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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윤희 Oct 17. 2021

2019년 11월 10일

비단이가 책상 밑 책장 근처에서 멀뚱하니 앉아있다가 그 자리에 몸을 둥글게 말고 누웠다. 매트가 있긴 해도 이 자리는 춥지 하고 비단이 등에 작은 담요를 덮어줬다. 잠깐만 저기 눕게 하고 불편해하면 방석으로 옮겨주자 생각하고 읽던 책을 마저 읽었다. 둥그렇게 말린 몸을 펴지 않아 혹시 배가 아픈가 생각이 들었다. 가까이 다가가 쓰다듬어 주다가 담요를 하나 더 덮어줬다. 그리고 다시 책을 읽었다. 잠시 후 여전히 비단이가 웅크리고 있어서 방석으로 옮겨 주려고 다가가서 귀를 넘기며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머리를 뒤로 보내며 그제야 몸을 늘어뜨리고 편한 자세가 되었다. 귓구멍 쪽을 만져보니 따뜻했다. 괜찮은가 보다. 요즘 바닥 쪽에서 자다가 떠는 일이 좀 있는데 그럴 때 귀를 만지면 차갑다. 이제는 귀가 차가우면 비단이의 체온이 떨어진 거고 따뜻하게 해줘야 한다. 터널 안에선 모든 것에 귀를 기울이고 조심해야 한다. 터널을 웬만하면 무난하게 통과하고 싶은 게 요즘 가장 큰 바람이다.




비단이가 곤히 잠든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안정됨을 느꼈다. 심적 여유가 생기자 엄마가 생각났다. 비단이가 나에게 소중한 존재인 만큼 엄마는 당연스럽게 중요한 존재였다. 태어나면서 정해진 데로 엄마는 나에게 고맙고 소중하다. 왠지 비단이가 아픈 이후로 엄마에게 전화하기가 꺼려진다. 엄마는 몇 달 전 허리를 다치고 쉬시고 계신다. 지난번에 통화했을 땐 단짱 죽기 전에 한번 만나러 가야겠다는 말씀도 하셨다. 나는 비단이가 아프다는 말은 숨기고 일상적인 대화로 통화를 마무리했다. 비단이가 심장약을 먹게 되면서부터 3년째 나는 마음 놓고 외출을 하지 않았다. 명절에도 남편과 나 둘 중에 하나는 비단이에게 약을 챙겨줘야 했기에 둘이 함께 하는 명절 외출은 없었다. 엄마에게 충분한 시간을 못 쓰고 있다는 죄책감이 점점 쌓였다. 그래서 요즘처럼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비단이에게 쏟고 있는 상태에서는 괜스레 엄마께 죄송스러워진다. 이런 나의 사정을 알면 엄마는 분명 서운해하실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냥 산다는 게 이런 것 같다. 의도치 않고 원치 않는 모든 상황들까지 끌고 가야만 하는. 개개인의 삶에까지 통속적인 모럴은 침투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남의 얘기를 끊임없이 듣고 한편으로 마음의 위안을 얻는 것 같다.




어제는 병원에서 피하 수액 하는 법을 배워왔다. 비단이가 물을 충분히 마시지 않고 강제 급수도 어려웠기 때문인지, 항생제를 먹고 있어서인지 아무튼지 신장 수치가 조금씩 증가하고 있었다. 열심히 듣고 되새김질해보는데 조금은 씁쓸한 기억이 떠올랐다. 수년 전 남편과 내가 체외수정을 시도하던 때 배 주사라고 집에서 직접 놓는 주사가 있었다. 나는 그 당시 마음이 많이 무너져 있는 상태였어서 내 배에 작은 주사 놓는 것도 너무 무섭고 힘들었다. 울기도 했던 것 같다. 비단이에게 놓는 건 남의 살이라 그런지 비단이가 아파하지만 않으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2019.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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