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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윤희 Nov 01. 2021

2019년 12월 28일


사고 싶었던 물건들을 사도 크게 기쁘지 않고 드라마를 쉬지 않고 본다. 집안일을 조금 하다가 금방 지쳐 잠깐 쉬려고 가만히 앉아 있으면 별안간 마음의 허전함이 밀려와 나를 다시 내버려 두는 상태가 된다. 집안 아무 데서나 아무렇게나 누워버리고 믿기지 않는 현실에 어쩔 줄 몰라한다. 왜... 


비단이가 떠나고 집에서 남편과 부둥켜안고 울면서 다짐했었다. 우리 똑바로 살자고. 비단이의 죽음으로 누군가를 미워하고 분노하는 데 에너지를 쓰지 말고 지금 우리 앞에 남겨진 삶에 충실하고 비단이를 애도한다는 핑계로 스스로를 피폐하게 만들지 말자고.  

결혼 생활하는 내내 우리 셋은 함께였다. 지금 남편과 둘만 지내는 시간이 낯설고 쓸쓸하다. 더하기와 빼기. 

비단이가 떠났다는 사실에 내가 어찌해볼 여지는 없다. 나는 무조건 받아들여야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것뿐이다. 


비단이가 떠난 후 그나마 남아있는 흔적들로 위안 삼고 있다. 가장 좋은 건 비단이의 털 냄새다. 비단이가 떠나기 전날 진료 보던 병원에 다녀온 후 피곤하게 자고 있는 틈을 타서 응가가 묻는 똥꼬 주변 털을 자르기 시작했다. 그러다 뒷다리 엉킨 털도 조금, 몸통에 길게 자라 있는 털들도 조금씩 잘랐다. 자르다 보니 양이 꽤 많아서 비닐에 담은 후 쓰레기봉투에 넣었었다. 비단이가 생각지도 않게 다음날 떠나게 됐고 종이 관에 잠든 비단이를 눕혀 집에 와 한참을 울고 나자 쓰레기봉투에 버린 털 뭉치가 생각나서 얼른 꺼내왔다. 다행히 쓰레기봉투엔 별로 들은 게 없었기 때문에 비단이의 털 뭉치는 온전히 보관할 수 있었다. 뚜껑이 달린 유리함에 넣어놓고 하루에 몇 번씩 냄새를 맡는다. 생전 비단이의 몸통 냄새가 잘 베여있어서 냄새를 맡는 순간 멍했던 머리가 편안함, 따뜻함으로 진정되고 울적했던 마음도 말랑해지는 기분이다. 그리고 동시에 비단이가 더 이상 없다는 사실도 직시하게 된다. 


내가 성실하게 일상생활을 할수록 비단이가 차지하고 있던 그것들이 사라져 버리는 것 같아 일상에 집중하는 게 꺼려진다. 비단이를 잊고 싶지 않다. 죽어있는 상태의 비단이었어도 가능하다면 계속 같이 있고 싶었던 것처럼 단지 기억뿐이라도 비단이와 항상 함께 하고 싶다. 한순간도 비단이를 잊고 싶지 않다. 하지만 비단이를 떠올리는데 집중하는 한 나는 내 앞에 주어진 일들을 할 수가 없다. 비단이가 떠나고 울면서 한 다짐은 바로 이런 것 때문이었을 거다. 큰 슬픔은 크고 짧게 작은 슬픔은 잔잔하고 길게. 나는 이제 큰 슬픔에서 작은 슬픔으로 넘어가야 할 것 같다고 느낀다. 이 과정이 비록 비단이를 잊는 것 같아 괴롭더라도 실제로 비단이는 잊히지 않을 것이라는 굳은 믿음으로 일상을 살아야 한다. 그렇게 지내다 보면 잔잔하게 나타났다 사라지는 비단이의 추억이 일상처럼 느껴지는 날이 올 것 같다. 


2019.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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