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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윤희 Jan 29. 2022

2021년 3월 1일

지금 집에는 비단이의 직접적이고 존재감이 매우 큰 흔적이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유골을 넣어둔 하얀 도자기이고 나머지는 비단이의 털을 간직하고 있는 유리함이다. 그러니까 비단의 뼛가루와 털들이 있다. 비단이의 털은 나와 굉장히 친밀감을 유지하고 있다. 가끔 냄새를 맡고 뭔가 습기를 머금은 쿰쿰함이 느껴지면 뚜껑을 열고 털을 헤쳐서 볕을 쬐어 주기도 한다. 그러면 곧 뽀송한 누린내가 난다.


비단이의 뼛가루는 화장한 날 이후로는 본 적이 없다. 하얀 도자기에 넣어둔 채로 매우 조심스럽고 조금은 편치 않은 마음으로 가만히 한 곳에 둘뿐이다. 먼지를 털어주며 한 번씩 도자기 뚜껑을 쓰다듬는 게 다다.

둘 다 비단이의 몸에서 나온 것들이지만 털 뭉치는 나를 위로해주고 뼛가루는 나를 숙연하게 한다.


비단이가 더 이상 원래의 비단이가 아니라 두 가지의 대표적인 사물로 변해버린 후 일종의 카테고리적으로 혼란스러움을 겪게 되었다. 비단이의 털을 넣어놓은 유리함이 햇빛에 반짝이는 모습을 사진으로 담은 후 이 사진들을 어느 폴더에 저장할지의 문제 같은 거다. 처음엔 생전 비단이의 모습들을 넣던 폴더에 넣어야지 했다가 아무래도 위화감을 떨치지 못하고 사물 사진을 모아놓는 폴더에 넣었다. 사물 폴더에 넣어 놓고도 비단이가 이제 사물이 된 것인가 뜨악함이 들어 비단이의 존재가 그렇듯이 경계를 그을 수 없는 상태에서 혼란을 느꼈었다. 물론 유골이 들은 하얀 도자기를 찍은 사진도 마찬가지다. 과거적인 속성으로 그 물건들을 비단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비단이는 더 이상 없으므로 그것들이 비단이를 대신할 수밖에 없는 사실에 털끝만큼의 위안을 삼고 있는 것 같다.


어제는 잠들기 전 비단이 영상들을 몇 개 보다가 눈물을 훔치며 힘들게 잠들었다. 오늘은 울기 싫어 폴더를 열어보지 않았지만 왜 울기 싫은지 생각하느라 잠이 쉽게 오지 않는다.


20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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