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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윤희 Jan 16. 2022

2020년 12월 9일


얼마 전 정리했던 주방은 잘 유지되고 있다. 주방에 이어 창고처럼 쓰고 있는 선반과 신발장을 정리했다. 신발장 정리하면서 비단이 신기려고 샀던 라텍스 신발 한 묶음도 나왔다. 한번 신겨보고 너무 크길래 작은 사이즈로 다시 샀었다. 새것이라 버리기 아까워 당근 앱에 1000원으로 내놨다. 그리고 비단이 미용기와 몇 번 사용하지 않은 목욕 수건 세트도 역시 1000원에 내놨다. 무료 나눔은 이상한 사람들이 걸릴지 모른다며 남편이 꼭 1000원이라도 값을 쳐서 올리라고 하도 야단을 떨어서 모두 천 원에 올려봤다. 올리자마자 여러 사람의 구매자들이 채팅을 보내왔다.


다음날 한 분 한 분 시간 맞춰 물건을 건네주고 주머니엔 3000원이 생겼다. 라텍스 신발은 시츄를 키우신다는 분이 가져가셨고 미용기는 얼마 전 입양한 아이의 발 털을 밀어주려는 분이 사 가셨다. 미용기를 전해 드리고 집으로 오는데 왠지 울적함이 느껴졌다. 조금 울기도 했다. 비단이 생각이 많이 났다. 이렇게 그나마 남아있던 물건들을 정리하니까 다시 기분이 가라앉는 느낌이 들었다. 정리에 열을 올리며 며칠간 이어졌던 텐션이 잦아들었다.  


어제는 전에 예약해놨던 정신과 상담을 다녀왔다. 처음이라 그런지 질문지를 주고 작성하라고 했다. 정말 귀찮지만 열심히 적었다. 질문란에 상담이 필요한 원인을 유추할 수 있는 일들을 적는 칸이 있었는데 호르몬 변화와 비단이와 이별 그리고 코로나 등을 적었다. 상담은 처음이라 긴장됐다. 나는 지금은 괜찮은 상태여서 진료 예약을 취소할까 고민했다고 하자 의사는 웃음 지었고 내가 작성한 질문지를 보고 나에게 질문을 했다. 나는 최근 느꼈던 컨트롤 안 되는 감정 기복과 호르몬 주기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런저런 질문과 대답이 오고 갔다.


분명 그럴 거라 예상했지만 비단이 얘기가 나오자 목이 메고 눈물이 흘러나왔다. 생각해 보면 누군가와 이렇게 나의 상태에 대해 이야기를 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다들 자기만의 영역이 있는데 내가 위로 받자고 나의 감정 보따리를 내 맘대로 펼치기엔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마 소통할 수 있는 게 남편이기도 했지만 어차피 자기 몫의 슬픔이란 게 있으니까 내가 극복해야만 하는 부분이 있다. 잠깐의 상담으로 뭐라고 말할 순 없지만 의사는 애도의 증상 일 수도 있다고 이야기했다. 의식적으로 생각하지 않아도 비단이가 떠났던 때가 가까워져서 나의 몸이 반응하는 그런 상태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정신적으로 어떤 문제가 있는 상태는 아닌 것 같다고 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1주일치 약을 지어줬다. 지난번처럼 감당하기 힘든 상태가 된다면 복용해 보라고 했다. 약을 먹었다고 갑자기 기분이 안정되거나 하는 건 아니라는 것과 만약 약을 먹고 졸리면 저녁에 먹어도 좋다고 했다. 그래도 최선은 일단 맛있는 음식을 잘 먹을 것과 산책 또는 운동을 꾸준히 하는 게 좋다고 했다.


약 먹을 일이 없기를 바라면서 받아온 약은 서랍에 잘 넣어뒀다. 그리고 오늘은 걷기를 추가한 생활계획표를 다시 짰다.


202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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