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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풍선껌 Jun 26. 2023

14. 번역기에 쓴 글을 전차에 탄 사람에게 보여주었다

 호텔을 나오기 전 커피 머신에서 커피 한 잔을 더 뽑아서 나왔다. 일본 호텔에 있는 커피 테이크 아웃 컵은 우리나라 자판기 종이컵 사이즈로 매우 작아서 전차 정거장에 도착하기 전까지 다 마실 수 있을 것 같았다.     


 걸어서 5분 정도 거리의 정거장까지 다 마시기는 했으나 컵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난감해졌다. 하코다테의 전차 정류장도 그랬지만 정거장의 폭이 1m 정도 밖에 안 될 정도로 좁았는데 그래서인지 쓰레기통이 있는 경우는 본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디에서든 도로나 정류장에 쓰레기 하나 없었던 게 신기하긴 하다. 결국 다 마신 컵을 가방에 넣거나 호텔로 돌아가는 옵션밖에 남지 않았는데, 호텔로 돌아가면 다시 안 나올 것 같았고, 흰색 에코백이라 커피가 다 샐 것 같아 가방에도 넣고 싶지 않았다. 문득 제3의 옵션이 떠올랐다.   

   

 번역기 앱을 열어서 무어라 말을 하고 번역된 것을 캡쳐 했다. 그리고 오는 전차의 문 가까이에 있는 사람에게 보여주기로 했다.      


 전차가 들어오고 문이 열렸다. 사람이 탑승하는 뒷문 오른쪽 기둥 쪽에 서 있던 여자에게 핸드폰을 내밀었다. 무표정하던 여자는 핸드폰 쪽을 힐끔 보더니 씩 웃으며 손으로 오케이 사인을 했다. 성공이었다. 



 물론 다 마셨지만 내가 든 컵 안에 뜨거운 커피가 있는지 없는지 사람들이 알 수는 없으므로 커피 같은 음료를 들고 대중교통을 타는 게 허용되는지 확실히 할 필요가 있었다. 나는 전차로 두 정거장을 가서 빈 커피컵을 들고 내렸다.      


 나카지마공원은 오전에는 무척 따뜻하게 햇살이 비추었는데 4시가 넘자 공기가 차가웠다. 여전히 벚꽃은 햇살에 흩날리는데 바람은 차가워서 오묘한 조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저나 커피컵을 버리고 싶어서 열심히 쓰레기통을 찾았는데 공원에 쓰레기통 자체가 없었다. 그래서 화장실을 갔는데 ‘화장실에 쓰레기를 버리지 마시오’라는 문구가 있어서 차마 버리지 못했다. 결국 컵 버리기는 포기하고 호텔까지 도로 들고 와서 버렸다.      

 삿포로의 마지막 저녁 식사는 삿포로에서 유명한 양고기 바베큐인 징키스칸을 먹기로 했다. 징키스칸의 인기가 얼마나 많던지 전날이었던 일요일은 차마 시도도 못 해보았고, 블로그에 검색을 해 보니 예약을 하지 않으면 못 간다느니, 한 시간은 기다려서 들어갔다느니 그런 말들이 있었다. 혼자서도 징키스칸을 맛있게 잘 먹었다는 여러 글들을 보기는 했으나, 과연 내가 혼자 고깃집에서 고기를 구워 먹을 수 있을지 걱정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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