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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풍선껌 Jun 19. 2023

12. 기대하지 않았던 두 번째 벚꽃

 “지금 짐을 맡기고 이따가 돌아와도 될까요?”

 호스텔에서 아침을 간단히 먹은 후 곧바로 체크아웃하고 호텔로 향했다. 호텔은 번화가인 스스키노와 나카지마 공원 사이에 있었다. 대부분의 호텔들이 3시에 체크인을 하는 반면 이 호텔은 2시에 체크인이 가능했다. 얼른 호텔에서 혼자 쉬고 싶은 나로서는 한 시간이나 이른 체크인이 몹시 반가웠다. 

 “네. 2시 체크인입니다.” 

 짧은 영어를 구사하는 여직원은 가방에 태그를 붙여서는 내게 확인증을 주었다. 둘러보던 중 식당 내의 커피를 웰컴 드링크로 마실 수 있다는 안내를 읽고 직원에게 물었다.

 “지금 혹시 커피 마셔도 되나요?” 

 “2시 이후, 체크인 시간에 가능합니다”

 그녀의 말을 듣고 다시 안내를 읽으니 커피머신 이용 시간이 오후 두 시부터 자정까지라고 적혀있었다. 

 “아,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삿포로에서 하루 종일 있는 유일한 날이어서 삿포로 시내를 순환하는 전차를 자유롭게 탈 수 있는 500엔짜리 하루권 패스를 끊었다. 전차에서 내릴 때 운전사에게 말하면 발급해 준다. 한 바퀴를 도는 데에 한 시간도 걸리지 않을 정도로 짧은 노선이지만 이미 5일 동안 너무 많은 거리를 걸은 내게 전차 패스는 조금의 피곤함을 덜어주는 역할을 했다. 짐을 놓고 바로 향한 곳은 호텔에서 멀지 않은 나카지마 공원이었다. 나는 이미 하코다테에서 실컷 벚꽃을 보았기 때문에 삿포로에서 벚꽃을 볼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하지 않았다. 비가 오기도 했고, 이미 5월이 되었기 때문에 당연히 다 졌다고 생각했다.   

  

 호텔에서 전차로 두 정거장을 가서 나카지마 공원 입구에서 내렸다. 전차 정거장에서 길을 건너 골목으로 아주 조금만 들어가니 공원 입구가 나왔다.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탄성이 나왔다.

 “와...”

 입구에 들어서니 사방으로 벚꽃 잎이 흩날렸다. 5월인데 벚꽃이 만개했다. 전혀 예상하지 않았던 광경이었다. 불과 12시간 전에는 맞지 않는 도미토리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는데 애초에 스트레스라는 단어가 뭔지도 잊을 정도로 멋진 풍경이었다. 무엇보다도 붐비지 않아 좋았다. 나 같은 관광객들도 있었고, 현지인들이 들러 산책을 하기도 했다. 어떤 일본 할머니는 내가 일본인인 줄 알았는지 벚나무를 보며 뭐라 뭐라 했는데 그나마 ‘키레이(예쁘다)’를 알아들어 그저 전부 알아들은 척 고개를 끄덕거렸다.      


 한 시간이 넘게 공원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 일본식 정원 같은 숨은 공간도 있었고, 큰 호수 위에서 탈 수 있는 나룻배도 있었다. 언덕 위 만개한 벚나무 아래 돗자리를 깔고 앉아 포즈를 달리하며 마음껏 사진을 찍는 사람들, 호수를 바라보며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노인들, 천천히 걸음걸이를 맞춰 걸으며 벚나무를 올려다보던 커플들, 벚나무 아래서 마스크도 내리지 않고 셀카를 찍던 여중생들, 벚꽃 잎이 유독 흐드러지게 떨어지던 길 가운데서 이런저런 사진을 찍던 관광객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을 관찰하는 나. 각자 5월의 벚꽃이 가득한 공원을 즐기는 방법은 가지각색이었다. 

    

인상적이었던 나카지마 공원과 5월의 벚꽃

 한편 뜬금없이 공원의 다른 편에서 시위대가 공원을 걸으며 시위를 하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최저임금인상을 요구하는 팻말을 들고 있었는데, 내 기억이 왜곡된 것이 아니라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서로 마주 보고 대화하며 웃고 있었다. 큰 소리를 내며 구호를 외치지도 않았고 그냥 팻말을 들고 공원을 돈다는 느낌이었는데, 다들 이상하게 즐기고 있는 것 같았다. 아마 그날의 내가 봄날의 벚꽃에 너무 취해 그들마저 나와 함께 공원의 벚꽃놀이를 즐기고 있다며 마음대로 착각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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