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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윤희 Jul 12. 2024

비단이와 나, 그리고 새

주접의 맥락 1

책 <내가 새를 만나는 법> 삽화   ©방윤희

내가 새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건 2011년쯤이다. 특별한 계기가 있어서 관심을 두게 된 게 아니라, 자주 가는 장소에서 자주 보다 보니 자연스레 궁금함이 생겼다. 그래서 새 도감을 샀고 책의 세상이 경험(감각)의 세상과 연결되는 신기함에 흥미를 느꼈다. 시간이 지나면서 새를 하나씩 알게 되는, 어찌 보면 굉장히 자연스럽고 평범한 이야기다. 이런 경험으로 2019년  ‘새 보기’에 관한 책을 출간했으니 꽤 보람찬 시간이었다고 자부한다. 


탐조라는 취미는 난이도가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새(탐조)에 빠져드는 사람들은 보통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치는 게 일반적이다. 1단계는 도감을 포함 새에 관한 책을 사들이고 초보용 카메라와 쌍안경 등을 장만해서 동네와 가까운 산, 공원 등을 쏘다닌다. 동네에서 보는 새에 더 이상 만족이 안 되면 2단계로 넘어간다. 관찰과 촬영 장비를 업그레이드하고 보기 힘든 새들을 찾아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새들을 찾기 위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커뮤니티에 귀를 기울이는 등 말이다. 1, 2단계의 스펙트럼은 아주 넓어서 각자의 시간, 체력, 돈, 성격 등에 따라 탐조 활동의 모습이 매우 다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좀 더 많은 새를, 좀 더 가까이 경험하고 싶다는 감각적 욕망이 강한 상태다. 대부분은 1,2 단계를 즐기는 상태에 만족하고 머무르지만 일부 3단계로 가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공격적인 탐조 활동을 줄이고 좀 더 전문적이고 깊이 있는 탐구를 한다. 그동안 품었던 새에 관한 생각을 정리하고 대중을 상대로 탐조 철학을 펼치는 등 새를 통해 사회적 활동을 하는 단계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탐조를 시작한 지 10년이 넘었음에도 여전히 1단계에 머물러 있다. 2단계로 가지 못한 여러 가지 이유 중 첫 번째는 기동력이 부족이다. 이건 체력으로 대충 채울 수 있는 부분이나 아쉽게도 나의 체력은 하루살이와 같아서 동네를 벗어나기 힘들었다. 체력 이슈는 장비 문제로도 이어졌는데,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오랫동안 걸어 다닐 자신이 없어서 쓸모없는 지출은 안 하기로 했다. 2단계의 진입이 어렵다 보니 어쩔 수 없이 1단계를 유지하며 ‘새 보기’가 이어졌고 좀 더 희귀한 새, 많은 새를 보고 싶다는 욕망은 저절로 정리가 됐다. 그리고 할머니가 돼서도 새를 보며 즐겁고 싶다는 생각에 조바심보다는 언젠가는 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여유가 생겼다. 가끔 카메라를 메고 동네를 어슬렁거리며 몇몇 새를 보는 걸로도 만족스러웠다.


그렇게 몇 년을 보내니 나는 불혹이 됐고 나의 강아지는 노견이 됐다. 심장이 나빠졌고 디스크도 생겼다. 비단이가 건강할 때는 몰랐던, 보호자라는 책임감이 무겁게 느껴졌다. 어쩌다 카메라를 메고 공원이나 개천으로 나가 새를 봐도 전처럼 즐겁게만 느껴지지 않았다. 집에 혼자 있을 비단이 생각에 마음이 편치 않았기 때문이다. 새를 보러 나갈 때뿐만이 쇼핑을 하거나 친구를 만날 때, 혹은 친정집에 가서도 마찬가지였다. 비단이는 어느덧 우리 부부의 삶에 가장 중요한 존재로 자리 잡고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새에 관한 즐거운 경험으로 만든 나의 첫 책이 출판되어 나온 그해에 비단이는 가장 아팠고 몇 달 만에 세상을 떠나게 됐다. 기쁨의 열매를 한입 베어 물자마자 미각을 잃은 형국이었다. 내 삶에 중요한 존재였던 비단이가 떠나게 되자 나는 생전 느껴보지 못한 느낌들에 휩싸여 낯선 시간을 보내야 했다. 습관적으로, 또는 새에 관한 책을 낸 사람이라는 이상한 의무감에 카메라를 메고 밖으로 나가봤지만, 예전 같은 즐거움은 느낄 수 없었고 카메라가 짐처럼 느껴져 조금만 걸어도 발이 아파졌다. 몸이 예전 같지 않았다. 책 그림 작업을 한다는 핑계로 집에만 있는 시간이 늘면서 카메라를 들고 새를 보러 나가는 일은 점점 없어져 갔다. 하지만 꼭 밖에 나가야 새를 볼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산 옆에 자리한 건물에 살고 있는 덕에 창밖으로 지나가는 새들을 매일 볼 수 있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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