삿포로의 유명한 징기스칸(양고기 바베큐) 체인 중 하나인 다루마 4.4를 전날 저녁에 지나갔었다. 입구까지 줄이 길게 있었는데 기다리면서까지 먹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이날은 호텔에서 200m내의 가까우면서도 평이 좋은 징기스칸 전문점을 찾아갔다. 일반 음식점은 이렇게 긴장되지 않았었는데 혼자 고기를 구워 먹으러 간 적은 살면서 단 한 번도 없어서 바짝 긴장했다. 어느 시점엔 ‘내가 고기가 먹고 싶은 건지, 나의 용기를 시험하고 싶은 건지’ 구분하기 어려워졌다. 5일 전 비 오던 저녁, 호텔에서 불과 1.5km 떨어진 TV타워 전망대에서 ‘그냥 유명하다고 취향도 고려하지 않고 찾아다니지는 말자’라고 예전의 다짐을 되새겨 놓고, 나는 그저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인간인지라 좋아하지도 않는 양고기를 먹으려고 그렇게 애를 쓰고 있었다.
찾아간 징기스칸 고깃집은 2층에 있었다. 계단을 올라갈수록 시끌벅적한 소리와 함께 고기 냄새와 연기가 자욱했다. 계단을 다 올라갔을 때 사람들은 벽 너머로 있어 보이지 않았고, 내가 오는 소리를 듣고 젊은 여직원이 나왔다. 이른 저녁밖에 되지 않았는데 번아웃이 온 것처럼 피곤해 보이는 그 여직원은 묘하게 지루함을 견딜 수 없는 얼굴을 하고 있던 TV타워 카운터의 여직원을 떠올리게 했다. 나는 그녀가 묻기 전 알아서 이야기를 했다.
“한 사람입니다.”
“예약을 했나요?”
인터넷으로 예약하려고 했는데 당일 예약은 되지 않아서 못했다.
“아뇨.”
무표정한 그녀는 벽 너머로 슥 살피고는 ‘후루(full)’라는 말을 했다. 그런 때가 있다. 거절당했는데 묘한 안도감이 올 때. 그 북적거림 속에서 혼자 유유히 고기를 구워 먹을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 호텔로 돌아가려고 하니 홋카이도 여행의 마지막 저녁을 호텔방에서 먹는 편의점 음식으로 때우고 싶지는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기만 하면 편의점 음식이든 햄버거든 무슨 상관이냐 싶다. 하지만 그때의 마음은 그러했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검색을 했다. 호텔 바로 건너편에 있는 징기스칸 고깃집이 있었다. 삿포로에 징기스칸 집이 이렇게나 많은데 평일인데도 어딜 가든 이렇게 붐비는 건 좀 의아했다.
나름의 심호흡을 하고 두 번째 징기스칸 집으로 문을 열고 들어갔다. 또 그런 때가 있다. 무언가를 시도하자마자 후회할 때. 테이블 6개 정도의 크기가 크지 않은 식당에 1인석은 없었다. 테이블 몇 개에 사람들이 앉아서 고기를 구워 먹고 있었고 딱 두 개의 테이블이 비어있었는데 내가 앉지 않더라도 테이블이 곧 전부 다 찰 것 같았다.
30대 후반 정도 되어 보이는 사장으로 추정되는 남자가 나를 어디 앉힐지 잠시 고민하더니 혼자 앉아있는 남자 옆 테이블로 안내했다. 혼자서 테이블 하나를 다 차지하게 되는 게 꽤 부담스러웠는데 그나마 그 남자도 혼자 앉아서 다행이었다. 그런데 얼마지 않아 그 남자의 친구가 와서 건너편에 앉아 고기와 맥주를 시키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무도 배신하지 않았는데 배신감이 들었다.
주문은 사장의 어머니인지 아닌지 모르겠는 60대 정도의 종업원이 받았다. 긴장해서인지 배가 고프지도 않았고, 그저 얼른 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장의 어머니로 추정되는 직원에게 메뉴 추천을 부탁했고, 그분은 무표정한 얼굴로 사진 세 개를 가리키며 다른 사람들은 한 사람당 양고기 부위별로 하나씩 시켜 먹는다고 했다. 나는 정말로 먹는 양이 많지 않아서 다 먹을 수 없을 것 같았고 (어떤 부위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안심 1인분, 야채, 밥, 맥주 이렇게 시켰다. 내 오른쪽 테이블엔 예상대로 얼마지 않아 4명의 사람들이 앉았다. 바쁜 시간대에 4인용 테이블에 나 혼자 앉아서 가게의 매상을 축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징기스칸 1인분(아마도 100g)의 양이 엄청나게 적다는 말을 듣기는 했으나 정말로 적었다. 어차피 많이 먹을 생각이 없어서 적은 양은 상관없었지만 냉동고기가 나온 건 실망이었다. 나만 그런 건가 하고 나중에 검색을 해 보았더니 그 식당에서 그 부위는 냉동으로 나오는 것 같았다. 야채도 적었는데 감자 또한 냉동이었다. 그냥 다 내려놓고 고독한 미식가처럼 조용히 고기를 구워 먹었다. 징기스칸에 대한 몇 사람들의 평은 ‘양고기 싫어하는 데 양고기 맛이 하나도 안 났어요.’였는데, 내가 먹은 건 정확하게 양고기였고 양고기 맛이 났다. 주관 없이 살면 후회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느닷없이 양고기를 먹으며 다시 한번 깨달았다.
거의 다 먹었을 즈음 남자 사장이 번역기를 써서 ‘고기를 추가하시겠습니까?’라고 보여주었다. 그는 내가 들어올 때부터 몹시 친절했었다. 그가 나를 배려해서 한 말이라는 걸 알았지만 가게가 워낙 붐비는 시간이라 내가 자리를 차지한 채 많이 주문하지 못하고 있는 게 불편했다. 그렇다고 먹지 못할 음식을 주문하고 싶지는 않아서 정중히 ‘배가 불러서요. 감사합니다’라고 말한 뒤 빠르게 있던 음식을 다 먹었다. 정말로 배가 불러서 밥은 반 정도 남겼다.
맛을 음미하고 그럴 새도 없이 급한 대로 일어났다. 그리고 계산하기 전 번역기를 사용해 남자 사장에게 보여주었다.
<바쁜 시간에 적게 주문해서 죄송합니다. 저도 이렇게 적게 먹을 줄 몰랐어요.>
손님이 적게 주문하든 말든 자유이긴 하지만, 식당이 워낙 바빴고 그 와중에 사장님이 친절해서 나름대로 내 마음은 그렇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그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젠젠(전혀요)’이라고 하며 거스름돈을 주었다. 그의 마음을 내가 알 수는 없지만 오히려 내가 불편하게 식사한 것에 대해 미안해하는 것 같았다.
호텔로 돌아왔더니 천국이 따로 없었다. 마지막이라는 데에 의미 부여를 해서 호텔 예약을 했고, 양고기를 먹었다. 양고기는 실패였지만, 호텔은 성공이었다. 돌아와서 씻고 편히 쉬면서 잘 시간쯤 되었을 때 배가 고프기 시작했다. 적게 먹었으니 당연했다. 이미 씻어서 나갈 생각은 없었고, 전날 치킨 덮밥이랑 같이 먹으려고 편의점에서 샀다가 배불러서 안 먹은 컵라면 하나가 생각났다. 먹으려고 물까지 다 끓였는데 젓가락이 없었다. 치킨 덮밥을 먹을 때 써 버린 탓이었다. 방에 포크라도 혹시 없나 싶어서 두리번대던 중 커피에 설탕을 넣고 젓는 플라스틱 스터스틱 2개를 발견했다. 인간은 도구를 사용하는 동물이 아니던가. 라면을 집는 데에 전혀 문제가 없었고 맛있었다. 그리하여 공식적으로 이번 홋카이도 여행의 마지막 저녁 식사는 징기스칸이 아닌 호텔 방에서 스터스틱 두 개로 먹은 컵라면이 되었다. 결국엔 좋은 기억으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