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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윤희 Oct 08. 2021

2019년 10월 20일

그런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가 누군가를 이해하려 할 때 어느 정도를 이해해야 이해하는 걸까. 내가 저 사람에게 이해받기 원하는 건 주먹만큼인데 저 사람은 머리통만큼 나를 이해하려 든다거나 엄지손톱만큼 만으로 이해했다 말한다면. 이해받았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고 ‘아무도 나를 몰라’나 ‘나를 이해하려 들지 않아’나 ‘나는 혼자야’라든가 뭐 이런 생각이 들지 않을까. 그러니까 나는 상대방이 나를 내가 원하는 만큼만 이해해 주길 바라고 상대방은 내가 이해받고 싶은 폭과는 상관없이 자기가 아는 딱 그만큼만 이해할 수 있다는 것. 결국 누군가가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건 있을 수가 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내가 왜 이런 생각을 했느냐면 비단이를 보다가 도통 아무것도 이해하기 힘들어서 어쩌면 좋을까 나만 이런 걸까 고민하다 든 생각이다. 뭔가 편하지가 않은데 도통 눈치를 챌 수가 없다. 한 자리에 3분 이상 있지 않고 계속 움직이는데 헥헥 데지도 않고 얼굴은 분명 편안해 보이는데 자리가 마음에 안 드는지 한 시간도 넘게 저러고 있다. 아 아침밥은 먹지 않았다. 그때 마침 기침이 오래 지속됐는데 그래서 그런지 아픈 중에도 잘 먹던 것들인데 아직 쳐다만 보고 먹을 기미가 안 보인다. 밥상에 있는 건 물론 알고 있다. 아직 눈도 보이고 귀도 들리고 냄새도 맡는다. 이렇게 계속 식욕이 없으면 안 되는데.


아침에 심장약은 츄르를 싸서 줘봤더니 수월하게 먹었다. 어제 마트에 들려서 혹시나 하고 사 와본 게 신의 한 수였다. 그렇지만 함께 구입한 펫 밀크들과 이온음료는 먹지 않는다.

다행히 이뇨제 때문인지 물은 마시고 있다. 물론 충분하지 않다. 그래서 펫 밀크니 뭐니 뭐라도 마셔야 해서 줘 봐도 고개만 획 돌린다. 그럴 땐 내 얼굴도 죽상이 되면서 다음엔 뭘 들이밀어봐야 하나 고민에 빠진다. 나의 하루를 저 조그만 털 뭉치가 조종하고 있다. 


2019.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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