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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윤희 Jan 20. 2022

2020년 12월 26일


그전에 불안했던 것과 달리 막상 비단이 기일 이후로는 안절부절못함은 없어졌다.

요 며칠은 드디어 내 책상이 있는 큰 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그림을 그리다 보니 짐이 너무 많다. 분명 다른 사람들에 비해 재료 욕심이 별로 없는데도 그렇다. 그렇게 크리스마스이브와 크리스마스를 하루 종일 정리를 하며 보냈다. 성탄절은 내 생일이기도 하다. 전날 저녁에 남편이 사다 준 케이크를 먼지 구덩이 방에서 아침으로 먹었다. 컴퓨터와 책 몇 권뿐인 남편의 책상과는 달리 내 책상에서 나온 짐들은 온 방을 차지한다. 좁은 집을 대부분 내 짐들로 채우고 사는 게 면목 없어서 묵묵히 하루 종일 정리만 했다.


어제 큰 정리를 끝내고 이제 작은 정리들을 어떻게 할지 생각하며 잠이 들었다. 새벽에 웬일로 꿈을 꿨는데 꿈속에서도 무슨 정리를 하는 꿈이었다. 근데 거기엔 뚝심이가 있었다. 친정에서 키우던 강아지였는데 엄마가 가장 사랑했던 개였다. 꿈에서 뚝심이는 목욕을 하고 난 상태였다. 뽀얗고 보송한 모습을 보고 저 털을 쓰다듬었을 때를 생각했다. 그리고 뚝심이를 안고 쓰다듬었는데 생각했을 때의 느낌 그대로 부들부들했다. 쓰다듬으며 등허리 쪽을 보니까 그쪽은 털이 빠져서 까맣게 된 피부가 보였다. 나이 들어서 그렇게 됐다며 슬퍼했다.

아침에 일어나 창밖을 보며 새벽에 꾸었던 꿈을 떠올려봤다. 원래 등허리에 털이 빠졌던 건 시월이었다. 그리고 부들부들한 털의 느낌은 뚝심이 보다는 비단이 털의 느낌과 가까웠다. 꿈속에선 뚝심이로 등장했지만 실제로는 여러 마리의 강아지가 섞인 걸지도 모르겠다.


집안을 정리하며 비단이 유골함도 화장대 옆으로 임시 자리를 잡았다. 아침저녁 세수하고 거울 보면서 비단이도 함께 있으니까 기분이 좋았다. 이상한 말일지 모르지만 하얀 도자기로 변신한 비단이와 조금 가까워진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집 정리를 마친 후에도 화장대 옆으로 비단이 자리를 마련하기로 했다.


2020.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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