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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풍선껌 Aug 10. 2023

5) 날씨는 지나가고 계절은 돌아온다.

 베개와 이불에 난 담배 자국을 보며 엄마와 나는 피곤하고 화난 표정을 풀고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그곳은 입구부터 얼마나 오랫동안 절어있었는지 모를 담배 냄새가 진동했다. 이게 다 극한의 효율주의자 엄마 때문이었다. 다음 날 새벽부터 일어나 한라산에 등반하기 위해 엄마는 한라산 근처에서 숙소를 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스마트폰이 널리 쓰이지는 않던 시절, 우리 둘 모두 스마트폰이 아니었으므로 검색을 하거나 예약하지 않고 무작정 한라산으로 차를 타고 이동했다. 물론 시간도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하므로 저녁까지 제주도 남쪽 중문에서 시간을 보낸 뒤 이미 어두워진 시간에 출발했다. 길은 생각보다 많이 어두웠고, 왕복 2차선 도로라서 성질 급한 차들이 바짝 쫓아오며 압박했다. 정작 한라산 입구 주차장에 다다르자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었고 그대로 패스하여 결국 제주시까지 넘어왔다. 그때가 이미 밤 9시에서 10시 사이였는데 아직도 우리가 어쩌다 그 여관에 들어갔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가까워서였는지, 저렴해서였는지. 다만 그 공간의 절어있는 짙은 담배 냄새의 기억만큼은 지금까지도 생생하다.      




 내가 둘째 날 체크인 한 시즈오카 시내의 작고, 낡은 호텔의 직원들은 모두 몹시 친절했다. 열쇠로 된 키를 받아 엘리베이터를 타자마자 짙은 담배 냄새가 났고, 단번에 제주도에서의 그 여관을 떠올렸다. 내가 예약한 방은 금연방이었는데 흡연방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층을 지날 때마다 담배 냄새가 더 강해졌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내가 점심에 카운터에서 맡겨둔 캐리어가 방에 배달되어 있었다. 전날 있었던 신식 호텔 싱글룸의 침대는 최소 더블사이즈였는데, 이곳의 침대는 딱 싱글침대 사이즈였다. 매트리스의 두께는 한 뼘도 채 되지 않았고 벽과 매트리스 사이에서는 누가 쓰던 이어플러그 한쪽이 나왔다. 불을 켜도 조명이 밝지 않아 방이 어두웠다. 커튼을 젖히니 가까이 붙어있는 옆 건물의 벽이 비에 젖어있었다. 화장실 벽의 모서리에는 검게 곰팡이가 슬어있었고 욕조는 작아서 다리를 쭉 뻗고 앉을 수도 없을 것 같았다. 급격히 우울해졌다.     


 누굴 탓하겠는가. 호텔은 정직했다. 호텔 예약 사이트에 방의 크기가 12제곱미터라고 쓰여있고 방과 화장실 사진 모두 있었다. 그럼 누구 탓인가. 밖에 내리는 비를 탓하고 싶었다. 호텔 체크인 전 갔었던 순푸공원에서 앉아있을 때 개미들이 땅으로 올라와 크록스를 신은 내 양쪽 발등과 발목 전체를 열심히 물어뜯었고 그건 비 때문이었다.      


 낡고 작고 어두운 호텔 방에 앉아서 날씨와 계절과 인생을 생각했다. 날씨는 예보가 있더라도 틀리기도 하며 좀처럼 패턴이 없다. 단 하나의 법칙이 있다면 날씨는 지나간다. 계절도 날씨와 같이 변하지만 따뜻해졌다가, 더워졌다가, 서늘해졌다가, 추워졌다가 다시 따뜻해지기를 반복하는 패턴이 있다. 계절은 돌아온다.  

    

 ‘이 날씨는 지나가고, 따뜻한 계절이 올 거야’라는 결론을 내리고 딱딱한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다. 절은 담배 냄새로 쉽사리 잠들지 못한 여관에서의 그날 밤이 오버랩되며 어느 순간 잠들었다.


<그다음 날 우리는 새벽에 일어나 한라산 정상까지 올랐다.>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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