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방윤희 Feb 10. 2022

2021년 6월 20일


새벽에 화장실에 다녀와 다시 자려고 누웠는데 잠이 오지 않았다. 어제 우연히 기러기 새끼가 절벽에서 떨어져 어미에게 가는 모습을 봤는데 좀 충격적이었다. 그 새끼 기러기가 떨어지는 장면과 며칠 전 이소 하다 죽은 물까치 새끼 세 마리가 함께 떠오르며 잠이 달아나고 있었다. 그리고는 거기에 비단이 마지막 모습까지 더해져 더 이상 잘 수 없게 만들었다.


요 며칠 마음이 무겁긴 했다. 밑에 집 에어컨 실외기 뒤로 물까치들이 둥지를 지은 걸 알게 됐는데 마침 발견한 날이 새끼들 이소 하는 날이었다. 아직 날지 못하는 새끼들이 실외기에서 마당으로 떨어진 후 다시 낮은 담장을 넘어 인도와 차도를 건너 산으로 가야 하는 쉽지 않은 여정이었다. 왜 날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이소를 하는 걸까. 고양이가 드나들기도 하는 마당에서 밤을 지내고 다음날 오전 한 마리가 혼자 힘으로 담장을 넘고 인도와 차도를 지나 산 쪽으로 가는 걸 보고 눈물이 났다. 목숨을 건다고 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 남은 4마리도 그렇게 될 줄 알았다. 하지만 하루를 더 마당에서 지내면서 새벽엔 비도 왔다. 아침에 나가보니 3마리나 죽어 있었다. 무리였다. 지지대도 없이 내 허리 높이의 담장을 넘는 건 불가능한 거였다. 첫째 새끼가 대단한 거였다. 안 되겠다 싶어 남아 있는 한 마리를 비 오는 마당에 더 이상 둘 수 없어서 첫째가 갔던 곳으로 데려다줬다. 똑똑한 어미 물까치는 새끼를 잘 찾았다. 잘 살았으면 좋겠다. 하지만 왠지 그러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오후에 산둘레를 산책하는 고양이를 맹렬히 쫓아내는 물까치들을 봤기 때문이다.


무거운 마음이 머릿속에서 잘 정리가 되지 않는다. 사실 물까치 이소가 끝난 후 작업에 집중하느라 내 마음에 대해 잘 못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어제 기러기 새끼가 떨어지는 장면은 어떤 장막이라도 걷어낸 것처럼 내 마음속 불편함을 떠오르게 했다. 그리고 이렇게 내가 무방비한 시간, 새벽잠을 쫓아버렸다. 할 수 없이 일어나 책상에 앉아 책을 폈다. 무거운 마음을 외면하고 책을 조금 읽으니 다시 피곤함이 몰려왔다. 모자란 잠을 다시 잤다.


2021.6.20

작가의 이전글 2021년 6월 17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