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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윤희 Oct 26. 2021

2019년 12월 24일

(21일과 22일에 대한 메모 1)

종이 관에 담긴 비단이를 남편이 안고 택시를 타고 집으로 왔다. 우리의 슬픔과 고통이 차 안을 가득 채워서 우리 스스로도 답답함이 느껴졌다. 적막한 집안에 종이 관을 들고 들어서자 비단이가 없는 그 황량한 공기가 우리를 사납게 맞이했다.  비단이를 이불 위에 올려놓고 남편과 나는 서로 안고 마구 울었다. 방음이 안 되는 집이어서 이웃들이 놀랐겠지만 개의치 않고 마음껏 소리 내어 울었다. 마음속의 분노를 어떻게 할지 몰라 주먹을 쥐고 쿠션을 마구 내려쳤다. 비단이는 이제 죽었고 비단이의 냄새, 체온, 소리, 기척, 모든 게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 우리는 비단이가 없는 다른 세상에 던져져서 무섭고 슬프고 두려워 어쩔 줄 몰라했다.  


한참을 울고 우리는 비단이가 담긴 종이 관을 바라보며 분명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상자 뚜껑을 열기가 무섭다. 죽어있는 비단이는 믿고 싶지 않은 현실이었다. 용기 내서 뚜껑을 열어 비단이를 조심스럽게 꺼내 이불 위에 올려놓았다. 벌써 차갑고 딱딱하다. 입에서 황토색 연한 물이  새어 나와 밑에 깔아 둔 패드를 갈아야 했다. 머리 쪽에 패드와 휴지를 말아서 깔아준 후 집에서 있던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비단이 옆에 누웠다. 비단이는 죽어있었지만 같이 누워 있으니 왠지 편안함이 느껴졌다. 얼굴을 쓰다듬자 코에서 액체가 주르르 흘러나왔다. 이후로 얼굴을 쓰다듬고 뽀뽀할 때마다 액체가 계속 흘러나와서 비단이의 코와 입에 대어준 티슈를 금방금방 갈아줘야 했다.


남편과 내가 하루 종일 먹은 거라곤 쿠키 하나였다. 비단이와 누워있는데 배에서 계속 구륵 거리는 소리가 났다. 어제부터 제대로 식사를 못해서 뭔가를 먹어야 하긴 하는데 도저히 뭘 먹고 싶지가 않았다. 나는 어지러움이 느껴져 우유 한 잔과 만쥬 빵 하나를 먹었고 남편은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그냥 계속 비단이를 가운데 두고 누워있었다. 비단이를 향해 중얼거리다가 둘이서 주고받으며 중얼거리다가 온종일 너무 울어 두통으로 머리가 깨질 것 같아 타이레놀을 먹고 비단이 발을 한참을 만지작거리고 발바닥 꼬순내를 맡고 등 가죽을 쓰다듬다가  잠이 들었다.  


병원에서 씻겨 준다길래 알겠다고 했는데 집에 와서 보니 비단이 몸에서 낯선 냄새가 났다. 비단이의 냄새가 오롯이 남아 있는 곳은 발바닥뿐인 것 같았다. 밤사이 비단이를 덮어줬던 담요에서 평소 비단이 냄새가 아니라 낯선 냄새가 나서 당황스러웠고 비단이를 집에 데려와서 씻길 걸 하는 후회가 들었다. 비단이의 냄새. 냄새만으로 마음의 평안을 주는 냄새였는데. 그래도 그 와중에 비단이의 눈을 감기지 않은 채로 데려온 걸 위안 삼았다. 병원에서 눈도 감겨주겠다고 했는데 비단이는 평소에도 눈을 조금 뜬 채로 자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눈은 감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2019.12.24(21일과 22일에 대한 메모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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