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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윤희 Oct 28. 2021

2019년 12월 24일

(21일과 22일에 대한 메모 3)

화장 시간은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약 한 시간 반 정도 소파에 앉아 묵묵히 비단이가 다 타기를 기다렸다.  그 사이 남편은 두통이 심해져 약을 먹었다. 대기실에는 비상약과 허기를 채울 수 있는 간단한 음식들이 마련되어 있었다. 우리 외에도 사람들이 더 있었지만 음료 외에 음식을 먹는 사람은 없었다. 남편과 나는 소파에 앉아 있는 동안 많이 진정된 상태였다. 비단이를 추억하는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이제 비단이가 거의 탔겠구나 생각하고 있을 때 갑자기 커다란 통곡소리가 들리며 대기실 공기가 흔들렸다. 가만히 앉아서 누군가가 통곡하는 소리를 듣고 있자 우리는 둘 다 말이 없어지고 다시 눈가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비단이는 곧 바스러질 것 같은 질감의 작은 두개골 형태만 남은 채 그 외의 자잘한 조각들로 변신되어 있었다. 남편과 나는 뼈를 추리는 과정과 뼈를 빻아 가루로 만드는 과정까지 내내 함께 했다. 뼈를 절구에 넣어 장의사가 직접 가루로 만들어 주는 건 생각보다 끔찍하지 않았다. 이미 화장되어 나왔을 때 쉽게 바스러질 수 있는 상태라는 걸 확인했기 때문이다. 회백색의 가루가 된 비단이를 밀봉하고 함에 담아 정성스럽게 싸매 주었다. 그렇게 변신된 비단이를 조심스럽게 안고 집으로 왔다. 


테이블에 수건을 깔고 비단이를 조심스럽게 내려놓은 후 우리는 숨도 돌리지 않고 바로 쓰레기봉투에 지난밤부터 벼르던 것들을 쓸어 담기 시작했다. 누군가에게 유용하게 쓰일지도 모르는 것들이지만 누군가가 유용하게 쓴다고 해서 당장 우리의 분노와 두려움을 어떻게 해 줄 수는 없다. 누군가에게 따지고 화내고 싸우는 대신 우리는 꼴 보기 싫은 물건들을 쓰레기봉투에 던져 넣는 걸로 해결하기로 한 것이다. 미친 듯이 정리를 하고 나니 밤 아홉 시가 넘어 있었다. 남편과 나는 그제야 평소 비단이와 지내던 방에 이불을 깔고 누워 숨을 돌렸다.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고 이야기를 나누다가 다시 부둥켜안고 울다가 드라마를 보다가 드디어 남편은 스스로 먹을 것을 가져와 먹기 시작했다.  나는 점점 더 기분이 안정되어 편한 마음으로 잠이 들 수 있었지만 남편은 그렇지 않은 것 같았다. 새벽에도 뒤척이며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는 걸 보니 가슴이 아팠다. 나도 그렇지만 남편은 나보다도 더 감정 표현이 서투른 사람이라 비단이가 떠나던 때에도 흐느껴 울며 슬프다는 말과 비단이가 밉다는 말 밖에 할 줄 모르고 오히려 나를 걱정했다. 나는 그게 너무 슬펐다.  


2019.12.24(21일과 22일에 대한 메모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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