와이퍼의 속도를 최대로 높였다. 한국에서 내 차는 후방 와이퍼가 있는데, 쓰나 마나 별 차이가 없어서 잘 쓰진 않지만 그때 나는 왜 차에 후방 와이퍼가 있는 지를 절실히 깨달았다. 쏟아지는 비 때문에 사이드미러가 제대로 보이지 않아 나는 대부분의 경우에 룸미러에 의존해서 차선을 변경했다. 후방 와이퍼가 있어서 룸미러로 뒤쪽을 제대로 볼 수 있었고 그나마 다행이었다.
시드니로 향하는 고속도로는 흡사 전쟁터와 같았다. 우리나라 고속도로에도 트럭이 많지만 호주 고속도로에서 본 트럭들은 스케일이 남달랐다. 트럭의 길이가 트럭 두 개를 이어 붙인 것만큼 긴 것들도 많았고, 컨테이너 박스, 포크레인을 실은 트럭도 보았다. 무엇보다 엄마와 나를 경악하게 만든 건 트럭 두 대를 실은 트럭이었다. 그런 차들은 속도를 내지 못해서 몇 번은 추월을 해야 했는데, 옆으로 지나갈 때마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한번은 트럭을 추월하려고 1차선으로 갔는데 2차선의 트럭이 속도를 줄이지 않고, 비 때문에 내가 무리하게 더 속도를 못 내는 상황이라 나란히 주행하게 되었다. 그런데 뒤차가 체감상 2미터 가까이 다가와 상향등을 켜는 게 아닌가. 비로 앞이, 가드레일과 트럭으로 옆이, 차로 뒤가 막힌 그야말로 진퇴양난의 상황으로, 내가 운전면허를 딴 이래로 가장 아찔한 순간이었다. 속도를 더 내는 건 아무래도 무리라는 생각에 뒤차로부터 10초 정도 욕을 먹더라도 왼쪽 깜빡이를 켠 채로 속도를 줄여 트럭을 보낸 다음 트럭 뒤 2차선으로 바로 빠졌다. ‘비가 이렇게 오는 데 꼭 이렇게 까지 해야 하나’하고 감정이 상했지만 자존심에 목숨을 걸 생각은 전혀 없었으므로 다시 운전에 집중했다.
그렇게 시드니까지의 거리가 100여 킬로미터에서 두 자리로 떨어지자 나는 조금 안심이 되었으나 엄마는 처음부터 끝까지 얼음이었다.
“엄마, 나는 지금 날씨가 신경 쓰이지만 사실 신경 쓰는 엄마가 더 신경 쓰여.”
“비가 많이 오잖아.”
“그래도 제대로 가고 있잖아.”
걱정이 많았던 엄마와는 달리 내 기분은 이상하게도 좋았다. 잔뜩 긴장하기는 했으나 빗속에서 운전을 하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목적지로 향한다는 사실은 내게 쾌감과 짜릿함, 그리고 자유로운 느낌을 주었다.
나는 그날 인생의 깨달음을 얻었다. 비가 쏟아져도 자유로울 수 있고, 햇살이 내리쬐어도 마음은 지옥 같을 수 있다는 진리를.
퍼붓는 빗속을 뚫고 시드니로 향하며 나는 이제껏 느껴본 적 없었던 자유를 미친 듯 만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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