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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풍선껌 Jun 22. 2023

13. 호의에 용기 내어 감사 인사를 하다.


 체크인 시간까지 시간이 남고 배가 고프기도 해서 미리 봐 두었던 스스키노의 라멘집을 가려고 했다. 하코다테에서는 시오(소금)라멘이, 삿포로에서는 미소(된장)라멘이 유명하다고 했다. 전부 내가 막상 그 도시에 가서야 부랴부랴 찾으면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어찌 되었든 유명하다고 하니 먹기로 했다.      


 내가 찾아간 2층의 라멘집은 굳게 문이 닫혀 있었다. 다시 검색을 해 보니 오후 5시 30분부터 운영을 하는 곳이었다. 하코다테에서 머물렀던 호텔 근처의 라멘집은 밤 9시부터 시작해서 새벽에 닫는 곳이었는데(그래서 못 갔다), 그런 식으로 운영이 된다는 것은 그 시간에 라멘을 먹으러 오는 사람이 있다는 뜻이었고 어떤 면에서는 신기하기도 했다. 특정 시간에만 영업을 한다는 건 어쩌면 맛에 그만큼 자신 있다는 의미인 것 같기도 해서 그 맛이 궁금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급한 대로 검색을 다시 해서 스스키노의 라멘골목을 찾았다. 작은 골목에 주방을 둘러싸고 바처럼 ㄴ자로 대략 7명 정도의 사람들이 나란히 앉을 수 있는 작은 라멘 가게들이 모여있는 곳이었다. 입구에 있는 라멘 가게가 평점이 좋아서 가고 싶었는데 문 앞에서부터 사람들이 기다리는 걸 보고 더 안쪽에 덜 붐비는 라멘집으로 들어갔다.      


 주방장 겸 종업원인 주인 한 명이 운영하는 작은 라멘집이었다. 친절한 웃음으로 나를 맞이한 주인은 내가 몹시 어색해하는 걸 느꼈는지 입구의 끝 구석 자리로 안내했다. 내가 앉은자리 기준 오른쪽 모서리를 돌아서는 중년의 일본인 커플이 나란히 앉아있었고, 얼마지 않아 나처럼 삿포로 여행을 온 젊은 일본 남자 셋이 짐을 좁은 가게 어딘가에 두고 그 커플 오른쪽으로 가장 안쪽 끝에 앉았다. 우리가 거의 비슷한 시점에 주문을 해서 주인은 라멘 4개를 동시에 만들었는데 그 모습을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중년의 남자는 말이 몹시 많았는데 주인은 차분히 4개의 라멘을 만들면서도 그가 하는 말을 경청하며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다. 멀티 태스킹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나는 여러 개의 라멘을 만듦과 동시에 상대방과 눈을 마주치며 대화하는 그의 집중력에 감탄했다.   

 라멘에 얹어 나오는 계란은 어딘가에 매여있는 실로 반을 잘랐는데 칼로 자르지 않아 신기했다. 그렇게 내어 나온 라멘은 생각했던 미소라멘 맛이었다. 시오라멘은 새로운 맛이고 분위기가 너무 좋아서 아주 맛있게 느껴졌는데, 미소라멘은 익숙한 맛이라서 감탄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주인의 정성이 느껴지는 소박한 맛이었다. 내가 먹는 속도가 느려서 한 그릇을 다 먹는 동안 중년의 커플과 세 명의 젊은 남자들은 자리를 떴고, 새로이 두 명의 젊은 일본 여자들이 들어와서 라멘을 주문했다. 친절했던 주인에게 잘 먹었다는 인사를 하고 계산을 한 뒤 대망의 체크인을 하기 위해 호텔로 돌아왔다. 정확히 2시였다.      


 “안녕하세요. 아까 오전에 짐을 맡겼었는데, 짐을 찾고 체크인을 하고 싶습니다.”

 짐을 맡길 때 카운터에 있었던 젊은 여직원이 카운터 뒤편의 방에서 내 빨간색 캐리어를 끌고 나왔다. 내 여권을 받고는 체크인 처리를 하고 카드키와 함께 여권을 돌려주었다. 

 “방은 506호입니다. 지금 커피 가능합니다.”

 하코다테의 호텔과 같은 방 번호였다. 그녀는 내가 오전에 커피를 마실 수 있냐고 물어봤던 질문을 기억하고 있었다. 고맙다고 말한 뒤 커피 한 잔을 테이크아웃 컵에 담아 캐리어와 같이 방으로 가져갔다.      


 5층 복도 가장 끝에 있는 방에 다다라서 카드키를 찍고 문을 여니, 이럴 수가... 침대가 두 개였다. 더블 침대, 퀸 침대 사이즈쯤 되는 침대 두 개가 있는 방이라니... 싱글 침대 여럿이 있던 호스텔에서 갑자기 신분 상승을 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내가 예약한 방은 더블 침대 하나가 있는 5평도 되지 않는 작은 방이었는데, 뜻하지 않게 삿포로의 마지막 날을 넓은 호텔 방에서 지낼 수 있어서 너무나도 감사했다. 화장실도 세면대와 욕조가 분리되어 내 기준에 꽤 넓은 편이었다.      

 호텔에서 한 시간 이상 충분히 쉰 다음에 오전에 갔던 나카지마 공원이 너무 좋아서 다시 가기로 했다. 다음 날 오전 8시 이전에 공항에 가기 위해 이른 체크아웃을 해야 했고, 내 체크인을 도와준 여직원은 당일 오전 10시부터 있었기 때문에 곧 퇴근할 것 같았다. 좋은 방을 주어서 고맙다는 인사를 꼭 하고 싶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니 그녀의 오른쪽으로 각각 1m쯤 떨어져 서 있는 중년의 다른 직원 둘이 있었다. 혹시 그 여직원이 호텔의 규정이 있는데 자의적으로 내게 좋은 방을 주었을 수도 있어서 카운터에 가까이 가서 옆의 직원이 들을 수 없을 정도의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 좋은 방을 주셔서 정말로 감사해요.”

 그녀는 밝은 미소로 화답했다. 내가 공원에서 돌아왔을 때 그 직원은 없었고, 다음날 체크아웃 할 때도 없었기 때문에 늦지 않게 감사 인사를 전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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