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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윤희 Jan 13. 2022

2020년 11월 14일

아침에 일어나 잠을 깨려고 좌식 소파에 잠깐 누웠다. 

세상에 어정쩡한 물건이 참 많은데 좌식 소파도 그중에 하나다. 비단이는 침대나 소파 뭐 이불 쌓아둔곳 선반 등 높은 곳에 올라가려는 성질이 많았는데 어떤 때는 의자를 타고 책상 위로 올라오기도 했다. 그러다 관절이 안 좋은 걸 알게 되고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집안에 높은 물건은 없어졌다. 그렇게 들여놓은 물건이 좌식 소파다. 어쨌든 우리도 쉬어야 하고 비단이는 우리가 쉬는 곳을 좋아하니까 높이가 낮은 이 물건이라면 비단이도 우리도 나름 만족하는 결과였다. 몇 년을 이 어정쩡한 소파에서 누비고 지내다가 막판에는 이 물건도 비단이에게 버거워져서 치워두게 되었었다. 비단이가 떠나고 좌식 소파는 다시 자리를 찾게 됐지만 이젠 없어도 그만이라는 생각이 들어 언제 버려도 이상하지 않은 처지가 됐다. 


아무튼 이 소파에 누워있는데 쿠션 위쪽으로 놓아둔 인형이 내 얼굴로 쓰러졌다. 귀찮아서 그냥 얼굴에 인형을 얹은 채로 누워있었고 시간이 좀 지나니까 인형과 맞닿은 부분에 따뜻함이 생겨났다. 그 느낌은 내가 비단이와 닿았을 때의  느낌과 매우 비슷했다. 후끈하면서 여리고 부드러운 열기. 폴리에스터 인형털이 그런느낌이 있는 줄 몰랐다. 내가 이런 종류의 인형을 좋아하지 않아서 몰랐던 건지.


비단이의 그 따뜻했던 느낌은 여러 가지의 다른 기억들을 끊임없이 몰고 왔다. 한참 기억들을 바라보고 있다가 노트를 떠올렸다.

작년 이맘때의 비단이 일상이 고스란히 적혀있는 노트였다. 비단이 떠나기 한 달 좀 넘는 기간 동안 비단이가 몇 시에 뭘 얼마큼 먹고 언제 자고 언제 똥과 오줌을 쌌는지를 모두 기록해놓았다. 작년엔 가을이 가는 걸 보지 못했다. 정신 차리니 그냥 겨울이었다. 없어진 가을의 시간은 비단이의 병상일지가 대신하고 있다. 그 노트는 생각만 해도 가슴이 아프다. 비단이의 아픔이 거기 고스란히 적혀있기 때문이다. 아직 열어볼 용기가 나지 않아서 정리해둔 자리에 그대로 있다. 언젠가 노트를 들여다볼 수 있는 날이 오겠지.


2020.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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