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풍선껌 Aug 11. 2023

6) 무진기행, 아니 후지산 기행

 열차가 고템바역에 가까워질수록 안개가 짙어졌다. 시즈오카 미니패스를 사용해 후지산의 길목인 가와구치호수(河口湖)에 가는 사람들은 주로 시즈오카와 가까운 후지노미야(富士宮) 역에서 버스로 갈아탔다. 후지노미야역에서 가와구치호수로 가는 버스는 하루에 단 3대였고, 일본 여행 카페에 누군가가 ‘후지노미야에서 타는 버스가 앉을자리 없이 붐빈다’라고 쓴 글이 있었다. 토요일인 데다가 불꽃놀이가 예정되어 있던 그날 그 버스에 탄다면 앉아서 가는 것은커녕 내 짐 하나 놓을 자리도 없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조금 돌아가더라도 한 시간에 한 대씩 버스가 있는 고템바역으로 향했다.      


 고템바역 주변은 안개로 자욱해서 몽환적인 느낌을 주었다. 문득 나는 소설 ‘무진기행’을 떠올렸다. 주인공이 서울에서 안개 낀 고향 무진(霧津)으로 도피하는 내용. 무진에서 일탈을 꿈꾸지만 결국엔 현실로 돌아오는 운명인 주인공이나 나나 별반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게 있다면 소설 속 주인공은 현실에서 껍데기라도 있지만 나는 껍데기조차 없다는 점이 있겠다.      


 역 앞 우동집에서 간단하게 점심을 해결한 후 가와구치호수로 가는 버스에 탔다. 비가 예보되어 있었지만 안개가 꼈을 뿐 비가 내리지는 않아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가와구치코역에 도착하자 전 세계에서 온 관광객들이 배낭을 메거나 캐리어를 끌고 역 주변에 가득했다. ‘혹시 비가 와서 불꽃놀이가 취소되면 어떻게 하지’라는 걱정을 거의 매일 했는데 사람들을 보니 그럴 일은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 안도했다.


 역에서 1km 정도, 호수까지는 500m 떨어진 호텔은 두 개의 동이 있을 정도로 규모가 상당했다. 지어진 지 5년도 되지 않은 신식 건물이었고 체크인을 할 때에도 셀프로 여권을 스캔하는 방식이었다. 바로 전날 있었던 호텔과 여러모로 많이 비교가 되었다. 나는 불꽃놀이 3주 전쯤 예약을 했는데 그때 이미 싱글룸을 제외한 모든 방이 이미 매진이었고, 얼마 되지 않아 싱글룸도 매진이 되었다. 규모가 그렇게 큰 호텔의 방이 모두 매진될 정도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날 가와구치호수 근처에 머무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내가 배정받은 방문을 열자 집 소개를 하는 영상 등에서 자주 나오는 ‘따라다라 딴’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벽지와 가구 모두 새것 같은 느낌의 방에 들어가 커튼을 젖히니 탁 트인 뷰가 보였다.     

 

 “우와”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선명하게 후지산이 보였다. 후지산 뷰라니.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선물과도 같았다. 방의 크기는 분명 전날 있었던 호텔방과 똑같은데(12제곱미터) 침대 크기 차이 때문인지, 호텔 건물 자체가 워낙 크기 때문인지 방이 더 크게 느껴졌다.      


호텔 창문을 통해 보이는 후지산 / 해질녘의 가와구치호수와 후지산


 창밖으로 비는 부슬부슬 내리다 말았다 했다. ‘불꽃놀이를 하는 게 맞나?’라는 의심이 들 때 즈음에는 간헐적으로 연습용 폭죽이 터졌다. 설렘과 걱정이 뒤섞여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이전 05화 5) 날씨는 지나가고 계절은 돌아온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