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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윤희 Jan 23. 2022

2021년 1월 10일

신경 쓰이게 했던 책장까지 오고 집 정리는 이제 끝났다. 어제는 정리가 다 끝난 방을 둘러보며 아무것도 안 해도 만족스러운 이 기분을 온종일 누렸다. 책장을 정리하면서 읽을 책을 몇 권 꺼내놨었는데 만족스럽지 않아서 다시 넣어놨다. 그리고 재작년 읽다 말은 책을 꺼냈다. 개에 관한 짧은 글들을 엮은 책이었다. 책은 율리시즈의 개에 관한 글로 시작한다. 마음이 안 좋아질까 슬픔이 나를 크게 뒤흔들까 겁이 나서 책을 다시 덮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자꾸 이런 감정을 피하려고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나와 비슷한 시기에 반려견을 떠나보낸 어떤 사람은 얼마 전 임시보호를 하더니 곧 그 강아지를 입양했다. 지금의 나한테는 불가능한 일이다. 마음이 단단해지지 않는다. 다시 또 그 과정들을 겪어야 한다는 게 무섭다. 나는 이렇게 약한 사람이구나. 언젠간 나도 그 사람처럼 단단해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번에 집 정리를 거의 끝내고 느낀 게 있는데 집 정리라는 행위는 그동안 내 안에 쌓여있던 어떤 욕구불만들이 터져 나온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비단이와 함께 살며 나는 점점 내가 원하는 물건들을 사용하지 못하게 되고 작은 집을 더욱 작게 쓰는 시간들을 보내왔다. 처음에 예뻤던 침대는 매트리스만 남았고 소파를 좋아하는 내게 소파 없는 삶이 이어지고 거기에 비단이가 오르내릴 계단들과 비단이가 좋아하는 장소에 쿠션이나 담요를 깔아주느라 내가 사용할 공간들은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작은 집으로 이사하고, 비단이가 나이가 들고 아프기 시작하면서는 급속도로 집의 공간들이 없어지기 시작했다. 당시엔 비단이 아픈 거에 신경 쓰느라 나의 욕구불만에 귀 기울여줄 여유가 없었다. 집 정리를 시작할 땐 단지 공간을 좀 만들어야 답답함이 풀릴 것 같았는데 결국 이건 그동안 쌓였던 나의 욕구불만이 터진 것에 불과했다.


좁은 책상에서 불편하게 그림을 그리면서도 견뎌왔던 건 비단이가 있어서였다. 비단이가 없는 지금도 계속 불편하게 생활을 할 이유가 없다는 걸 내 안의 어떤 내가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었다. 나는 내가 그런 인간이란 걸 인정하기 싫었나 보다. 그래서 다시 강아지와 함께 산다는 건 고민이 된다. 자신이 없다. 내 공간뿐 아니라 내 시간, 에너지 모두 아낌없이 나눌 수 있을 때 함께 살 수 있을 것 같다.

한동안은 공간과 시간, 에너지를 온전히 나에게 쓴다는 걸 느끼고 싶다. 바닥에 아무것도 굴러다니지 않는 시간을 느껴보고 싶다. 이런 마음이 든다는 게 왜인지 비단이에게 미안하기도 하다. 그렇다고 그 시간들이 싫은 건 아니었다. 오히려 그립다. 하지만 그건 지나온 시간들이고 지금 내 앞에 놓인 시간은 자유롭게 두고 싶다.


202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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