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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윤희 Feb 12. 2022

2021년 7월 4일


개가 나오는 영화를 봤다. 아니, 영화를 봤는데 등장인물 중에 개들이 비중 있게 나온 영화였다. 영화를 보고 조금은 가라앉은 기분으로 건조기에 다 돌아간 빨래를 꺼내서 갰다. 빨래들 중 겨울에 비단이를 덮어주던 체크무늬 극세사 담요를 보고 '비단이 마지막으로 덮어줬던 담 요지'라고 생각했는데 '아니, 비단이가 살았을 때 마지막으로 덮어줬던 건 내 회색 티셔츠였지'라고 생각하며 마지막 날에 대한 생각으로 다시 마음이 아팠다. 새벽에 비단이를 병원에 입원시키고 나오다가 혹시 비단이가 내 냄새라도 맡으면 괜찮을까 하는 생각에 니트 안에 입고 있던 티셔츠를 벗어서 간호사에게 부탁했다. 그 티셔츠는 결국 차갑게 굳은 비단이를 덮고서 집으로 돌아왔다.


화장실에서 거울을 보면서 생각했다. 어떤 죽음이었으면 내 마음이 좀  편했을까? 병원에 가지 않고 집에 있었다면, 비단이가 마음  편히 갈 수 있지 않았을까? 그날이 마지막인 줄 알았다면 그랬겠지. 위험한 상황이라는 건 알았지만 마지막 일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아마 병원에 가지 않았다면 병원에 가지 않아서 죽은 거라고 괴로워했겠지. 남겨진 사람에게  편한 죽음이란 없는 게 아닐까.  


체크무늬 극세사 담요는 내가 무릎담요로 계속 사용하고 있던 건데 왜 오늘은 갑자기 그날의 기억을 꺼내오는 걸까 의아했는데, 이제야 알겠다. 얼마 전까지도 항상 내 의자나 침대 내 자리에 있던 담요였는데 오늘 침대 밑쪽에 떨어져 있는 걸 발견했다. 내가 잊고 있었던 거다. 비단이를 생각하며 항상 곁에 두던 담요였는데 없어진 것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담요를 주워서 세탁기에 넣으면서도 내가 담요를 잊고 있었다는 사실에 별생각이 없었다. 건조기에서 담요를 꺼낼 때에야 비로소 내가 잊고 있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을 담요가 알려줬다. 마음 아프게.

영화는 상관없었던 거다. 내가 나도 모르게 비단이를 잊고 있다는 걸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시간이 생기고 있다는 게 마음 아프다.


202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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