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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윤희 Jul 17. 2024

새들의 삶, 나의 삶

주접의 맥락 3

책<내가 새를 만나는 법> 삽화  ©방윤희

탐조인지 스토킹인지 모를 행위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뒤 내 일상은 즐거움과 피로함으로 범벅이 됐다. 오전, 오후를 번갈아 매일 촬영했고 촬영한 영상은 저녁 시간을 이용해 확인했다. 새들의 일상을 훔쳐보는 게 너무 재밌었지만, 가만히 앉아서 영상 속의 자잘한 움직임을 오랫동안 관찰하는 행위는 나에게 척추 통증, 안구 건조, 가벼운 두통을 선물했다. 그럼에도 방구석에서의 탐조를 이어간 건 우리 집에 오는 새들의 삶이 궁금해서였다. 혹은 새를 바라보는 나 자신을 관찰하기 위해서였는지도 모른다. 비단이를 보내며 시작한 ‘나 관찰하기’는 계속 이어지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창틀에 오는 새를 처음 촬영한 건 2월이었다. 추운 날 내가 따뜻한 방에서 창밖을 감상하는 것과 달리 새들은 날씨에 상관없이 먹이를 찾아 부지런히 우리 집을 드나들었다. 겨울을 무사히 보낸 새들은 봄이 되면 번식을 시작한다. 자주 오던 박새와 쇠박새도 발길이 뜸해졌다. 창가 벽돌에서 해바라기씨를 쪼개 먹던 동고비는 3월 하순 부리에 진흙 덩이를 묻히고 창틀에 찾아왔다. 둥지를 마련하는 중 배를 채우러 온 것이다. 내가 놓은 먹이는 새들에게 삶의 일부였고 얼마 후엔 새로운 생명들에게까지 이어졌다.


5월 하순 처음 찾아온 참새의 새끼들은 나의 척추와 눈알에 쌓인 피로를 잊게 할 만큼 귀여웠다. 여물지 않은 부리를 벌리며 당당히 먹이를 요구하는 모습, 창틀 구석에서 쏟아지는 잠과 싸우는 모습, 내가 녀석들을 위해 놓은 가루 먹이를 주워 먹는 모습에 황홀감을 느꼈다. 끝없이 이어지는 짹짹 소리에 머리가 울리긴 했지만…

부모 새의 보살핌으로부터 독립해 홀로 야생에서의 삶을 시작한 어린 박새는 참새와는 또 다른 느낌이다. 넘치는 호기심에 비례하는 조심스러운 눈빛과 조금은 어설픈 행동. 용감하고 신중하게 세상을 배우고 있었다. 우리 집의 먹이가 마음에 들었는지 한 녀석은 비가 쏟아지는 날에도 쫄딱 젖은 모습으로 먹이를 먹고 갔다. 아직 아기 같은 노란 뺨을 보고 있으면 나보다 용감한 것 같아 대견했다가도, 야생의 삶이 버겁진 않을지 걱정되기도 했다.


여름이 익어 갈수록 새들의 삶은 고스란히 드러난다. 더위에 저절로 입이 벌어져 쉬고 싶지만, 새끼를 먹이기 위해 열심히 먹이를 물어 나르고 초라해진 깃털도 갈아야 한다. 여름철, 밖에서 꼬질꼬질한 새를 보고 털갈이 중인 걸 짐작은 하고 있었으나 그게 얼마나 오래 걸리고 에너지가 드는 일인지 몰랐다. 우리 집에 드나들었던 어치들은 온몸의 깃털을 교체하는데 2달이 넘게 걸렸다. 수많은 깃털을 새로 만들어야 하니, 그 기간엔 몸을 사리고 잘 먹어야 할 거다. 털갈이의 마지막은 머리 쪽인 듯했는데, 골룸에서 대머리, 밤송이를 거쳐 다시 잘 생기는 웃기고도 놀라운 모습이었다.


새들의 귀한 모습이 차곡차곡 쌓일 때마다, 남편은 새들을 촬영하자는 아이디어를 낸 자신에게 고마워해야 한다며 의기양양했다. 물론 매일 촬영하고 영상을 확인하고 저장하고 메모하는 모든 것들은 내가 혼자 하고 있음에도 말이다. 어이없지만 아이디어를 낸 것과 더불어 가끔 창틀을 깨끗이 청소해 주는 남편 덕분에 새들의 모습을 흥미롭게 관찰할 수 있으니 인정할 건 인정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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