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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풍선껌 Jul 24. 2023

1) 마음의 불꽃이 필요해서

 모두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지구과학 선생님은 ‘이제 다 끝났냐’라는 냉소를 지어 보였다. 나는 서둘러 창밖에 머물렀던 시선을 거두어 책상 귀퉁이로 옮겼다. 하던 수업을 멈추고 아무 말하지 않은 채 한 학생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건 그 선생님의 지적 방식이었다. 그날도 그렇게 지적받지 않았다면 기억에도 남지 않을 무수히 많은 날 중 하나였다. 견딜 수 없는 지루함을 피해 시선만이라도 창밖으로 내보내는 어느 날 중 하나.      


 중·고등학교의 지루한 수업이 끝나면 재밌는 일들이 더 많아질 것 같았다. 대학교의 수업은 안 들으면 그만이고, 해외여행도 실컷 하고,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 수 있다고 믿었다. 원하던 대로 대학교의 수업은 자주 빠졌고, 해외여행도 많이 했다. 불성실한 출석과 학업 태도가 좋은 성적을 가져다줄 리가 만무하니 그걸 뒤늦게 만회하기 위해 갖은 애를 썼고, 즐거운 해외여행을 다녀온 후에는 현실과의 괴리감에 깊은 허무함을 느끼곤 했다. 중·고등학교 때에는 창밖으로의 도피가 잠깐의 민망함으로 끝났지만, 대학교 이후의 현실 도피는 늘 뼈저린 대가를 치러야 했다. 한 번 놓친 기회는 좀처럼 다시 돌아오지 않아 애쓰고 또 애를 써서 어렵게 두 번째 기회를 만들어 내고, 그것마저 놓치면 완전히 끝나는 들을 경험하며 바람 빠진 풍선처럼 쪼그라들었다. 그래도 한때는 크게 부풀었었다는 훈장처럼 쭈글쭈글한 주름과 함께.      


 지난 4월 말~5월 초 홋카이도 여행 이후 나는 틈틈이 다시 해외여행을 찾아보았다. 어렸을 때의 해외여행은 새로운 세계를 탐험하기 위함이었다면, 지금의 해외여행은 현실 도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리고 현실로 돌아오면 공허함이 공항에서부터 나를 맞이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 알면서도 떠나는 이유는 무력함에 현실을 둥둥 떠다니는 것보다는 현실 도피라는 ‘선택’을 하려는 나의 최후의 발악이다. 꺼지기 직전의 불꽃을 살려내기 위해 얼마 남지 않은 마지막 남은 장작을 다 털어 넣는 그런 선택.      


 나의 예상 선택지는 태국과 일본 시즈오카였다. 태국을 염두에 뒀던 이유는 오래전에 가지 못한 푸켓에 가보고 싶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시즈오카를 가려고 생각한 이유는 시즈오카 미니패스와 산속의 무인역 오쿠오이코죠의 사진 때문이었다. 시즈오카 미니패스는 3일 동안 정해진 루트의 버스, 기차, 페리를 무제한으로 탈 수 있는 패스로 내가 매우 만족했었던 홋카이도 기차패스 가격의 1/4밖에 하지 않았다. 또한 기차를 타고 강을 보며 산 중턱 어딘가의 역에 내릴 수 있는 오쿠오이코죠에 호기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달 넘게 무력하다고 느낄 때마다 홀린 듯 비행기표, 태국, 시즈오카 근교의 가볼 만한 곳을 검색하곤 했다. 그러던 중 시즈오카 미니패스로 갈 수 있는 아타미라는 곳에서 7월 말에 유명한 불꽃 축제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극성수기인 7월 말에 어디엔가 놀러 갈 생각은 없고, 나는 당장 떠나고 싶었다. 그리고,     


7월 1일 후지산 아래 가와구치호수에서 불꽃놀이행사가 있다는 정보를 찾게 되었다. 마음이 임계점을 넘으면 결정에 머뭇거림이 없어진다. 시즈오카행 비행기를 끊으며 내 마음도 미리 보내두었다. 고등학교 1학년 어느 날 교실 창가에 앉은 내가 그러했듯이.


사진

https://unsplash.com/ko/%EC%82%AC%EC%A7%84/menschenmenge-die-herzlaternen-in-den-himmel-fliegen-ya8RPzS-L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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