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을 쓴 남자 렌터카 직원은 몹시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금방 돌아오겠다고 했다. 오전 11시가 조금 넘은 시간, 시즈오카 공항은 작고 조용해서 같은 비행기를 타고 나온 사람들이 각자의 길로 나선 이후로는 더욱 고요해졌다. 하루에 몇 편 있는 비행기가 있을 때만 잠시 분주해지는 곳에 굳이 직원 두 명 이상이 필요하지 않은 탓인지 그 한 명의 직원은 내 직전에 온 손님에게 주차장으로 막 차를 인도해 주러 가던 참이었다.
“괜찮습니다”
10분쯤 후 그 직원은 땀을 흘리며 달려왔다. 나는 정말로 괜찮았는데 차를 인도해 주는 그 10분여 동안 이 직원의 마음이 얼마나 조급했을지를 생각하니 괜히 미안해졌다.
내가 운전을 하기로 한 건 날씨와 시간 때문이었다. 시즈오카패스를 사용하는 7월 1일부터 3일을 제외하고 내가 머무는 기간 중 예보 상 날씨가 맑은 날은 시즈오카에 가는 6월 29일이 유일했다. 산속의 무인역 오쿠오이코죠까지 가는 오이가와 열차를 타고 싶었지만 아무리 해도 당일 도착 이후 기차 일정을 맞출 수가 없었다. 그러던 중 생각해 낸 묘안이 운전이었다.
예전에 호주 운전을 한 경험 덕분에 좌측통행과 깜빡이, 와이퍼 스틱의 위치가 반대라는 점은 그런대로 적응이 되었다. 난감한 건 교통 규칙과 도로 사정이었다. 공항을 나와 처음으로 마주한 좌회전(한국에서는 우회전) 시 횡단보도 보행자 신호에 일단은 정지했다. 내 뒤로 소형 트럭이 한 대 있었는데 일본에서는 보행자가 없을 때 차가 지나갈 수 있는지 알 수가 없어서 그 신호가 끝나기까지의 10여 초가 억겁처럼 길게 느껴졌다. 뒤에서 트럭 운전사가 나에게 마치 ‘얼른 가지?’라고 하고 있을 것 같았다. 이후 몇 차례 관찰 결과 횡단보도 보행자가 없을 경우 좌회전이든 우회전이든 차가 천천히 지나가기에 나도 그렇게 했다.
그 외에 한적한 시골이라 그런지 우회전(한국에서는 좌회전) 신호가 따로 없는 곳이 대부분이었는데 비보호 사인도 없이 직진 신호에 우회전을 했다. 구글 맵으로는 우회전을 하라고 나오는데 신호가 없어서 처음에는 몹시 당황했다. 또한 미리 알고 가도 당황스러운 건 흰색의 점선 중앙선이었는데 추월이 가능한 중앙선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모르는 사람은 일방통행 도로라고 착각하여 차선변경을 시도할 수 있어서 위험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당황스러운 일의 연속이었지만 의외로 차는 안전히 주행을 했다. 차가 차선을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작은 삐-소리의 경고음이 울려서 차선을 벗어나지 않았고, 무엇보다 도로의 모든 차들이 철저하게 정속 운전을 했기 때문에 내가 조급한 마음이 들지 않았다. 왕복 2차선의 도로에서 앞의 차가 늦게 가게 되면 추월하는 차 하나 없이 다들 그에 맞춰서 갔다. 앞차가 늦더라도 바짝 붙어서 빨리 가도록 보채는 경우도 없었다.
산을 굽이굽이 돌아 차가 지나가면 오른쪽, 왼쪽으로 에메랄드빛의 강물이 보였다. 비록 기차에 앉아서 풍경을 바라보며 유유히 생각에 빠져들지는 못했지만, 최고온도 35도였던 그날에 에어컨을 가장 세게 틀어놓고 목적지로 향하는 그 작은 차가 나의 세상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